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지 못해 잃어버리는
90년대 패션에 관한 웹게시물을 보다가 문득 충격을 받은 적이 있음
곱게 꾸미고 역전 벤치에 앉아 일행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시선이.. 전부..
정면을 향하고 있는 것임
아무 것도 안하고 멍을 때리고 있는 것임!
고개를 폰에 처박고 있는 사람이 한명도 없는 것임!
사람들이 멍때릴 시간이 없어졌다는 것은 곧 사유의 죽음이라는 뜻으로 다가왔고
공포는 나에게 액션을 취하게 했다. 일단 인스타그램을 삭제함
이게 작년 초여름의 일인데 인스타 열달 정도 안 쓰니까 짱좋음 (메시지는 pc로 확인)
물론 팔 거 생기면 다시 할 거지만 사적 용도로는 사용하지 않을듯
이 뒤로
순간에 몰입은 '순간' 이 존재하고 '나'가 사라지는 거지만
소유에는 '나' 가 들어가는 거라 감상의 질이 낮아질 수 밖에 없는듯요
소유하려는 시도가 반대로 진정한 소유(내면화)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현대인들은 나를 점점 버리지 못하게 되어가서 많은 걸 잃는군요
라는 대답을 했는데
개인으로 하여금 몰입보다 가짜 소유를 추구하게 만드는 시스템이 젊은 인류를 불행의 구렁텅이로 몰아처넣고 있다 정말로
난 이 주제에 대해 오래 전 부터 생각해왔다. 강박적으로 적고 사진을 찍어왔으니까
늘 현재에 몰입하지 못하고 기록(=미래)에 집착하는구나, 라는 아쉬움이 있어왔는데
이제는 모두가 자처해서 그 고통을 짊어지려 드는구나, 그걸 처음 자각했을 때 기분이 아주 묘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도 내 경우는 과시나 스스로의 이미지를 위해 하는 기록은 아니니까 고통이 그렇게 크진 않았는데
저 카네기홀 저건 거의 자해 수준 아님? 자해이기도 하고 공해이기도 하고..
저번에 올린 크래쉬 락페 영상 속 소녀들은 눈이 너무 반짝거리고 행복해 보였는데
왜냐면 걔들은 스마트폰이 없고 기록(=미래)에 대한 집착이 없고 오직 순간만을 온전히 즐기고 있었으니까
제일 덜 행복해 보이던 사람은 비키니 입고 목마 탄 여자
왜냐면 그 여자는 너무 예쁘고 벗었고 불안정한 지반에 엉덩이를 걸치고 있었고
무엇보다 그런 자신의 이미지를 의식하고 있어서 몰입의 수준이 낮았음
아무튼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현대인의 족쇄와 채찍은 스마트폰과 SNS가 맞다고
거기에 대한 자각을 가지고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고. 그게 철학과 예술 사회가 살고 나도 사는 길
구체적 보호 방안에 대해서는 다음 번에 다시 씀..
#디지털 저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