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에요

여기가 서울이라니 - 무수골

유 진 정 2022. 5. 5. 04:52


지난 주말 라이딩 코스는 무수골로 정했다.

근처에 사시는 분을 만났는데, 도봉산은 아래쪽이 도때기 시장같아서 가기가 싫어진다는 말을 하니
그 쪽 말고 올라가는 좋은 길이 있다는 것이었다. 무수골 도봉 초등학교 쪽으로 해서 올라가면 아주 조용하고 좋다고..
무수골이라는 어감이 어쩐지 마음에 들어 검색을 해본 뒤 출발.

무수골은 근심이 없는 마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세종이 아홉번째 아들 영해군의 묘를 이 곳에 쓴 뒤 방문하여
이런 동네에 살면 근심이 없을듯 하다고 말한데서 유래되었다고


동네에 들어서자마자 그 한가한 분위기에 깜짝 놀랐다. 서울 아닌줄

알고보니 그린벨트로 오랫동안 묶여있었다고 한다.
규제가 완화되면서 캠핑장 등의 개발을 두고 주민들과 구의 마찰이 있었다고 하는데
사람이 사는 곳에 근심이 없을 수는 없는 노릇인 것이다.


날씨가 흐려서 초록색인 것들이 아주 예쁘게 보였다.




동네 코너에 있던 이국적인 쉼터
사진을 찍기 전에는 무슬림 아가씨들이 남자친구들로 보이는 한국 남자들과 앉아 수다를 떨고 있어서
더 이국적인 느낌이었다. 기둥에 도토리가루와 고추가루 판매한다는 광고지가 붙어있다.

동네를 몇 바퀴 돌고 천을 따라 이동





여기서 부터 자현암이라는 곳 까지가 무수히 전하길 이라는 테마 산책로





주말농장. 주말이라 사람들이 많았음



이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산길이 나올 것 같지만




논이 나온다
서울에 있는 유일한 논이 아닐까 싶음





그리고 더 올라가보면 산길이 나온다.
자현암- 원통사 - 우이암 등산로로 이어진다는데 등산은 안 하기로
도로가 잘 닦여 있어 전기자전거로 올라가기 편했다.
하지만 곧 이륜차 / 자전거 진입금지 현수막이 걸려있는 걸 봐서 근처에 묶어두어야 했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내려오는 사람들을 몇 마주쳤다. 왜 타면 안되는 건지 이유가 궁금해지는데?

올라가는 길에 저 자전거는 안에 모터가 들어있다면서? 라고 말하는 노인장 두 분을 지나쳤다.
별로 전기자전거 안 같이 생겼다고 생각하는데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귀신같이 알아보고 말 거는 경우가 많다.
관심이 정말 뜨겁단데 전기자전거 업체들 시니어 라인을 발매하여 효자들을 공략해 보심이?


오예 피톤치드~


자현암 등장

너무 멋있는 향나무




등산 안 할거지만 조금 올라가 본다.



뭔진 모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자태가 청초해 보임
더 올라가다간 등산을 해버릴 거 같아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섰다.
다음에 등산화 신고 한번 다시 와야겠다.



자전거를 묶어 둔 곳으로 내려옴
이제 돌아가는 길이다.

여기서 부녀로 보이는 남녀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는데, 성인으로 보이는 딸이 바닥에 주저앉아 모래를 모으고 있었다.

모으다가 일어나 걷다가 다시 앉아서 잎을 모으고,
또 일어나 걷다가 모으고. 장애가 있는 것으로 보였다.
머리가 하얀 부친은 딸이 자연물을 긁어 모을때마다 참을성있게 기다리고 서 있었다.

딸은 나를 보자 안녕하세요! 라고 소리를 질렀는데
시선이 다른 쪽을 보고 있길래 나한테 한 건지 아닌지 헷갈려서 고개를 10도쯤 숙인 불완전한 인사를 건냈다.






느티나무 보호수. 수령 250년 추정


보호수 앞에 논이 보이는, 쉬어가기 좋은 자리가 있다. 자판기도 있음
쉬다가 아까 그 부녀가 돌아가는 뒷 모습을 보았다. 딸은 여기서도 뭔가를 긁어 모았다.



다시 출발


퀄리를 찍어봄. 저번에 못생겼다고 깠는데 사실 귀여움. 단순하게 생겨서 좋음

이쪽은 정말로 조용했는데 곧 마후라 뚫은 오토바이에 탄 두 청년이 고요함을 박살내며 등장했다.

둘 다 헬멧을 안 썼고 시팔조팔거리며 야 여기 시골같지 않냐 고성을 지르길래 역시 인간은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십대 남자는 인간이 아니니 약간의 면책권을 줄 수 있다.

옛날엔 젊은 남자들 특유의 나댐을 거의 증오했는데
그걸 너무 싫어하는 내 자신이 이해가 안되어 생각을 거듭하다보니 그 시기도 필요에 의한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인생에서 가장 많은 테스토스테론이 분비되는 시기라 그만큼 사고도 많이 치게 되는 것이다.
많은 활동 끝에 교훈을 얻어가며 어른이 되어가는 거겠지




마후라 청년들이 사라지고 난 뒤 바람이 한 줄기 불었는데
물위의 파장을 보고 있으니 최면에 걸리는 거 같았다.






기묘한 시멘트 봉분



공기에 실린 피자냄새를 따라가다 보니 메이다이닝이라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나왔다.
이날은 예식을 했는지 사람들로 북적였고 얼핏보이는 정원이 상당했다.
정원에 들어가 보고 싶기 때문에 다음에 와서 피자를 먹어봐야겠다.


동네의 주택인데 창가에 덩굴장미 조화를 늘어뜰여놨다. 뭔가 로망이 있으신가 본데


한~가~








여기서는 갑자기 뉴질랜드가 떠올랐는데 날씨 때문이었던 거 같다.
이 빈집은 등나무 꽃이 아름다웠다. 우편 위쪽에 보면 덩굴이 옆의 나무를 타고 엄청 높이 올라가 있다.


동네 아래쪽엔 신축 빌라와 아주 오래된 빌라들이 뒤섞여 존재한다










화분에 조화를 꽃아놓음. 엄마네도 가보면 꼭 저런 짓을 해놓던데 그 세대만의 감성인가..
전선이 엉망진창인 정말 낡은 빌라였는데 주차해놓은 차는 아우디라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약국간판도 올드스쿨



이렇게 평화로운 무수골 라이딩을 마쳤고
돌아오는 길에 위협운전 신고 세 건함.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 분노의 발원지는 어쩌면 논의 정적을 깨부신 오토바이 마후라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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