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이슈에요

장기자랑

유 진 정 2021. 11. 7. 22:55

구독하는 블로그에서 회사 장기자랑 시즌이 시작됐다는 글을 읽었다. 쓴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지옥같은 소식이다'이라는 문장을 읽자마자 개터졌다.
근데 한바탕 웃고나니까 또 그러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배가본드를 읽다가 잠들었는데 거기에서 오츠라는 히로인이 나온다.
오츠를 거두어 먹여살리던 검성 노인이 노환으로 누워있다 오츠한테 니 피리소리가 듣고싶다 좀 불러다오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오츠가 단칼에 거절을 한다. 뭐 마음이 슬퍼져서 오늘은 싫다나?

그 장면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와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다 죽어가는 노인네 부탁인데.. 갈 곳없는 자기를 거두어 편히 먹고 살게 해줬는데.. 라는 생각이 1차로 들었고 저런 자세는 좀 본받아야 겠다는 생각이 2차로 들었다. 이런건 일종의 스스로에게 진실하겠다는 자세다.

그래서 프로 뮤지션들은 대단한 거 같다. 예전에 밴드하는 오빠한테 물어본 적이 있다. 사람이 노래 안부르고 싶은 날도 분명 있을건데 공연을 어떻게 매주 하냐고. 대답은 기억이 안난다. 군중 앞에 서는게 항상 즐거울 정도의 서비스 정신과 관종력이 있는 사람이 프로가 되는게 아닐까 뭐 그렇게 생각한다.

아무튼 누구에게나 관종력이 있는게 아닌데 회사가 강제로 사원들을 장기자랑에 참여시킨다는 것은 좀 변태같이 느껴진다.

그런데 이런 짓을 시키는데에는 이유가 있다. 일종의 사회화 훈련이다. 자기를 죽이고 시스템의 일부가 되어 움직이라는 거다.
조직을 굴려야 하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까라면 까는 존재가 편하고 필요하다. 개인의 신념 존엄 이런건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것이다.
그 예전에 뭐 연구결과도 있지 않았나? 특출난 개인의 집단보다 평범하지만 한가지 기조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집단의 생산성이 더 나았다는? 전후 한국사회의 유례없이 빠른 발전에도 이런 군대식 꼰대문화가 한 몫을 했으리라고 생각한다. (자살률도 높아졌지만)
아무튼 조직의 생리에는 신기한 구석이 있다..

그런데 이런 게 4차산업 메타버스 어쩌구 하는 요즘 세상에도 과연 효율적인 시스템인지는 잘 모르겠다. MZ세대들은 이런거 시키면 토할 거 같은데 굳이 사원들의 반항심을 부추길 필요가 있나?

나한테 장기자랑을 시키면 어떻게 반응할까 한번 시뮬레이팅 해봤는데 아마 즐거워하며 참가할 것 같다. 그리고 반년 뒤에 그만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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