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세계

치한과 개

유 진 정 2024. 1. 27. 01:52

운동가는 길 과자 사먹으러 ㅇㅇㅅㅋㄹ에 들렀음

이유는 모르겠는데 기분이 상당히 찝찝해짐
그 상태로 과자를 고르고 있는데 등 뒤로 문 여는 소리가 짤랑짤랑 들려옴

님들 그 기분 암?
지금 내 뒤로 들어올 인간은 분명 개짓거리를 할 것이라는 예감 그러나 논리적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그 기분 

뒤를 돌아 볼 필요도 없이 꽐라된 남자가 괴성을 질렀고 나는 과자를 계속 골랐음

그동안 남자는 노래를 좀 부르다가 나한테 하는 말인지 지한테 하는 말인지 혼잣말을 주절거리며 바구니에 아이스크림을 공사판 포크레인마냥 팍퍽 퍼 담음 

그와중 나는 이 인간이 아이스크림을 집어 던졌다가 주웠다 쇼핑하는 척 하면서 나를 흘끔흘끔 존나 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됨
그래서 옆으로 다가가 새콤달콤을 골랐음 여차하면 주머니 속 스댕텀블러로 정수리를 찍어야지 하면서

그렇게 새콤달콤 블루베리소다맛을 집어서 계산하고 나와 운동을 갔는데 왜 빈 가게에 들어갈 때부터 찝찝했는가 짚어봄 

밤길이 매우 한산+ 취객이 등장할 확률이 높은 금요일 밤
그리고 나는 아마 들어오기 전 술취해 걷는 남자를 봤을 것임
딴 생각을 하고 있었거나 원거리 등의 이유로 기억에서 누락되었겠지만 뇌가리 한 구석에서는 이미 수집한 정보를 처리하고 있었을 것

실제로 직관이라는게 그런 식으로 작동한다고 함
우리의 감각은 이성보다 한 발 앞선 경보체제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막연한 찝찝함은 무시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신호라고 (서늘한 신호라는 책에 여기에 대해 자세히 나와있음. 매우 재미있고 유용함으로 일독을 추천)

그리고 내가 일부러 남자의 옆으로 다가간 이유는
물론 아까는 자동적인 행동이었지만 지금 해석해보자면  

- 등을 보이고 있는게 찝찝함

- 이십대 초반 화실 회식을 마치고 혼자 귀가하던 길에 있었던 일인데
누가 부르는 소리가 들리길래 오른쪽을 보니 검은 차가 한 대 서있고 그 안에서 목소리 톤이 높은 남자가 오 좋은데 몸매 죽이는데 하며 나를 희롱하고 있었음

주변을 둘러보니 사람은 없었고 대신 전봇대 아래에 공사장 쓰레기들과 못박힌 각목이 있길래 나를 보호해야 할 거 같아서 일단 집어듬. 그리고 차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니까 차가 슬슬 멀어짐
그 상황이 되게 동물적이라고 느꼈고 남자는 개같다고 생각했음. 욕이 아니고 개들이 딱 저러잖음 도망가면 쫓아오고 쫓아가면 도망가고
그래서 이번에도 상대의 퍼스널 스페이스를 먼저 침범한게 아닌가.. 

그리고 차 속의 남자도 이번 취객도 소심함을 느꼈기 때문에 별로 안 무서웠던 거도 있음
( 과장되게 행동함 / 도망갈 만반의 준비를 해놓고 멀리서 희롱 )

각목을 들고있던 텀블러로 찍든 싸우면 어차피 내가 질 확률이 높음 그래서 이 방법은 심약한 상대에게만 써야할 거 같고
진짜로 위험하다고 느껴지는 인간을 만나면 즉시 장소에서 벗어나거나 동요하는 티를 숨기며 자연스럽게 자리를 회피하는 것이 정도라고 생각..
( 서늘한 신호에서는 찝찝함을 느꼈음에도 무례하게 보일까봐 엘베를 그냥 보내지 않고 범죄자와 함께 탔다가 희생된 여성들의 경우가 소개됨 )

그래서 이번 글의 요지는

1. 찝찝함을 무시하지 말자   
2. 일찍일찍 다니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