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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

새해 첫날 인왕산 가서 일출봤다혼자라면 절대 안 할 짓인데 최인호 작가가 제안하셨고워년씨(시험준비하시던 분)랑 인왕산 한 번 가죠 하고 안 간 기억이 나길래 십년 전 그 파티로 가봄 밤새고 가야겠구만 했는데 웬일로 자정 쯤 잠들어서 decent한 상태로 집을 나섬마을버스 타면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우물우물) 했는데 아저씨가 인기가요 1위 외치는 호쾌한 톤으로 새해복!많이!!받으십쇼!!!! 하시길래 좋았음 6:50 무악재역에서 만나 최단거리로 정상ㄱ 겨울 등산시 다리를 동결건조 시켜버리는 스웻팬츠를 입고왔지만 338m라 괜찮음헤드라이트 깜박했지만 338m라 괜찮음 (이러다 동네 뒷산에서 119 부르는 거)인왕산은 예상대로 사람이 개많았고 정상 지옥이 예상되길래 줄에서 이탈해 그 밑 어디 쯤에서 해를 기..

2026.01.01

내 머리 속의 프리즘

어떤 이에게 채찍질은 징벌이고 어떤 이에게는 포상이다.어떤 이에게 원전은 종말의 징조이고 어떤 이에게는 기후윤리의 최후카드다.반응은 해석이고 해석은 주관적이다.같은 것을 보아도 해석은 모두 다르게 내린다.이런 상황을 목격할 때 머릿 속에 하나씩 들어있는 프리즘을 상상한다. 정보라는 빛이 우리 안에 닿는 즉시 프리즘이 그것을 굴절시킨다.어떤 파장은 강조되고 어떤 파장은 사라진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시스템에 의해 주입된 정보, 교육, 경험, 자주 가는 웹사이트 등에 의해 프리즘의 형태는 제각각으로 깎여나간다. 프리즘은 정체성, 가치관, EGO 등으로 명명되며 정의와 상식이라는 명목으로 은폐되기도 한다.상식 = 절대적 진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상식이 비슷한 사람과 교류하게 되는 이유는바쁜 뇌가 커뮤니케이션에 ..

2025.12.31

사우나 생로병사

목욕에는 의식적인 면이 있다. 셀프 세례를 주고자 사우나에 다녀왔다. 오늘 영업하시나요? / 저희는 쉬는 날 없습니다. 여주인의 대답에서 당당함이 느껴지는 유서깊은 동네 목욕탕이다. 오래된 맛집처럼 목욕탕도 잘 되는 곳은 로비에 쓸데없는 장식품들이 여럿 놓여져 있다. 아니 잉여의 과시이니 쓸데가 없다는 말은 적절하지 않다. 이곳에는 무려 물레방아가 전시되어 있다. 들어가자마자 할머니들의 여기가 아프고 저기가 쑤시다 레파토리가 펼쳐지고 있었다.42번 락커 앞에는 낮은 위치에 거울이 걸려있어 스스로의 몸을 볼 수 있도록 되어있다. 체중을 재고 샤워를 한 뒤 탕으로 들어간다.중앙에서 jello같은 형태로 솟아오르는 물의 움직임이 아름답다. 위에서 내려다 보다 얼굴을 반쯤 잠기게 집어넣어 시야를 바꾸어 보았다...

2025.12.26

생일의 날

예수님 생신이 다가왔다. 생일에 대해 적어본다.꽤 오랜기간 동안 생일만 다가오면 기분이 별로였다.태어난게 과연 축하할 일인지도 모르겠고 한 걸음 더 죽음에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공증받는 날 같기도 하고 만날 사람이 없다는 사실도 루저처럼 느껴지고 그렇다고 누군가를 만나고 싶지도 않고무엇보다 이 날이 다가오면 깊은 관계를 맺는데 있어 무능한, 자신의 뾰족함을 돌아보게 되는 느낌 때문에 기분이 구렸다.그러나 자존심 때문에 이런 사실을 인정하는 대신 생일 = 중요하지 않은 날 이라는 policy를 스스로에게 주입했다. 오래 전 만나던 남자친구는 내 생일마다 자신의 일정을 만들었고지금보다 더 둔감했던 때라 상처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집착으로 점철되었던 관계라 꽤나 난리를 치루며 헤어졌는데 그 와..

2025.12.24

될일될

작년의 계획대로라면 오늘은 장기코스를 시작하는 첫 날이어야 할 것이다.하지만 이런 저런 고민 끝에 코스를 미뤘다가, 뒤늦게 다시 신청했다가, 받아들여졌다가, 출발 전날 밤 미국 센터 선생님의 최종 결정으로 결국 취소통보를 받았다.막판에 번복된거라 신청을 받아주셨던 한국 선생님이 거듭 사과를 하셨는데 사실 원인을 따지자면 나의 변덕과 조바심 때문이고결국 순리대로 된 거 같아서 잘 되었다는 마음이다. 보호를 받은 것 같기도 해서 감사함을 느낀다.하지만 분명 실망감도 존재했기 때문에 트리플 머쉬룸 와퍼와 만화책 구매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아무튼 이 에피소드를 계기로 지난 몇 년을 돌아보니 우당탕탕 수행일지라는 타이틀이 떠오른다.머릿 속에 조지 해리슨의 My Sweet Lord가 24시간 재생되는 것 같은 환희..

