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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가 되는 장면

이 영상이 위로가 된다는 거는 아니고 뭐 하나 붙잡고 박살을 내고 싶은 심정으로 신호 기다리는데 횡단 보도 건너편 슈퍼 안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편의점과는 도저히 경쟁이 되지 못할 것 같은 낡고 허름한 슈퍼이다.수익이 나긴 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언제나 한산한 곳인데 동네에 아주 오랫동안 존재하고 있는 거 보면 돈 벌려고 하는데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아무튼 그 조그만 슈퍼 안에서 일상적이지 않은 움직임이 포착되었던 것이다. 카운터 앞에 선 안경 낀 백발의 아저씨가 탁구채로 탁구공을 공중에 통통통 띄우며 놀고 있었다. 아줌마는 카운터 안에서 진지한 얼굴로 그걸 보고 있고 코 위에 공을 올리고 균형을 잡는 물개처럼 꽤나 오랫동안 공을 떨어뜨리지 않고 묘기를 부리는 아저씨를 보고 있는데 아 좀 살 것 같구만

2025.03.30

넌 왜 그러고 사는거니 - 더 와이어

고등학생때 친구와 지하보도를 걷다 노숙인과 마주친 적이 있다. 길에서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 옷이 갈색 때로 뭉개져 가죽 같아 보였고 자연적으로 형성된 드레드락이 오금까지 드리우는 검은 얼굴의 노인이었다. 친구는 치를 떨었다. 저 대사는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는데 그 이유는 친구의 발언으로 인해 내가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다. 성격이 밝아서 같이 있을 때 즐거운 친구였다. 안정된 가정에서 자랐고 씀씀이가 호방했다. 당시 나는 부모님의 이혼과 가계경제의 몰락 등으로 고통스러운 사춘기를 보내는 중이었다. 부친이 주먹을 휘두를 때면 가출을 감행하기도 했다. 집 없는 사람의 처지에 이입을 하다보니 노인에 대한 혐오를 퍼스널하게 받아들이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복하게 자란 십대소녀에게 노숙인의 처..

2025.03.24

테자씨의 추억

저번 주는 내내 불안했다.몇가지 생활의 변화가 있긴 했는데 그게 이유는 아닌 거 같고 10일 코스 후유증이라고 생각한다.이런 류의 불안은 내가 자주 느끼지 못하는 감정이기 때문에 흥미로운 경험이었지만 역시 대단히 불쾌했다.아니면 항상 어느 언저리에 자리하고 있던 것이었는데 둔감함이 그걸 인지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던 걸 수도 있고..그러고 보니 급한 성질의 기저에 깔려있는 심리도 결국 불안이 아닌가? 빨리빨리 해야 돼 죽음이 다가오고 있잖아 같은 거 여하튼뉴질랜드 비자 신청하던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공무청에서 문제가 생겨서 워홀비자 신청한 사람들이 도시에 있는기관에 직접 찾아가 해결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깡촌 호스텔에서 차 타고 애들레이드까지 나가는데 인터뷰 시간을 착각했던가 아무튼 좀 후달리는 상..

2025.03.20

사이키델릭 달집 태우기

저번 주 화계사에서 하는 달집태우기를 보고왔다. 이런 풍습이 있는 줄은 처음 알았는데 불교신문 기사 읽다가 한다길래 가봄--달집태우기의 유래와 역사는 분명치 않다. 다만 달집태우기가 예축적(豫祝的) 의미를 지닌 기풍의례(祈豊儀禮)의 성격이 짙은 것으로 보아 오랜 농경문화의 터전에서 생성되고 전승되어 온 풍속의 하나로 생각된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고대사회 이래로 달은 물·여성과 연결되어 농경의 풍요와 생명력을 상징한다. 뿐만 아니라 시간의 질서와 시절의 운행, 자연의 섭리까지도 아울러 상징한다. 이처럼 생산력과 생활력의 기준이 되는 달은 농경 및 어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특히 새해의 첫 보름달이 뜨는 상원(上元)은 그 주술력이 정점에 달하는 시기이므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유독 정월 대보름에 ..

