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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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진 정 2021. 3. 1. 21:23

며칠전 할아버지뻘 친척분이 치매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게되었다

나와는 별 교류가 없는 양반이었지만 그에 대한 몇가지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이 있다. 뭐 아름답거나 한건 아니고.. 

 

기억속의 그는 술을 매우 즐겼으며 대추같이 검붉고 쪼그라든 작은 얼굴에 좁은 이마, 근육질의 체형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아기였을때 그의 얼굴을 볼때마다 경기를 일으키며 울부짖는 바람에 모친은 매우 난감했었다고 한다

친척들끼리 계곡에 소풍을 간 날 거나하게 술에 취해 물로 들어간 그가 네 발로 서 짐승처럼 고함을 지르던 모습이 사진처럼 생생히 기억이 난다

 

몇 해 후 명절 온 가족이 그의 집을 방문했을때 그의 부인은 대하를 소금구이하여 우리에게 대접했다.

집은 나무로 벽을 한 옛날식 양옥이었고 화장실에 창고와 연결되어 있는 작은 문이 달려있었다.

대하를 먹고난 나는 화장실에 가 볼일을 보았고 곧 작은 문 안쪽에서 음산한 소리가 새어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호기심이 두려움을 압도한 나머지 문을 열어보았고, 곧 시뻘건 두 눈을 마주하게 되었다.

 

침을 뚝뚝 흘리는 거대한 세인트 버나드 한 마리가 그 곳에 서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

나는 이 집에 개가 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음으로 그 존재에 일단 놀랐고, 개가 처한 환경에 재차 놀라고 말았다. 

창고가 극단적으로 좁고 긴 형태였기 때문에 세인트 버나드는 앞과 뒤로만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이다.

마치 관에 끼인듯한 모습으로 으르렁거리는 세인트 버나드를 뒤로한채 나는 조용히 문을 닫았다.

 

그 후 들려온 소식에 의하면 그는 00시가 생긴이래로 가장 큰 교통사고를 냈다고 한다. 

내장이 쏟아져 나온 그를 두고 의사들은 가망이 없다며 흰 천을 덮어두었는데 천에 덮인 그가 정신을 차리자 여러사람이 기절초풍했다고 한다

그리고 문제의 세인트 버나드는 사람을 물어서 안락사를 당했다고

 

어른이 되고 나서 그가 마누라와 자식들을 패곤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제일 먼저 떠올랐던건 창고에 끼여있던 세인트 버나드의 비참한 모습이었다. 

세 딸은 성인이 되자마자 그를 손절하였고 하나 있는 아들은 중년이 되도록 결혼을 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부인은 말을 속삭이듯이 하는 얌전한 사람이었는데 알콜중독이 되어 부엌 곳곳에 술을 숨겨놓고 먹는다고 

 

아무튼 치매가 온 그는 얌전한 알콜중독 부인에 의해 돌보아지고 있다고 하는데 그 말을 듣자 복잡한 심정이 되었다.

이야기를 전해준 이는 ' 그래도 가족들 돈가지고 힘들게 하거나 부인 바깥일을 시키진 않았어 ' 라며 그를 평가하였는데 

' 그냥 바깥일을 시키고 안 패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요 ' 라고 대답하자 역시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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