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조사를 갔다. 경기도 모처로
부른 쪽에서 택시타고 집에 가라고 하셔서 오예하고 택시를 잡았다.
차 안에서 긴 시간을 보내야 했기에 나는 타는 순간부터 나불거리리라 결심했다.
개인택시였고 기사님은 60대였다.
입을 털다보니 결국 또 그놈의 결혼했어요? 나이가 몇이에요가 나오고 말았다.
평소라면 그때부터 읽씹모드에 들어갔을테지만 이왕 입턴 김에 대답을 걍 하기로 결정했다.
결혼은 안했고 나이는 말하기 싫은데 기사님 아니 대체 왜 그렇게 신상에 대해 물어보시는 거에요~~~?!! 를 외쳤다.
아저씨는 푸허하하하 하고 멋쩍게 웃더니
아니 우리 아들이 서른일곱인데 장가를 아직 안가서 네살터울 뱀띠랑 엮어주고 싶은데
아가씨들 탈때마다 이야기 해보고 하나 잘 골라서 번호 받아가지고 둘이 지금 만나고 있어
근데 코로나라 결혼을 못한다는것 아니야~ 라는 대답(?)을 했다.
아니 그럼 지금 저보고 세컨이라도 되라는 말씀이신가요?
가 떠올랐지만 입밖으로 내지 않았고, 그때부터는 아저씨가 본인의 신상을 셀프로 탈탈 털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아저씨에 대해 알고있는 사실은
무역회사 다니다 부도나고 이년 놀다 운수업으로 뛰어든 것
최근 판 집이 두배가 올라서 엄청나게 화가 난다는 것
차라리 그때 아들 놈한테 증여를 해줄걸 후회하고 계신다는 것
아들에게 전세자금 2억 해주고 더는 못해준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일억까진 더 해줄 용의가 있다는 것
아들은 모 직종 시험 최종면접에서 두번 떨어진 뒤 gg치고 일반 회사에 들어갔다는 것
아들이 시험준비 하느라 모아둔 돈이 별로 없다는 것
각 지역별 개인택시 넘버판 가격. 넘버판은 판교 쪽이 상당히 비싸다는 것
민주당 전교조 탈레반 카카오가 아주 나쁜 놈들이라고 생각하신다는 것
특히 그 중에서도 카카오가 자영업자들의 고혈을 빼먹는 쓰레기 같은 기업이라고 생각하신다는 것
중동 놈들의 종교는 아주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신다는 점 (+탈레반 참수영상에 대한 생생한 묘사)
개인택시는 60대 이상은 삼년에 한번, 70대 이상은 1년에 한번 운전능력 시험을 봐야한다는 것
동창들 단톡방에 여당까는 글 올라오면 여자동창 한명이 난리난리 쌩난리를 친다는 것
아들이 본인을 좋아하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는 것..
등이 있다. 더 많은데 일단은 여기까지
아무튼 나불거리다 보니까 막히는 구간도 덜 지루하게 느껴졌고 집에 금방 왔다.
아저씨와는 서로 추석 잘 쇠시라고 하고 헤어졌다.
이십대땐 허구헌날 아저씨들이랑 박터지게 싸웠던 거 같은데 언제부턴가 그들과 별로 부딪히지 않게되었다.
왜일까 생각해봤는데 호주 다녀오고 엄마가 재혼을 하고 나서부터인 것 같다.
여행 중에 고마운 아저씨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엄마의 남편도 괜찮은 사람같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내 안의 중년 남성에 대한 증오심이 많이 가라앉았다.
사람을 대할때 혐오감을 가지고 대하면 상대방도 은연 중에 그것을 눈치 채는 것 같다.
그리고 혐오의 밑바탕에 깔린 감정은 결국 두려움이라고 생각한다.
이십대때 그렇게 아저씨들과 사이가 나빴던 데에는 아저씨들의 빻음도 원인이였지만
나의 마음속에 있던 두려움도 한 몫을 했던 거구나, 뭐 그런 깨달음(?)을 조금씩 얻어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