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링필드에서 맞은 생일. 프놈펜 Killing Fields, Phnom Penh 2012/10

여행기예요/CAMBODIA 2013.03.10 19:03


 프놈펜의 왕궁. 노로돔 시아누크 전 국왕의 조문이 끊이지 않았다.






캄보디아에서 가장 충격적이였던 것은 사람들의 순진멍청함이였다. 모월모일 호텔 직원 쏙(가명) 군과의 대화.


쏙: 어제 달 봤음? 


나: 아니 안 봤는데.. 달이 이뻤음?


쏙: 아니 그게 아니라.. 기적이 일어났당께


나: ??


쏙: 우리 위대하신 시아누크 국왕님의 얼굴이 달에 나타났다는거 아니겠음!!!


나: 으잉?


쏙:  넌 아마 믿기 힘들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만 본게 아녀, 태국에서도, 라오스에서도 많은 사람이 봤다고


나:  단지 많은 사람들이 봤다는 것이 과학적 증거가 될수는 없음. 사람들은 가끔 실제하는게 아니라 자기들이 보고 싶은걸 보기도 한다고


쏙: 아따 아니랑께 우리 위대한 국왕님의 죽음을 하늘에서도 애도하는 것이 틀림없당께 신문뉴스에도 나왔당께


매튜: 자꾸 위대하다 위대하다 하는데 넌 국왕을 왜 그렇게 좋아하는거야? 


쏙: 위대하신 우리 국왕님의 업적을 열거하자면... (블라블라블라)


매튜: 재미있네 프랑스에서 정치인이 죽는다면 사람들이 기뻐하면 했지 슬퍼하진 않을텐데..





기사가 나가자마자 시장에선 이런 사진이 유통되기 시작했다. 미치겠네 진짜





사람구경 불구경에 신난 꼬꼬마들












이나라 사람들이 요로코롬 순진멍청해진데에는 물론 이유가 있음


캄보디아는 1949년에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로부터의 독립을 인정받아 노로돔 시아누크 국왕에 의해서 통치되고 있었지만, 왕제에 대항하는 국내 파벌 간의 다툼으로 인해 국내에는 불안정 요소를 안고 있었다. 1960년대 중반까지 유지되어 있던 왕의 미묘한 조정책은 실패로 끝난다.


캄보디아 영역 내의 북 베트남군 및 남베트남 해방민족전선(베트콩)의 대규모 보급 기지의 존재, 공산군에 대한 보급양륙항으로서의 사용, 은밀한 정보 수집, 사보타주 및 남베트남군과 미군에 의한 영공 비행은 캄보디아의 내키지 않은 중립을 선택하게 했다.


그러나 1965년 2월에 미국이 북 베트남의 공습을 단행(→베트남 전쟁)하면서, 시아누크 정부는 대미 단교를 단행해, 남베트남 해방민족전선의 거점이 되었다. 미국은 인도차이나 안정과 전쟁의 수행을 위해서, 캄보디아에 친미적인 정권을 수립할 필요가 있었다.


1970년 3월 18일의 아침, 시아누크 국왕이 모스크바와 베이징에 방문 도중, 하원이 갑자기 소집되어 국가원수로서의 시아누크의 하야를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주동자이던 론 놀 장군은 비상시 권력이 주어져 수상이 되어, 10월에 크메르 공화국의 수립을 선언했다. 한편, 시아누크의 사촌형제 시리크 마타크는 대리의 수상으로서의 그의 지위를 보관 유지했다. 론 놀의 수상 취임식 때, 미군은 하늘로부터 시아누크를 비판하는 삐라를 뿌려, 론 놀을 지원하였다. 신정부는 미국이 보증하는 형태로 권력이양의 유효성을 강조해, 많은 외국 정부의 승인을 받게 되었다. 


쿠데타의 몇 일 후, 시아누크 국왕이 베이징에서 론 놀에 저항을 호소하면서, 거기에 답하는 데모와 폭동이 나라의 도처에서 발생했다. 3월 29일에는 약 40,000명의 농민이 시아누크의 복권을 요구하는 데모 행진을 실시했지만, 군대와 충돌해 많은 사상자가 나왔다. 론 놀은 다음 달인 4월 미군에 자국에의 침공을 허가해, 농촌 지역 곳곳에 공습을 실행하였다. 이것은 베트남 전쟁의 호치민 루트를 분쇄하기 위한 목적이었지만, 수 십만 명의 농민이 희생이 되었고, 공산주의 세력 크메르 루주의 급격한 성장을 불러왔다. (출처: 위키백과)



그리고 1975년 4월. 크메르 루주의 민주캄푸치아 정권이 수립된다. 

3년 7개월에 걸친 집권 기간동안 폴포트를 위시한 크메르 루주는 이상적인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한다는 명목하에 국민의 삼분의 일에 달하는 200여만명을 학살한다모택동 휘하 홍위병들이 지식인들 때려 죽이던 것처럼. 갸들은 그래도 인구라도 많았지. 이나라 공부좀 했다하는 사람들은 그때 다 죽었을거야해서 오늘날도 교육자가 많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한다. 끔찍한 일이지


프놈펜에서 15Km 정도 오토바이를 타고 남쪽으로 가다보면 그 대학살의 현장, 청아익 킬링필드가 나온다.

이날의 나의 생일이기도 했다. 오늘 생일이라고  매튜에게 말했더니 믿지를 않아서 여권을 보여줬음.

매튜는 생일선물이라며 킬링필드 입장권을 사주었다.






아기들과 어린이들은 발을 잡고 이 나무에 힘껏 쳐서 죽였다고 합니다



추모의 팔찌들




이 식물은 가장자리가 무척 단단하고 날카롭습니다. 목을 잘라 죽이는데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소중하게 닭을 안고 가던 직원












이런건 가지고 들어가면 안돼요




청아익의 입구









거품강 윽




st.172 밤이되면 술집에 캄보디아 소녀들과 서양인 관광객들이 득실득실

이날 생일기념 맥주한잔 하는데 옆자리 미국아저씨가 '걔는 child 가 아니라 teen 이라고 그러니까 괜찮아' 를 고래고래 외치는데 

시발 무슨이야기를 하는건지 상상하고 싶지 않았음




 오 동남아의 강렬한 태양. 양지에 신발을 내놓았더니 줄어들었다




술 만땅 취한 프랑스 여자들이 쳐들어왔음. a la queue leu leu (줄을서라 뭐 그런뜻인듯) 라는 노래를 부르며 술집에 있는 사람들을 굴비처럼 엮어서 행진을 시작했다. 우리의 국적을 물어보기에 매튜도 프랑스에서 왔어 했더니 매튜가 날 죽이려고 했음. 이날  이후로 프랑스인이나 한국인을 만났을때 서로의 국적을 비밀로 부쳐주기로 무언의 합의가 이루어 진듯




불단. 공양으로 떡,바게뜨(프랑스 식민지였던지라 바게뜨가 흔하다) 등을 올려놓음




프놈펜엔 스트리트 키드 들이 많이 돌아다녔다. 불단위의 바게뜨는 쟤들이 가져갔음. 그래 바로 그정신이야!!




National Museum of Cambodia 




내부가 아름답다




12세기말에서 13세기 불상들의 표정은 정말 멋졌다. 

이렇게 수준높은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는 국가가 오늘날 이리 개판으로 돌아가고 있다니




아앗 니들은 그 하누만의 원숭이 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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