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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시간 근로유연화와 노동의 추억

유 진 정 2023. 3. 20. 02:37

 
요즘 69시간 근로 유연화가 연일 화제인데 기사 읽을때마다 PTSD돋음
하루 16시간 동안 오렌지 굴리던 전태일 라이프 생각나서

호주 베리에서 있었던 일임
한량노릇 하던 중 신청해둔 뉴질랜드 비자가 나와서 정착비용으로 쓸 돈이 필요했음
당시 남친은 나보다 더 거지라 걔도 돈이 필요했음 

근데 터질 것이라 기대했던 빅 팜들의 오렌지 농사가 망했고 호스텔에서 알선해주는 일들은 돈이 안 되길래
남친을 설득해 주변 공장들을 돌다 피코스티라는 곳을 뚫음
 
그릭들이 운영하는 곳이었고 여기가 정말 특이했던 점은 워커의 90%가 장애인 아니면 똥양인이었다는 것임
한쪽 얼굴 녹은 남자랑 초고도 비만이라 앉아서만 일하던 호주인이 기억남

유럽인이라곤 고향에서 험한 일 좀 해본 것 같은 프렌치 커플과(얘들이 똥양인들 부리는 매니저역할)
언제나 무표정한 에스토니아인 세 명이 전부였고 난 거기에서 돈 냄새를 맡았음
그간 관찰한 바론 똥양인 백팩커들만 있는 농/공장은 대체로 노예처럼 부리면서 돈을 많이 주는 곳들이었기 때문에..

보스는 내가 똥양인이라 우리를 써줬던 거 같음
남친은 스포일된 1세계놈답게 근무환경에 대한 컴플레인 했다가 바로 잘림


이 공장의 성격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장소는 화장실이었음
화장실이 딱 두 칸 뿐이었는데 수십명의 워커들이 한 칸은 내버려두고 다른 한 칸 앞에만 줄을 쉬는시간 내내 서있길래 
내가 다른 칸 문을 여니까 한 대만인 소녀가 파리한 얼굴로 그러면 안돼! 거긴 보스 전용이야!!! 라고 외침

얼탱이가 없어서 그냥 썼고 쓰고 나왔더니 다들 뭔가 어..어떡해! 크..큰일이야! 하는 듯한 시선을 던졌는데
그 눈망울들이 마치 산업혁명 시기 착취당하던 아동노동자들의 그것과도 같아서 꽤 기억에 남음

암튼 쉬는 시간 10분을 화장실 줄 서다 보내긴 싫어서 계속 보스 화장실 몰래 쓰다가
남친 짤린 후로는 나도 짤릴까봐 걍 밖에 나가서 오렌지 밭에 방뇨함


곧 성수기가 되었고 하루 16-17시간 동안 일을 하게 되었음
흉작에도 불구하고 이 공장은 어떻게 된건지 일이 미친 많았음. 거지였던 나는 일단 기뻤음

근데 하루 6-7시간 자고 1시간 동안 식사 + 세끼 식사 다 준비하고 일만 하는 생활을 며칠 하니까 이상증세가 나타남

나의 업무는 레일을 타고 굴러 내려오는 오렌지들을 분류하는 sorting이었는데
잠자리에 들면 자꾸 그 오렌지 굴러오는 장면이 재생되고 공장 기계소음이 귓가에 들려오는 것임

그것땜에 자꾸 깨니까 진짜 정신이 나갈 거 같아서 가끔 새벽에 거실에 나가 혼자 쳐 움
그때 결심한게 이런 식의 노동은 다시는 하지 않겠다 였고
몇 주 뒤 정착자금 달성한 다음에 바로 그만뒀음 

그래서 훗날 나의 이 미친 쉬프트 이후로 피코스티가 베리의 삼성이라는 별칭을 얻으며 궁핍한 백팩커들의 선망의 직장이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을 땐 기분이 이상했음


암튼 여기는 진짜 희한했던게 보통 호주에서 저런 미친 쉬프트를 주는 직장은 없단말임?
초과근무수당이 겁나 쎄서 걍 쉬프트 두 개로 나눠 두 사람을 고용하는게 고용주 입장에서 이득임

근데 이 공장 굿 프로덕트라고 상도 많이 받고 그랬던거 보면 생산성이 좋아서 저 방식을 고수했던 거 같음 + 적은 인원관리

 
아무튼 하루 16시간이고 주69시간이고 그런 미친 노동시간은 너무 비인간적임
오렌지 공장은 이십대때고 시즌 터졌을 때 반짝 하는 알바니까 버텼지
리얼직장에서 사람을 저렇게 갈아넣으면 너무 삶이 불행하게 느껴질 거 같음

정주영도 아니고 월급쟁이들 중에 정신과 육체에 데미지를 입어가면서까지 69시간 남의 일 해주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 싶음

그리고 한국은 이미 인간을 쥐어 짜내는게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문화가 곳곳에 산재해있고
거기서 파생되는 정신병들도 심각한 사회라고 생각함
반발 심하니까 윤석열이 60시간으로 정정하라고 했다는데 60시간도 솔직히 토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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