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라가 참 재밌는 겁니다
이번 봉사 때 해프닝이 좀 있었다.
하나는 공사현장에 떨어진 이웃집 할머니네 밤을 봉사자들이 주워 먹어서 센터 매니저가 본인 밤을 들고 사과하러 간 거고
두번째는 식당에 가니 공사장에서 일하던 외국인 봉사자가 다 먹은 컵라면 그릇을 쥐고 있었고 그걸 본 나의 갈망이 끓어오름개맛있겠다헉헉
그래서 나 잠깐 공사장 가서 저거 좀 먹고 오면 안되냐고 선생님께 여쭤보니 코스 매니저는 코스 끝날 때까지 센터 내에 머물러야 된다는 단호한 답변이 돌아옴
근데 이제 알고보니까 공사현장에서도 동물성분(새우)이 들어 있는 라면은 먹으면 안되는 거였음
센터 담장 밖이니까 사람들이 일종의 grey area라고 판단했던 거 같은데 이것 역시 실라(오계)를 어기는 행위라고
그 일이 있고 봉사자 미팅 때 설교를 좀 들었는데 선생님이 등을 약간 뒤로 기울이고
이 비슷한 표정으로
실라가 참~ 재밌는 겁니다~? 라는 말을 하심.
부처님 때는 공양으로 고기 받으면 다 먹었지만 그거는 선택을 하지 않는, 주는 건 다 받는 일종의 포기의 공덕을 닦는 행위였기 때문에 받았던 거고 센터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있기 때문에 동물의 생명을 죽여서 먹는 건 하지 않는다,
그런 얘기를 하셨음. 그러더니 이 실라는 우리를 구속하는 게 아닌, 지켜주는 거라는 이야기를 하시길래 동감함
인생 전반을 돌이켜 보면 삶에 별 원칙이 없었던 거 같은데 좋게 말하면 non-judgemental하고 나쁘게 말하면 짐승적 삶
근데 문제는 이렇게 사니까 피곤한 인간/상황에 자꾸 말려듬
그리고 욕망과 관련된 상황을 마주하면 아 할까말까할까말까 번뇌가 들끓어오르게 되는데 원칙 정해놓고 지킬 거 그냥 딱 지켜버리면 에너지가 엄청 절약되더라고
비슷한 맥락으로 되게 루틴한 삶을 사시는 도반께 어케 그렇게 살아요 하니까 이게 루틴이 되게 편한 거라고,
맨날 7시에 일어나야지 정해놔 버리면 30분만 더잘까 어쩔까 고민하는 그게 다 번뇐데 거기에 에너지를 안 소모해도 되니까 편하다, 라는 말을 하셨는데 그래서 나도 소소한 루틴을 몇 개 만들어봄
에너지 절약도 절약인데 같은 일 비슷한 시간에 매일 하는 이게 은근히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 줌
도대체 왜 예전에는 하루가 반복되는게 지겹다고 생각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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