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에요

어떤 식으로 죽고싶냐는 질문을 들으면

유 진 정 2021. 7. 10. 14:56

꽤 오랫동안 성산일출봉을 떠올렸다
초딩때 간 제주도 가족여행에서 기억나는 두 가지는 한라산에 올라가 입을 크게 벌리고 구름을 먹은 것과
성산일출봉의 분화구이다

그 넓고 선명한 녹색의 아가리를 보면서 저 아래로 마구 뛰어내려가면서 죽고싶다는 생각을 했다
(근데 막 굴러서 머리 깨지고 피철철 흘리면서 죽는건 안되고 안개처럼 사라져야됨)

경외스러운 풍경 앞에 서면 자연스럽게 죽음을 생각하게 되는데 왜일까? 그것의 일부가 되고 싶은 것일까?

아무튼 그렇게 성산일출봉은 일종의 개인적 성지聖地가 되었는데
언제부턴가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 떠오르는 풍경이 바뀌었다.
언덕의 큰 나무 밑에서 앉아서 천천히 죽는 장면이 떠오름

같은 장소에서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쌓여 죽는 것도 잠시 생각해봤는데
죽음이란 삶의 꽤 중요한 이벤트이기때문에 그 순간만큼은 혼자인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을 때가 된 동물들이 혼자만의 장소로 들어가는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할머니는 이모가 출근한 사이 돌아가셨다는데 이모는 그것을 몹시 속상해했다
주변인을 배려한다면 임종을 지키게 하는 것이 좋겠지만 죽을 때 만큼은 좀 이기적이어도 괜찮지 않겠나
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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