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이에요

애완가지

유 진 정 2019. 6. 15. 00:07

 

구불이를 처음 만난건 신록이 우거지는 어느 초여름날이었습니다.

자전거로 옆 동네를 탐방중이던 저는 깜짝 놀라고 말았는데요

 

 

 

이렇게 훌륭한 잠재력을 가진 가지가 버려져 있다니..!

철거 중인 건물 정원에 쓰레기들과 함께 나뒹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지는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었죠 

 

 

 

마치 오래전 국사책에서 본 사신도 청룡을 연상시키는 모습이었습니다.

 

먼지가 왕창 쌓이고 아래부분이 검게 탄 것으로 보아 가지는 전 주인이 공예품을 만들려다 두고 갔거나 

누군가 땔감으로 쓰려다 만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가지를 집에 데려가고 싶었기 때문에 공주님 안기로 살짝 들어보았습니다. 

들 수 는 있었지만 옮기기엔 망설여지는 무게더군요

팔근육 부족으로 나온 인바디 결과지를 떠올리며 아쉬워하다 이대로 돌아가면 너무 큰 후회가 남을것 같아 대로변까지 낑낑대며 들고 온 뒤

택시를 세번 뺀지먹고 좌절하던 찰나 끌고온 자전거를 수레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실어보고 저렇게도 실어보고 답안나오는 각을 재고 있는데 

아까부터 미간을 잔뜩 찌푸린채 이쪽을 노려보고있던 일진포스의 수퍼 아주머니 두분 중 한분이

 

끈 줄까?

 

라는 말로 저를 구원해주셨습니다. 다른 한분은 자물쇠로 이쯤에 고정을 한번 더 시키라는 팁도 주셨죠 ㄳㄳ..

 

 

이렇게 30여분에 걸쳐 구불이는 저의 집까지 무사히 운반되었습니다

퇴근시간이라 도로에 사람이 많았기때문에 조심조심 와야했지요

 

 

 

안에서 뭐가 기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일단 뜨거운 물로 빡빡 씻어주었습니다

구불이의 긴 노숙생활을 증명하듯 회색물이 끝도없이 나오더군요

목욕을 끝내고 깔끔해진 구불이를 옥상으로 옮기려는 찰나 저는 기억해냈습니다. 나무는 물을 먹으면 더 무거워 진다는 사실을

 

 

 

아무튼 옮기긴 옮겼습니다

 

 

 

며칠 말렸습니다

 

 

 

슥고이..!

 

이제 거칠어진 구불이의 피부를 빼빠질.. 아니 다듬어 주어야 합니다. 

이대로도 멋있지만 방안에서 같이 살기엔 껍데기가 너무 많이 떨어집니다. 

 

목수친구에게 사포 몇 방짜리로 갈아야하냐 물어보니 80>120>220 귀찮으면 120>220 이라길래 

사포는 대체 어디서 사야하나 1박2일 고민하다 다이소에 가봤습니다

사포가 있더군요.

다이소 짱짱맨 지난번엔 앙카랑 나사못도 구입함

 

암튼 그래서 오밤중에 빼빠질 두시간 하고 맨질맨질해진 구불이를 다시 공주님 안기로 들고내려왔습니다.

 

 

 

 

위치는 침실로 지정하였습니다. 

이쯤에서 노래 한 소절 부르고 지나가겠습니다.

 

 

니가 아침에 눈을 떠 처음 생각 나는 사람이

언제나 나였으면 내가 늘 그렇듯이

좋은 것을 대할 때면 함께 나누고픈 사람도

그 역시 나였으면 너도 떠날테지만 

 

그래 알고 있어 지금 너에게

사랑은 피해야 할 두려움 이란 걸

불안한 듯 넌 물었지 사랑이 짙어지면

슬픔이 되는 걸 아느냐고

하지만 넌 모른거야 뜻 모를 그 슬픔이

때론 살아가는 힘이 되어 주는 걸

이제는 걱정하지 마

한땐 나도 너만큼 두려워한 적도 많았으니

조금씩 너를 보여줘

숨기려 하지 말고

내가 가까이 설 수 있도록

 

불안한 듯 넌 물었지

사랑이 짙어지면 슬픔이 되는걸 아느냐고 

하지만 넌 모른거야 뜻모를 그슬픔이

때로 살아가는 힘이 되어 주는 걸

 

 

***

 

 

 

 

 

 

 

 

 

아무튼 이렇게 구불이는 제 곁으로 오게되었구요 

끝으로 애완가지 입양의 장점을 몇개 정리하고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1. 오래 삼

2. 조용함

3. 털 안빠짐

4. 식비안듬

5. 멋있음

6. 옷걸이로 활용 가능

 

Happy Pet Branc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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