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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모으는 도구

일전에 놀러오신 S님이 명상하는 자리를 사물을 이용해 좀 분리를 시키면 좋다, 그리고 자리 근처에 마음을 하나로 모을만한 도구를 두면 좋다는 조언을 주셨는데. 본인 자리에 두는 불상도 보여주시고.과연 아름다운 조각이길래 어디서 나셨어요 하니 미얀마에서 사오셨다고하지만 마음에 드는 오브제를 과연 쉽게 찾아낼 수 있을지가 의문이고 사실 도구가 이미 있다방석 위에 앉으면 정면으로 보이는 거실로 통하는 문이다그 문을 살짝만 열어두면 한 시간 지나고 눈떴을 때 이런 풍경이 들어온다.10일코스 때 방 안에 앉아 열심히 쳐다보던 창문과 비슷한 모습

2026.02.06

노인에 대한 혐오는 죽음에 대한 혐오

어느날 만화 주인공들 나이는 적정 가임기를 넘기지 않는다는 충격적 사실을 발견했다한번 눈치채고 나니까 현대사회가 노화를 어떤 식으로 취급하는지가 자꾸 눈에 들어오는데 일단 인간의 모든 유쾌한 감각과 연관되는 광고에는 젊은 인간만 나옴동네 커피체인점 문짝에는 나른하게 쏘아보고 있는 BTS 멤버의 얼굴이 리터럴리 대문짝만하게 붙어있고 안경점에도 아마 아이돌인거 같은 소녀들 사진이 맥락없이 걸려있음며칠 전에도 이런 생각을 하면서 안경점 앞을 지나치는데 앗 웬일로 박세리 선생님이하지만 이 역시 노안렌즈 광고였다게다가 얼굴의 모든 주름을 포샵으로 지워놨다..극히 드문 예외를 제외하면 노인은 요실금 디스크 임플란트 등 우리가 반기지 않는 질병과 관련된 광고에만 등장하고 있었다광고는 유혹이고 욕망을 자극하는데에는 성..

2026.02.06

빈자의 보상심리 부자의 특권의식

며칠 전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 길이었다. 서로를 형 동생이라 부르는 두 할저씨가 올라탔다. 차림새는 남루했고 술에 잔뜩 취해있었다. 동생이라는 분의 목소리가 대단히 컸다.못된 놈은 천만원 벌고 착한 놈은 십만원 벌어대한민국 이 썩어빠진 나라가 문제야 내 친구가 동두천에 양계장을 하는데.. 로 시작된 한탄은 곧이 썩은 나라는 90프로 다 뒤져야 돼 착한 사람만 살아 남았으면 좋겠어어떨 땐 전쟁이라도 나서 다 뒤졌으면 좋겠다니까 씨벌 이라는 반사회적 웅변으로 번져갔다. 그 뒤로 자신이 얼마나 착하게 인생을 살아왔는지, 어떤 대단한 사람과 알고 지냈는지 좌중을 다분히 의식한 자기소개가 이어졌다. 모두 과거의 이야기였다. 내용에 비해 장황한 말투와 비틀거리는 몸짓은 추락하는 존엄의 상징처럼 느껴졌다.좀 더 듣..

2026.02.03

도시락과 은전 한 닢

중학생때 우리반에 서영(가명)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좀 통통했고 애가 순했음같은 그룹이라 도시락을 같이 먹곤 했는데 얘가 좀 특이했던게 식탐이 엄청났음 그 애들끼리 밥 먹을때 치킨너겟 같은 맛있는 반찬은 서로 나눠먹잖음근데 얘는 맛있는 반찬이 보이면 호다닥 젓가락으로 집어다가 자기 도시락 위에 쌓아두고 금괴를 지키는 고블린처럼 손으로 벽을 쳐서 접근을 원천봉쇄함그니까 집어온 맛있는 반찬들은 쌓아두고 자기 반찬도 애들이 못 가져가게 방어했던 것임원래 욕심많고 못된 애면 걍 놀부심보려니 하겠는데 평소에는 순하다 못해 호구잡히는 애가 숟가락만 들면 저러니까 여자애들끼리 뒷말이 꽤 나왔고 꼽도 좀 줌그러다 어느날 서영이네 집에 초대를 받아 놀러갔는데 서영이한테는 남동생이 있었음어딘지 모르게 겁먹고 우울한 표정의..

2026.01.19

갓생살기 싫은 이유

용모단정하고 똑똑한 A의 주변에는 사람이 많았다. 일도 공부도 열심히 했고 주말에 열리는 파티에는 빠짐없이 참석했다.만나자 해서 나가면 A는 이미 헤어진 후의 일정까지 모두 짜놓은 상태였다. A의 집에서 나가는 즉시 그의 남자친구가 릴레이 바톤을 전달받듯 여~ 하며 들어오곤 했다.A는 시간을 절대 낭비하지 않았다. 스케줄이 타임터너를 사용해 호그와트의 모든 수업을 뿌수고자 했던 헤르미온느를 방불케했다.손목에 주저흔이 있고 귀여운 말투를 사용하는 A와 단둘이 있게되면 숨이 막혔다.A가 베푸는 대접은 절대 공짜가 아니었다.밝고 생산적인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그는 어두운 감정을 쏟아낼 누군가를 필요로 했다.자유영혼 B는 노동을 거부했다. 대신 인도로 떠났다.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는 그의 육체는 수년에 걸친 여..

