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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풍경 + 전장연 시위에 대한 단상

유 진 정 2022. 11. 27. 00:04

며칠 전 전철에 앉아 노래를 듣고 있는데 대각선 앞 방향에서 옥신각신 하는 소리가 에어팟을 뚫고 들려옴

다리가 불편한 중년 여성이 지팡이를 짚고 막 탑승했고 그걸 본 할머니가 자리 양보를 하셨는데,
지팡이 짚은 분이 아이고 죄송해서~ 라며 극구 사양하고 있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음

두 노약자의 대환장 파티를 보고만 있을 순 없었기에 선생님은 거기 앉으시고 다른 선생님이 제 자리에 앉으시면 됩니다, 하고 상황을 정리했는데
다리가 불편한 여성분은 그것마저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옆사람이 내리자 아가씨 여기 앉으라고 저 쪽에 서 있는 날 막 부름. 하지만 곧 내릴 예정이었고 홍자영 작가님 작업실 구경갔다 냉면을 얻어먹어 배가 부른 상태였기 때문에 거절함

어릴 때 모친과 전철을 타면 모친이 노인들에게 자리를 양보시킨 기억이 나는데
그때는 착한 어린이가 되고 싶어서 자리를 양보했다면 나이가 들고 나서는 공식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내가 서서가다 넘어져 골절당할 확률 < 노약자가 골절당할 확률

나의 골절이 사망으로 이어질 확률 < 노약자의 골절이 사망으로 이어질 확률

=

내가 서서 갈 때의 고통 < 노약자가 서서 갈 때의 고통


사회적 비용이 덜 드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느껴지기 때문에 규범을 따른다.
( 같은 맥락으로 매우 피곤한 경우 양보하지 않고, 임산부가 없는데 좌석 양 끝 비워두는 것도 사회적 낭비라고 생각함 )

아무튼 그렇기 때문에 장애가 있는 사람이 저렇게 미안해 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데
너무 미안해 하시니까 좀 그랬다. 물론 그 분도 그런 태도를 가지게 되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어 왔던 것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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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저번달쯤인가 밤을 새고 고속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앞에 난 자리를 인터셉트 당했다. 그것도 두 번이나.
그것도 사지멀쩡한 남자들한테.

한 명은 이십대로 보이는 예쁘장한 청년이었고 다른 한 명은 사십대로 보이는 장년이었다.
청년은 자리에 앉자마자 곧장 눈을 감고 잠을 청했고, 사십대 남자는 전화기를 잽싸게 꺼내 무협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둘다 나의 존재를 애써 무시하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일은 살면서 처음 겪어 본 것이라 약간 충격적이었고 예외적 상황이라고 파악되어 이유를 생각해봤는데,
시간대가 출근 시간대라는 것을 깨달았다.

노동전선으로 향하는 사람들이라 심리적 여유가 부족한거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 김에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에 대해서도 생각해봤다.

이동권과 관련된 그들의 요구사항은 꽤 fair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오랫동안 보류되어 왔다. (탈시설 예산증액에 대해서는 아직 판단이 안 섬)

단칼의 거절도 아닌, 그래 해줄게 해놓고 입 싹닫는 상황이 십수년 넘게 반복되어 왔으니 어지간히 빡칠만 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난 1여년간의 시위가 아니었다면 나는 그들의 상황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대체로 그들의 시위에 지지를 보내는 편인데 웹 커뮤니티를 뒤져보니 거의 살의에 가까운 짜증을 드러내는 글들이 대부분이었다.

왜 이렇게까지 반응이 다른 것일까 생각해보니 나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은 출근 시간대 전철을 탈 일이 거의 없다.
사고에 쏟아부을 만한 시간적 여유도 가지고 있는 편이다. 소외의 경험 역시

그러니까 위의 공식을 적용해 봤을 때,


(출퇴근 전철을 이용하지 않고 심리적 여유가 있는 경우)
내가 전철 지연으로 겪는 불편 < 이동권 관련 소외당해온 장애인들의 고통

(출퇴근 전철을 이용하고 지각 등으로 인한 패널티가 꾸준히 적립되는 경우)
내가 전철 지연으로 겪는 불편   이동권 관련 소외당해온 장애인들의 고통


자연스럽게 이런 식으로 사고의 흐름이 전개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후자의 경우임에도 전장연의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도 보긴 했는데 상당한 이타심이라고 생각했다. 또는 압도적 소외의 경험
아무튼 장애인들도 할 말이, 시위 혐오자들도 혐오를 하기까지 시달려온 여러가지 상황들이 있는 것이다.

하루빨리 타협점이 찾아져 장애인들의 이동권이 개선되고 직장인들이 피로가 덜어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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