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세계에요

자폐 스펙트럼에 대한 생각 -1

유 진 정 2023. 7. 30. 17:08

 

옛날에 강사 일을 할 때 눈에 띄게 특이한 점이 있는 학생들이 있었다. 
총 세군데 학교 학원에서 일을 했는데 세 곳 모두 있었고 모두 남학생

첫번째 학교에는 말을 안하고 눈을 안 마주치고 소실점 수업을 하며 숲길을 그려보라고 했더니 모든 나무가 도끼로 잘리고 밑둥만 남은 처절한 그림을 그렸던 학생이 있었는데 (심지어 잘그림)
다른 학생들이 얘의 증세를 빠르게 눈치채더니 알아서 챙겨 주었음. 얘가 제일 작고 어리기도 했고.

그렇게 한 학기가 지나니까 학생 표정이 좀 좋아졌고 카메라를 들고가 애들 사진 찍은 날은 정말 활짝 웃어서 좀 감동함
그러고 며칠 뒤 학생 어머니가 찾아와 감사인사를 하셨는데 이유는 애가 어릴 때 수술도 많이 했고 어떤 컨디션이 있는데, 방과 후 활동을 하면서 많이 밝아졌다고 

내가 딱히 신경 쓴 건 없었기 때문에 왜 밝아졌을까를 생각해봤는데 사회적 상호작용이 부족하니까 아마 또래친구가 별로 없었을 것이고, 느슨한 분위기에 좋아하는 활동 하면서 형누나들이랑 일종의 관계를 맺다보니 긍정적 효과가 있지 않았을까 싶었음

 

두번째 종합학원에선 둘이 친구인 A와B가 강사들 골머리를 좀 썪임
열살전후 남아들 오지게 말 안듣는건 공통이긴 한데 얘들은 뭔가 다른 애들이랑 말썽의 양식이 다르다고 느낌 

A는 말을 문어체로 하는 경우가 많았고 눈을 잘 안 마주쳤으며 혼잣말을 많이 하는 개구장이였음
그래도 어휘력이 뛰어나고 위키피디아처럼 말하니까 얘랑 이야기 할 땐 재미가 있었음. 또 모친이 바쁘신 분이라 관심에 굶주린 느낌이 짠하기도 하고 해서 이야기를 자주 함

그러던 어느날 수업 중에 A가 폰을 가지고 놀길래 내놔 하고 폰을 털어봄
전에 번호 가르쳐 달라고 한게 기억나서 나 뭐로 저장해놨는지 볼거임 하고 확인을 하니 내 이름을 사랑이라고 저장해 놓음

그래서 나는 놀란게 그 또래 남자애들 체면=목숨이기때문에 이런 상황에서는 필살저지를 하는게 보통이란 말임
근데 얘는 내가 그걸 보던 말던 너무 차분하게 앞만 보고 가만히 있으니까 그 감추지 않음이랄까 솔직함이랄까 그게 상당히 특이하다고 느낌

B의 경우는 가엾다고 느꼈음
일단 딱 봐도 눈동자가 와들와들 흔들리고 시선은 중구난방에 한순간도 몸을 가만히 두지 못함
옆에 있는 사람까지 불안해질 정도로 엄청나게 산만했고 말 실수도 많이해서 또래사이에서도 배척을 당함. A무리에서도 종종 쿠사리를 먹음

그리고 앞에 놓고 뭐 가르치다보면 애가 너무 흥분한 나머지 막 황당하고 부적절한 말을 내뱉는데 나도 그게 계속되면 평정심을 잃고 뭐라고?? 빡쳐하면 얘는 더 당황해서 이상한 말 하고 악순환
가끔 시선이 고정되어서 눈을 들여다보면 슬픔으로 가득차 있음

학교에서도 엄청나게 혼난다고 들었고 원장님께 상황을 보고하니 걔는 원래 그래요, 애 엄마도 비슷한데 또 쿨하심 이라는 대답이 돌아옴
애가 혼나고 들어오면 모친이 막 흥분해서 전화를 하는데 아 이런이런 일이 있어서 혼 좀 냈어요. 하면 헐 그렇군요 하고 빠른 인정 뒤 사과하고 전화를 끊으신다는 것이었음 (이 리추얼의 반복])

아무튼 나는 A와 B의 증상에 흥미를 느꼈고 왜 그러는지가 너무 궁금해서 도서관과 웹을 탈탈 털었는데 그래서 그때  ADHD와 아스퍼거 증후군에 대해 알게 됨
B의 경우는 빼박 ADHD였고(모계 유전 추정)  A는 자폐까지는 아닌 거 같지만 남들보다 스펙트럼 근처에 가까이 있는 경우라고 생각되었음

그래서 원장님께 A는 치료를 받는게 좋지 않겠나, 의견을 제시했는데 이런 건 민감한 문제라 부모한테 함부로 말하면 안된다 하시길래 그도 그렇겠다 싶어서 걍 가만히 있었음 
당시엔 ADHD나 아스퍼거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고 동네가 막 교육열이 강한 곳이 아니라 학부모들도 여기에 대한 이해가 있진 않았던 거 같음 

세번째 학원에는 가장 어린학생이 자폐스펙트럼이었음
모친이 의료기관 종사자셨고 미리 학원에 공지를 해주심
학생은 얌전했고 학습능력도 좋았음. 또래에 비해 키가 컸고 단정하게 생겼는데 얘도 눈을 안마주치고 표정이 전무라고 할 수준으로 없었음

그러다 어느날 학생이 푸우 필통을 가지고 왔는데 이 필통 구조가 재밌는게 길게 늘어난 푸우의 배 부분에 지퍼가 있어 거기서 연필을 꺼낼 수 있게 되어 있었음
그래서 헐 푸우 배를 갈라서 연필을 꺼내네, 라고 무심코 말했는데 갑자기 얘가 눈을 빛내며 너무 기뻐하는 것임; 웃는 거 처음 봄 (애들은 본능적으로 죽음이라는 소재에 이끌리는 듯함 전에 우리과 교수님이랑 분교에 공예 가르치러 다닐때 전통문양 너무 노잼이라 해골을 만들어 줬더니 다들 열광하며 괴기 작품들만 제작해서 교수님 탄식)

암튼 그러더니 맨날 와서 선생님. 푸우의 배를 갈라요. 하고 지퍼를 열어 펜을 꺼내는데 이거 나의 실수였던 거 같음
애가 여기에 재미를 들려서 수업을 안하고 푸우 배를 갈랐다가 봉합했다가 그거만 하려고 하는 것임. 그래서 필통을 뺏으려고 하다가 손목을 붙들림
근데 애가 힘이 예상보다 너무 센 거임. 빌런같은 표정으로 웃으면서 손아귀에 힘을 점점 세게 주는데 약간 공포감을 느낌 
본능도 힘도 앞으로 점점 더 강력해질텐데 가족들 빡세겠다는 생각을 함

 

아무튼 일련의 경우들을 목격하면서 학습한 것은
발달장애 비율이 생각보다 높음 / 가족들 중 모친의 부담이 큼 / 자폐는 공통점도 있지만 스펙트럼이기 때문에 중-경도의 상태가 많이 다름 (중증자폐와 고기능 자폐인 아스퍼거의 상태는 천지차이) 정도였는데
최근 다음과 같은 자료들을 보았음 

밥 먹어야 함으로 다음 포스팅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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