2026.01.13

내 머리 속의 프리즘

어떤 이에게 채찍질은 징벌이고 어떤 이에게는 포상이다.어떤 이에게 원전은 종말의 징조이고 어떤 이에게는 기후윤리의 최후카드다.반응은 해석이고 해석은 주관적이다. 같은 것을 보아도 해석은 모두 다르게 내린다.이런 상황을 목격할 때 머릿 속에 하나씩 들어있는 프리즘을 상상한다. 정보라는 빛이 우리 안에 닿는 즉시 프리즘이 그것을 굴절시킨다.어떤 파장은 강조되고 어떤 파장은 사라진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주입된 정보, 교육, 경험 등에 의해 프리즘의 형태는 제각각으로 깎여나간다. 프리즘은 정체성, 가치관, EGO 등으로 명명되며 정의와 상식이라는 명목으로 은폐되기도 한다.상식 = 절대적 진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상식이 비슷한 사람과 교류하게 되는 이유는바쁜 뇌가 커뮤니케이션에 너무 큰 비용을 치르고 싶어하지 않..

2025.12.31

사우나 생로병사

목욕에는 의식적인 면이 있다. 셀프 세례를 주고자 사우나에 다녀왔다. 오늘 영업하시나요? / 저희는 쉬는 날 없습니다. 여주인의 대답에서 당당함이 느껴지는 유서깊은 동네 목욕탕이다. 오래된 맛집처럼 목욕탕도 잘 되는 곳은 로비에 쓸데없는 장식품들이 여럿 놓여져 있다. 아니 잉여의 과시이니 쓸데가 없다는 말은 적절하지 않다. 이곳에는 무려 물레방아가 전시되어 있다. 들어가자마자 할머니들의 여기가 아프고 저기가 쑤시다 레파토리가 펼쳐지고 있었다.42번 락커 앞에는 낮은 위치에 거울이 걸려있어 스스로의 몸을 볼 수 있도록 되어있다. 체중을 재고 샤워를 한 뒤 탕으로 들어간다.중앙에서 jello같은 형태로 솟아오르는 물의 움직임이 아름답다. 위에서 내려다 보다 얼굴을 반쯤 잠기게 집어넣어 시야를 바꾸어 보았다...

2025.12.26

생일의 날

예수님 생신이 다가왔다. 생일에 대해 적어본다.꽤 오랜기간 동안 생일만 다가오면 기분이 별로였다.태어난게 과연 축하할 일인지도 모르겠고 한 걸음 더 죽음에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공증받는 날 같기도 하고 만날 사람이 없다는 사실도 루저처럼 느껴지고 그렇다고 누군가를 만나고 싶지도 않고무엇보다 이 날이 다가오면 깊은 관계를 맺는데 있어 무능한, 자신의 뾰족함을 돌아보게 되는 느낌 때문에 기분이 구렸다.그러나 자존심 때문에 이런 사실을 인정하는 대신 생일 = 중요하지 않은 날 이라는 policy를 스스로에게 주입했다. 오래 전 만나던 남자친구는 내 생일마다 자신의 일정을 만들었고지금보다 더 둔감했던 때라 상처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집착으로 점철되었던 관계라 꽤나 난리를 치루며 헤어졌는데 그 와..

2025.12.24

될일될

작년의 계획대로라면 오늘은 장기코스를 시작하는 첫 날이어야 할 것이다.하지만 이런 저런 고민 끝에 코스를 미뤘다가, 뒤늦게 다시 신청했다가, 받아들여졌다가, 출발 전날 밤 미국 센터 선생님의 최종 결정으로 결국 취소통보를 받았다.막판에 번복된거라 신청을 받아주셨던 한국 선생님이 거듭 사과를 하셨는데 사실 원인을 따지자면 나의 변덕과 조바심 때문이고결국 순리대로 된 거 같아서 잘 되었다는 마음이다. 보호를 받은 것 같기도 해서 감사함을 느낀다.하지만 분명 실망감도 존재했기 때문에 트리플 머쉬룸 와퍼와 만화책 구매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아무튼 이 에피소드를 계기로 지난 몇 년을 돌아보니 우당탕탕 수행일지라는 타이틀이 떠오른다.머릿 속에 조지 해리슨의 My Sweet Lord가 24시간 재생되는 것 같은 환희..

2025.12.19

닫힌 세계는 반드시 자기 자신을 기형적으로 재생산한다.

백년의 고독 줄거리가 기억이 안나서 지선생한테 물어봤더니 그럴듯한 문장을 떡하니올초 예전에 몇 번 뵌 적이 있는 분의 부고를 전해들었다. 자살인지 사고사인지 사인이 불분명하다고 했는데 생전 쓰신 글을 읽고나니 전자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쓰는 문장들은 모두 자신으로 귀결되었다. 다루는 모든 소재들이 존재를 지탱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했고 끊임없이 자기를 호출하고 증명하려는 시도에서 그의 절박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인스타 왜 밀었어요?- 껍데기만 키우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알맹이가 넘쳐서 껍데기가 만들어지면 좋은데 그게 아니라 그냥 껍데기만 빚고 있는 거 같더라고요

2025.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