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에요

산책 중 본 기막힌 것들

유 진 정 2022. 4. 23. 23:34

 

 

이런 날씨엔 집에 있으면 손해를 보는 느낌이다.

 

퀄리타고 좀 멀리 나갈까 했는데 할 일도 있고 해서 뒷산 산책이나 잠깐 하기로

 

일전에 아론 독순 부부랑 통화를 하다 언제 또 여행 갈꺼야? 하니까 아론이

well 요새는 희한하게 막 해외가 나가고 싶지 않고 그냥 집근처 해변가서 노는게 좋아지더라..

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다들 이렇게 나이를 들어가는 모양이다.  

 

왜냐면 나도 여행이 그렇게까지 안 가고 싶음.

태국이랑 일본 호주는 단발적으로 으악 하고 그리워질 때가 있는데 막상 계획짜려고 하면 귀찮음 

 

예전에 뉴턴에서 읽은 것 같은데, 인간의 뇌는 나이를 먹을 수록 적은 자극에 만족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고 함.

그니까 젊을땐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어야만 충족되던 욕망이 북한산 올라갔다 내려오면 충족되는 뭐 그런거임. 쌉이득..

 

그래서 그런지 오늘 산책은 상당히 재밌었음. 기록해둠 

 

 

 

 

공원에 잠깐 쉬어가면서 책읽으라고 마련해 놓은 공간이 있는데

성공법/자기계발서의 비율이 놀라울 정도로 높음 (아이아코카는 크라이슬러 회장 자서전)

성공지향적 국민성의 단면을 엿본 느낌. 이런 욕망과 에너지가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냈겠지

 

그러나 공원에서 이런 책들을 읽고 싶진 않음. 이건 미학의 문제라고

 

https://digthehole.tistory.com/3102

 

스콧 니어링 자서전

스콧 니어링 매카시즘이 미국을 휩쓸던 시기 반전을 외치는 바람에 이지메를 당한 빨갱이 학자 그가 쓴 자서전은 호스텔 거주시절 한국어로 쓰인 책이 너무 읽고 싶어서 국제배송 받은 책이다.

digthehole.com

 

암튼 그래서 몇 권 안되던 시집을 찾아 펼쳐봤는데

 

 

 

 

첫번째 시가!

 

 

 

 

그렇게 성공노하우와 자기계발서의 행렬이 이어지다가 마지막 시선이 닿은 곳에는

<여보게 저승갈때 뭘가지고 가지>와 <천국에서 만납시다> 가 있었다. 

그쯤에선 상당히 감탄했고 이 공간 자체가 예술적이라고 느꼈다. 중간에 꽂힌 <어디로 가야>와 <내려놓음>도 강렬하고

 

명상원에 오는 장년의 남자들이 떠올랐다. 인생 대충 살았다는 느낌을 풍기는 사람은 거의 못 봤다.

은퇴한 회사원, 자영업자, 사업가, 교수, 전직(?)운동권 등등 모두 한가정의 가장이자 나름의 필드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들로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찾고자 온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 아니오> 라는 성경구절이 생각났다. 

 

 

 

 

두번째로 목격한 멋진 장면

연못에서 초등 3학년 정도로 보이는 작은 소녀가 무언가를 잡고 있었다.

안경 낀 아주머니 얘 거기서 뭐하니 들어가면 안되는데, 하니까

아이는 관리소에 허락맡고 들어왔다고 야무지게 대답을 했다. 

 

뭘 잡냐고 물으니 맹꽁이를 잡고 있다고, 바로 앞 아파트에서 시끄럽다고 민원이 들어왔다고 한다. 이쯤이면 초딩 공무원

 

그러더니 맹꽁이 보여드릴까요? 하고 연못 건너편에서 아줌마와 내 쪽으로 가로질러 오려는게 아닌가?

얘야 다 젖는다 그럴 필요 없다고 아줌마가 손사래를 쳤는데

괜찮아요 방수바지거든요 하면서 채집통을 들고 성큼성큼 우리쪽으로 다가왔다. 

 

아이가 채집통을 내려놓자 구경꾼이 몰려들었다. 잡은 맹꽁이는 기를 거라고 한다. 이름은 뭐로하냐고 물으니 '점박이'라고

개구리를 원래 좋아하는지 만지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몰려든 구경꾼 중 한 아저씨는 맹꽁이가 불쌍하다 놔줘라 저러다 죽는다며 전전긍긍했다.

어떤 아기는 소녀가 만져볼래? 하고 맹꽁이를 내미니 울음을 터뜨렸다. 

 

어쩌다 이런 걸 잡기 시작한거니, 궁금해진 내가 물어보자 예전 집이 의정부여서 그때 뭘 많이 잡고 살았었다고 한다. 

그러더니 재밌는 거 보여준다고 맹꽁이를 뒤집어 손바닥에 올리고 죽은척 해! 라고 말하니

진짜로 맹꽁이가 숨을 쉬지 않는게 아닌가?

 

깜작 놀랐는데 생각해보니 개구리가 원래 뒤집혀서 죽은 척을 잘 하는 생물이긴 하다.

아줌마는 얘야 그래도 뱀은 기르지 말아라.. 라고 걱정하시길래 뱀도 예쁜 뱀이 있다고 말해드렸다.

아무튼 아주 영리하고 당차보이는 소녀였다. 

 

 

 

 

아저씨 말마따나 맹꽁이가 불쌍하긴 했다.

아저씨는 또 걔 배가 고픈거 아니냐며 걱정했는데 아침에 개미를 엄청 많이 먹였다고 한다. 

아무튼 그렇게 구경을 마치고 잘 길러~ 하고 돌아섰다. 

 

오는 길에 생각이 났는데 난 어릴때 어른들이 나한테 친한척하면서 반말하는게 정말 싫었다.

근데 이제 반말을 들어도 아무렇지 않다.  불혹을 앞둔 시점에서 학생취급 당하면 기분이 째진다고

 

 

 

 

너무 귀여운 맹견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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