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에요/물질

봄은 줍줍러의 계절

유 진 정 2021. 2. 28. 22:57

 

 

 

 

 

흐리고 따듯한 오늘 스케빈징 시즌이 머지 않았음을 느꼈다.

줍줍러 꿈나무들은 알아둬야 할 것이다 마음을 들뜨게 하는 봄바람이 코끝을 스치우면 흥분한 주민들이 물건을 마구 내다 버린다는 것을 

 

오늘의 득템은 공작과 모란 세공이 들어간 고가구 머릿장이다.

감나무가 심어져 있는 옆집 대문밖에 나와 있길래 노부인에게 허락을 맡고 윗장부터 들고왔다.

현관 앞에 물건을 두고 아래장을 가지러 갔더니 또다른 노부인이 스케빈져 특유의 형형한 눈빛으로 장을 쏘아보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보고 '방금 전에 발견하고 집에 가서 옷 갈아 입고왔더니만 윗장이 사라졌어..' 라며 아쉬움을 표했지만 냉혹한 스케빈징의 세계에 장유유서 따위는 없는것이다

윗장은 제가 가져갔고 나머지 장의 소유권은 가위바위보로 결정하죠 라고 제안하자 담장 안에서 '윗장 가져간 사람이 가져가! 세트여야 잘 쓰지!' 라는 외침이 들려왔다. 나이쓰

템을 빼앗긴 노부인은 초 쿨하게도 내가 아랫장을 옮기는 것을 도와주었다. 

 

집에 도착해 서랍을 여니 수년에 걸쳐 쌓여온 먼지의 냄새가 났다.

서랍은 약장으로 쓰였는지 뒤편에서 딸기가 프린트된 반창고와 게보린이 한 알 나왔다. 먼지를 닦으며 머릿장의 역사에 대해 잠시 상상해 보았다.

낡았지만 경첩들도 제데로 달려있고 세공이 꽤나 예쁘게 들어간 것이 어쩌면 장은 노부인의 혼수였을지도 모른다.

한 가정에서 소임을 다한 머릿장은 이제 수평으로 배치되어 쥐장 받침대가 되었다. 수납공간이 넉넉해 쥐용품을 몽땅 때려박아버릴 수 있어 아주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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