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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정조

유 진 정 2018. 11. 26. 02:32

정조대왕은 조선의 왕중에서도 입이 몹시 험한 편이었다.

이 사실은 최근 발견된 비밀편지 약 300통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서영보에게 '호로새끼 (胡種子=오랑캐자식)'

김매순에게 '입에서 젖비린내나고 사람같지 않은 놈이 경박하고 어지러워 주둥이를 함부로 놀리는구나!'

황인기와 김인순에게 '니놈들이 어떤 놈들이기에 주둥이를 함부로 놀리느냐!'

서매수에게 '늙고 힘없는'

김의순에게 '사람꼴을 갖추지 못하고 졸렬한'

이노춘에게 '약하고 물러터진 놈'

심환지에게 '갈 수록 입 조심을 안하는 생각없는 늙은이같으니..'


그 외에도 '개에 물린 꿩신세', '볼기까고 주먹맞기', '오장에 숨이 반도 차지 않은'등의

속담도 마구 구사했다.


또한, 어느 편지를 보면

'近日僻類爲뒤 쥭박 쥭之時, 有時有此無根之'라는 문구가 있는데

정조대왕이 편지를 쓰다가 소위 '빡쳐서' 마땅한 한자가 생각이 안났는지

한글로 '뒤 쥭박 쥭'이라 적어주었다.

빡치느라 마구 쓰다보니 어느새 동이 텄고 정조대왕은

'놈들이 한 짓에 화가 나서 밤에 이 편지를 쓰느라 거의 5경이 지났다. 내 성품도 별나다고 하겠으니 우스운 일이로다.'라고 하였다.


또 다른 편지를 보면 중간에 '呵呵呵'라고 써있는데

이는 웃음소리를 쓴 '껄껄껄', 요즘식으로 'ㅋㅋㅋ'이다.


https://www.erepublik.com/en/article/1844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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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아버지 사도 세자 - 정조의 조부이자 자신의 아버지인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갖혀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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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15세  소꿉친구였던 궁녀 덕임에게 청혼

덕임 울며 거절 (이유: 왕비가 회임도 못하고 있는데 내가 감히 후궁의 자리를 꿰찰수 없다)

정조 30세 재청혼

재거절 (이유: 불명)

정조 덕임의 하인 괴롭히기 시작

혼인 성사

덕임에게 의빈 성씨 칭호 사사

의빈 성씨 2번의 유산

의빈성씨 30세 문효세자 탄생

의빈성씨 32세 옹주 탄생 그러나 2개월 후 옹주 사망, 2년 후 문효대자 역시 병사

의빈성씨 34세 셋째 임신 중 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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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빈삼년내각제축문 (의빈 성씨 사후 3년째 정조가 쓴 글)


묘소계빈전. 건륭 51년(1786년) 음력 11월 신미삭 20일 경인, 국왕은 우부승지 홍명호를 보내서 글월로 타이르기를 "새벽닭이 울 때 망건을 꿰매달라고 재촉하면 물이 그득 흘러가는 모양으로 봤는데 아침에 혁옥을 타고 흐른 물은 저 어둠이 내린 산으로 떠나 가버렸다.  아주 오랜 세월을 따른 촉룡*이 너를 저승으로 환하게 인도 할 것이다."

(촉룡:계절, 기후 같이 대자연의 섭리를 주관하는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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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빈치제제문


(중략)
아아! 후궁으로 있으면서 사람이 마땅히 행해야 할 바른 길을 알았으니 어질고 총명하여 성인(聖人)의 다음 가는 사람과 같았다. 지체가 높고 귀한 자리에서 몸가짐과 언행을 조심하고 검소함을 지켰다. 이에 마땅히 복을 받아야 하는데 문효세자를 잃고 겨우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다시 뱃속의 아이와 함께 잘못 되어 세상을 떠나버렸다. 빈의 운명은 그것도 이것과 마찬가지로 심히 불쌍하고 슬프도다. 이제 장차 빈을 문효세자의 곁에 보내서 장례를 치르는데 이는 빈의 한결같은 소망이다. 무덤이 아주 가까워졌으나 넋은 막힘없이 잘 통하여 끝난 세상을 원통하게 울면서 사별한다. 이로써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이 서로 영원히 헤어지는 한을 위로한다.
너 또한 내가 슬픔을 잊을 수 없다는 것을 슬퍼할 것이다. 그러한가? 그렇지 않은가?
아아! 슬프도다. 바라건대 부디 흠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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