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움이란 무엇인가 예술이란 무엇인가 - 첼로켜는 고슈
나보다도 나이가 많은 이 고전애니를 보게 된 계기는 우연했다
노을이 지던 저녁 모리오카 시내를 혼자 걷던 중 문호 미야자와 겐지의 동상을 마주하게 되었는데
누가 동상의 품 안에 작은 인형을 넣어놓은 걸 봤음
어쩐지 익숙한 이름이기도 해서 위키 검색을 해봤더니 <은하철도의 밤> 이라는,
은하철도 999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열차 씬에 영감을 준 단편소설을 쓰셨다고
그의 소설 중엔 애니화가 된 <첼로켜는 고슈>도 있다길래 귀국 길에 찾아봤다가 깜짝 놀랐다
너무 잘 만들고 귀여워서!
같은 모리오카 시의 수퍼마켓에서 본 이 광고판이 떠올랐다.
불면과 신경증에 효과가 있다는 약의 광고인데 저 펠트인형 강아지의 디테일을 보시라
예민한 사람들(구매층)이 공감할 법한 미묘한 표정,
한색의 의복으로 표현한 가라앉은 감정선,
트위드 바지에 한 쪽에만 한 귀걸이가 정말 디테일에 미친 민족이라는 표현을 상기시켰다.
첼로켜는 고슈의 감독은
반딧불의 묘와 평성 너구리 전쟁 폼포코 등으로 유명한 타카하타 이사오
인력과 예산을 적게 투입하는 대신 6년이라는 긴긴 시간을 투자해
후세에 남을 작품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제작했다는데
정말 장면마다 전달력을 극대화 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불어넣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주인공 고슈는 오케스트라의 첼로 파트를 맡고 있으나 감정부족, 실력부족이라는 지적을 받고있는 상황이다.
권위적이며 완벽주의자이기 까지 한 지휘자는 남들 앞에서 고슈를 맨날 디스하고
위플래시스러운 나날을 보내며 고통받는 고슈
눈물을 훔치며 집으로 돌아간 그날,
누군가 똑똑 문을 두들기는데 ..
고양이가 사람 말을 시작하는데 화부터 내는 주인공 캐릭터가 너무 약빨았음 베토벤 그려놓은 것도 좀 봐
츤데레의 정석 주인공
마냥 호구가 되기는 싫었는지 문을 하나씩 잠구어 고양이를 감금하더니 부드러운 슈만 대신 <인도의 호랑이 사냥>이라는 곡을 미친듯이 켜댄다
경련하고 애원하고 심지어 각목으로 고슈를 습격해 멈추려고도 해보지만 연주에 압도되어 결국 실신하고 마는 고양이..
연주가 끝나자 허세를 부리는 고양이를 보며
여유롭게 담배 한 대를 꼬나무는 나쁜 남자 고슈
호구인줄 알았더니 자기 안의 BADASS를 발견해낸 그 였다.
그리고 다음 날엔 웬 뻐꾸기 새끼가 날아 들어와 음정 지적하면서 둘이 합주 대결 하고 밤을 꼴딱 세고 마는데 뻐꾸기는 덜 귀여움으로 소개는 패스
다음 다음 날 들어오는 동물은
왕 귀여운 너굴맨
가장 인기가 많아서 오프닝에도 나와서 인사도 함 (나는 고양이가 더 맘에 듬)
저녁밥을 준비하던 고슈는 이번에도 츤츤하게 화부터 버럭 냄
하지만 이미 온 동네에 호구라고 소문 다 났는걸
너굴맨 고슈 신발 끌고 와서 발 받침 삼는 이런 묘사가 너무 재밌음 난 일본이라는 나라가 항상 신기함 긍정적인 면에서든 부정적인 면에서든
아무튼 너굴맨은 고슈의 박자감각을 지적하고
킹받은 고슈 또 밤 꼴딱 셈
며칠 뒤엔 쥐새끼 모자가 찾아옴
그리고 밝혀지는 진실!
온 동네 동물들이 몸이 안 좋을 땐 고슈네 집 지하로 스며들어가 음악력을 흡수하고 건강을 되찾고 있었던 것!
첼리스트 고슈는 지금까지 무료로 기치료를 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연주를 멈춘 고슈를 마구 원망하는 쥐 엄마..
호의가 계속되면 둘리가 되듯이 이제 고슈는 동물들의 영원한 노예이다
이왕 호구 된 거
아기 새앙쥐를 첼로 바디 속에 집어넣기까지 하며 집중 치료를 시작하는 고슈
아까 신발 위로 올라가는 너구리만큼 귀엽고 디테일한 묘사임
엄마 쥐 걱정되어서 들여다 보고 아기 쥐 첼로바디 안쪽 곡선으로 주루룩 미끄러지는 동작이 재밌음
이때부터 고슈는 체념.. 이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여 동물에게 화를 내지 않고
심지어 귀한 빵을 나눠주기까지 하는 동정심을 보여준다. 그는 성장한 것이다.
그리고 오케스트라로 돌아간 고슈는 연주를 완벽히 해내고 그의 악단은 공연에서 굉장한 갈채를 받는다.
지휘자는 고슈에게 불과 일주일 사이 변화를 만들어 냈다며 칭찬을 하고 그때 고슈의 머릿속에 동물들의 발칙한 발언들이 스쳐지나가며
' 그랬구나 걔들이 나를 훈련시킨 거였어!!! '
하고 깨달아 울고 웃는 고슈
고양이로부터는 광기와 배짱을,
뻐꾸기로부턴 정확한 음정을,
너구리에게서는 박자감각을,
생쥐모자에게 동정심과 감수성을 배우게 된 고슈였다.
심지어 앵콜도 독주로 해버리고 ( 고양이 경련시킨 인도 호랑이 사냥 곡을 미친놈처럼 침 )
그의 락스타 같은 모습에 이끌린 악단 홍일점에게 은근히 대쉬받는 뒤풀이 장면을 끝으로 해 피 엔 딩
황혼을 배경으로 귀가하는 고슈와
모리오카 시내의 황혼,
미야자와 겐지 동상의 뒷모습으로 포스팅도 마무리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