2025.12.19

닫힌 세계는 반드시 자기 자신을 기형적으로 재생산한다.

백년의 고독 줄거리가 기억이 안나서 지선생한테 물어봤더니 그럴듯한 문장을 떡하니올초 예전에 몇 번 뵌 적이 있는 분의 부고를 전해들었다. 자살인지 사고사인지 사인이 불분명하다고 했는데 생전 쓰신 글을 읽고나니 전자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쓰는 문장들은 모두 자신으로 귀결되었다. 다루는 모든 소재들이 존재를 지탱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했고 끊임없이 자기를 호출하고 증명하려는 시도에서 그의 절박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인스타 왜 밀었어요?- 껍데기만 키우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알맹이가 넘쳐서 껍데기가 만들어지면 좋은데 그게 아니라 그냥 껍데기만 빚고 있는 거 같더라고요

2025.12.16

주공아파트의 가을

절뚝대는 동안 가을이 다 가버리는 거 같다. 주말쯤 부터는 지팡이 없이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단풍구경을 가기로 했다. 어디로? 상계주공아파트로 여기서 유소년기의 절반을 보냈다. 남은 절반은 개포, 잠실 주공아파트에서 보냈는데 이 두 곳은 이제 이름도 못 외우겠는 초고층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예전의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다.그 시절 개포 3단지는 초서민 동네였고 아파트 거래가는 오천 이백만원이었다. 아마 천만원쯤 더 받고 집을 팔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팔자마자 강남 집값이 천정부지로 솟아오르는 바람에 부모님은 홧병을 얻었다. 하지만 알빠노초딩 입장에서는 외갓집과 가깝고 화장실에 욕조가 있는 상계주공아파트로 이사온 것이 좋았다. 80년대 후반 외가가 먼저 미아리 한옥을 아파트 딱지와 교환해 이곳에 둥지를..

2025.11.24

색계 베드신

모아놓은걸 봤는데첨엔 걍 양조위 누드 흐흐흐 하며 클릭했다가보다보니 숙연해져서 정좌하고 감상함 다 보고 나니 사는게 뭔가 싶음일단 정말 잘 만든 베드신임 첫번째 베드신에서는 탕웨이가 방어적임 구라치고 있는 입장이기도 하고 얼마전까지 처녀였으니까 반대로 양조위는 거의 돔 수준의 지배적인 면모를 보임 사람을 너무 많이 죽인 사람이라 인간을 못 믿으니까 통제와 관찰로 불안을 잠재우는 수 밖에 없음 껴안아서 자기 표정 가리려는 탕웨이 계속 침대에 다시 눕혀서 얼굴 들여다보고 나중엔 목잡고 섹스함 그러다 점점 신뢰가 생겨서 막판에는 여성 상위도 나오고 아무튼 둘의 심리를 말 한 마디 없이 되게 직관적으로 묘사함 역시 훌륭한 감독 아무튼 그런데 보고나니까 기분이 이상해짐 전쟁이 배경인 영화의 베드신은 특히 그런듯도..

2025.11.12

햄스터 백만마리

기하씨가 조카 어록 정리한걸 보내줌 조카한테 허락 안 받고 우리끼리 얘기해서 걍 올림 - 아빠 발에서 썩은 브로콜리 냄새난다고함. 자기는 식초 냄새 난다고함- 아빠 발 뒤꿈치가 깨졌다고함- 아빠가 나쁜 말, 나쁜 행동 하는건 아빠 잘못이 아니고 하느님이 아빠를 조종을 잘못해서 그런거라함. 그래서 새로운 하느님이 왔으면 좋겠다고함- 다리에 쥐가 나면 햄스터 백만마리가 지나가는 것 같다고 함- 우리는 진짜가 아니고 게임처럼 게임세상에 사는거고 누가 우리를 조종하고 있는 거라함- 외할아버지는 바삭한 부분 혼자 다 먹고, 외할머니는 생선냄새 나고, 이모(홍기하)는 온몸으로 자기를 자꾸 만져서 같이 안 자고 싶다함- 00(동생)이 발에서 피넛버터 냄새난다고 함- 아빠랑 외모를 바꾸자고 하니 아빠는 못생겼고, 얼굴..

2025.11.04

싫은 인간 덜 싫어지게 만드는 법 2025버전

싫은 인간을 떠올림그 인간이 침대에 누워 이불 뒤집어 쓰고 목만 내놓고 있는 장면을 상상함 그럼 덜 싫어짐 요즘은 이렇게까지 해야 될 만한 대상은 없지만.. 대비용 https://digthehole.com/2509 싫은새끼 덜 싫어지게 만드는 법싫은 새끼를 떠올림싫은새끼가 지구 어디 한구석탱이에서 숟가락으로 우적우적 밥처먹고 있는거 상상함 그럼 덜 싫어짐digthehole.com

2025.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