2025.02.20

행복하면 사람을 어떻게 죽이겠어요 - 제너레이션 킬

불합리한 명령을 따라야 할 때 우리는 열받는다. 우리의 인지체계는 부조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부조리를 따르는 것은 곧 생존에 반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조리를 견뎌낼 수 있는 상황은 존재한다. 확고한 목표, 대의가 존재할 때 그렇다. 사소한 부조리는 거대한 목표 아래 그럭저럭 감내할 수 있는 것이 된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목표가 맛이 가 있다면?( 전문 ↓ )https://c-straw.com/posts/5387 행복하면 사람을 어떻게 죽이겠어요 - 제너레이션 킬 : HBO TV문학불합리한 명령을 따라야 할 때 우리는 열받는다. 우리의 인지체계는 부조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부조리를 따르는 것은 곧 생존에 반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조리를 견뎌c-straw.com

2025.02.19

노인의 웃는 얼굴

요즘 삶의 큰 기쁨 중 하나가 산책인데. 누가 노친네 같다고 했는데 일단 킹정하고산책 중 항상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애와 개와 노인이다. 걸어다니는 존재 중 가장 순수하다고 느껴지는데스스로의 이미지를 덜 의식하는 편 + 시간적 여유가 있는 포지션으로 인해 형성되는 느긋한 분위기 때문인듯아무튼 그런데,오늘 산책 코스 중 지나게 되는 약수터에 노인장 네 분이 옹기종기 모여 패트병에 물을 받고 계셨다. 기다리려면 한참 걸릴 거 같길래 한 모금만 먼저 마셔도 되냐 하니 흔쾌히 그러라 하신다. 저걸로 마시라며 분홍색 파란색 약수터 바가지를 가르키셨지만고개를 흔든 뒤 두 손을 오므려 물 나오는 입구에 가져다 댔다. 씻는 건 줄 알았던지 할머니가 반쯤 차 있던 페트병의 물을 내 손에 부왘 부어주시길래손으로 마실 거에요..

2025.01.26

음기왕 서귀포2

굿뭐닝     흐리다더니 짜릿하게 더웠다  오늘은 뭐할 거냐면 전기자전거 빌려서 줜나게 탈거임 서귀포 오는 이유의 90%가 이거임 푸른 바다 옆에끼고 머리카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해풍을 느끼며 페달질만 죽어라 하는 행복 여행오기 한달 전 쯤 좀 빡센 사건이 있었는데 밤마다 천에 나가 자전거를 탔음 아무 생각없이 페달만 밟다보면 좀 살 거 같더라고 휙휙 뒤로 지나가는 풍경처럼 이 또한 지나갈 일       아 또 서귀포는 공원이 참 좋다. 칠십리 시공원 밤에가면 분위기가 오지고 담수풀 있는 자구리 해안공원도 마음이 평화로워짐  여기는 아마 칠십리 시공원이랑 이어지는 작가의 산책로였던 거 같음     쫌 좆같은 예술작품들이 여기저기 있기는 한데 날씨 좋으니까 퉁치자고    전문 ↓https://idpaper...

2025.01.20

렌지 밥과 중중무진

햇반 솥반(버섯) + 렌지에 돌린 동물복지계란찜 조리시간 10분 안 걸림 ㅈㄴ살맛남이렇게 차려놓고 갑자기 overwhelmed됨 이걸 한국말로 모라해야됨 감동의 쓰나미?알을 낳은 닭부터 시작해서 농부, 당근을 세척해준 중국인, 전자렌지 개꿀팁 전수해주신 블로그 독자분들전자렌지 사라고 압박넣은 홍기하 이드페이퍼에서 솥반 추천해준 소장님 솥반 개발자 전자렌지 발명가 서울시의 치수와 음식물 쓰레기를 담당해 주시는 분들 나아가 나에게 생을 부여해준 분들까지 (비록 교류는 단절되었으나)셀 수 없이 많은 존재의 도움으로 지금 이 순간 살아서 밥을 먹고 있다. 다 늙어서 공동체 따위에 의지하게 되느니 자살하고 말겠다는 글을 쓰던 젊은 날의 오만함을 되돌아보게 된다.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는 거 물론 당..

2025.01.15

전자렌지

한국에 잠깐 들어온 홍기하씨가 다녀갔다. 덕분에 냉장고가 깔끔해졌다. 이런 거 어?? 한 숟가락 남은 소스통, 다 버려, 이거 뭐야, 유통기한 지났자나, 그리고 냉장고 위에 저런 와글와글한거 다 치우고!! 전자렌지 사서 올리라고!!!!! 하시길래 네네하고 다 버림그김에 전자렌지도 삼. 린나이. 기능 제일 적은 씸플한 걸로자취 12년 만에 드디어 전자레인지가 생겼다. 영하에 가스 쓸 때마다 환기 십오분씩 하면서 덜덜 떨지 않아도 됨가스렌지 쓰면 환기를 꼭 하도록 하세요 폐암걸리니까집 화분들을 보면서 기하씨가 자기는 이런 responsible한 거는 아직 못 하겠다 그런 얘길 하길래아직 정착을 원하지 않는 상태라는 거 아니겠나, 나도 한국 돌아와서 정착의 의지를 기르려고 처음 화분을 들였다, 는 대답을 했는..

2025.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