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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attening Field

방치된 인스타 팔로워가 갑자기 늘었길래 뭐지하고 보니 다른 계정에 서울펑쓰 소개글이 실렸다 글로우업 매거진의 팔로워는 26만명이고 게시글은 9503개이다서울펑쓰는 생명력이 있는 책이다내가 엮긴 했지만 시기와 장소 사진 속 인물들에 의해 태어난 컨텐츠이기도 하다책은 나의 사후에도 비주류 인간들에 의해 어딘가에서 반복적으로 발굴될 것이다그 사실이 나의 에고에 약간의 위로감을 가져다 주고 그런 스스로의 유치함이 어이없다아무튼 그김에 몇몇 개인 계정들 클릭해서 흐름을 쭉 보는데 티비없이 살다가 고속버스에서 틀어주는 예능프로그램 볼 때의 초현실적 감각을 느낌2014-6년경 계정을 처음 만들고 올리는 것들은 예쁜 콩 강아지 바다풍경 등 그 사람의 눈으로 본 것들임그러다 어느날 셀카가 조심스레 올라오고 이전에 올린 ..

2026.02.27

대단히 화려한 차림의 여자들

S선배는 자취방 복도 끝에서 또각또각 소리가 들려올 때면 그것이 점차 큰 울림을 내며 다가와 자신의 방문 앞에서 멈추는 상상을 한다고 했다전철에서 책을 읽다가 왼편으로부터 또각또각. 들려오는 청량한 울림에 고개를 들었다밝은 갈색으로 염색한, 둥글게 컬을 넣은 머리에 요즘 보기드문 스키니진하나하나 공들여 흰색으로 칠한 네일 완벽한 코는 조금 인위적인 느낌이지만 그래서 더 어울리고 불편해 보이지만 아름다운 크리스찬 디올의 나무굽 샌들 그 샌들 끝으로 빠져나와 가지런히 한점으로 모아지는 흰 발가락들그 끝에 톡톡 붙어있는 작은 보석칙칙한 전철 속 황홀한 한 순간 다시 책을 읽는 척 하면서 얼굴을 한번 더 훔쳐본다. 차가운 표정번화가 근처에서 다시 한번 또각또각 소리를 들었다큐빅이 점점히 박힌 빨간색 드레스에 하..

2026.02.23

마음을 모으는 도구

일전에 놀러오신 S님이 명상하는 자리를 사물을 이용해 좀 분리를 시키면 좋다, 그리고 자리 근처에 마음을 하나로 모을만한 도구를 두면 좋다는 조언을 주셨는데. 본인 자리에 두는 불상도 보여주시고.과연 아름다운 조각이길래 어디서 나셨어요 하니 미얀마에서 사오셨다고하지만 마음에 드는 오브제를 과연 쉽게 찾아낼 수 있을지가 의문이고 사실 도구가 이미 있다방석 위에 앉으면 정면으로 보이는, 거실로 통하는 문인데 그 문을 살짝만 열어두면 한 시간 지나고 눈 떴을 때 이런 풍경이 들어온다.10일코스 때 방 안에 앉아 열심히 쳐다보던 창문과 비슷한 모습

2026.02.06

노인에 대한 혐오는 죽음에 대한 혐오

어느날 만화 주인공들 나이는 적정 가임기를 넘기지 않는다는 충격적 사실을 발견했다한번 눈치채고 나니까 현대사회가 노화를 어떤 식으로 취급하는지가 자꾸 눈에 들어오는데 일단 인간의 모든 유쾌한 감각과 연관되는 광고에는 젊은 인간만 나옴동네 커피체인점 문짝에는 나른하게 쏘아보고 있는 BTS 멤버의 얼굴이 리터럴리 대문짝만하게 붙어있고 안경점에도 아마 아이돌인거 같은 소녀들 사진이 맥락없이 걸려있음며칠 전에도 이런 생각을 하면서 안경점 앞을 지나치는데 앗 웬일로 박세리 선생님이하지만 이 역시 노안렌즈 광고였다게다가 얼굴의 모든 주름을 포샵으로 지워놨다..극히 드문 예외를 제외하면 노인은 요실금 디스크 임플란트 등 우리가 반기지 않는 질병과 관련된 광고에만 등장하고 있었다광고는 유혹이고 욕망을 자극하는데에는 성..

2026.02.06

빈자의 보상심리 부자의 특권의식

며칠 전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 길이었다. 서로를 형 동생이라 부르는 두 할저씨가 올라탔다. 차림새는 남루했고 술에 잔뜩 취해있었다. 동생이라는 분의 목소리가 대단히 컸다.못된 놈은 천만원 벌고 착한 놈은 십만원 벌어대한민국 이 썩어빠진 나라가 문제야 내 친구가 동두천에 양계장을 하는데.. 로 시작된 한탄은 곧이 썩은 나라는 90프로 다 뒤져야 돼 착한 사람만 살아 남았으면 좋겠어어떨 땐 전쟁이라도 나서 다 뒤졌으면 좋겠다니까 씨벌 이라는 반사회적 웅변으로 번져갔다. 그 뒤로 자신이 얼마나 착하게 인생을 살아왔는지, 어떤 대단한 사람과 알고 지냈는지 좌중을 다분히 의식한 자기소개가 이어졌다. 모두 과거의 이야기였다. 내용에 비해 장황한 말투와 비틀거리는 몸짓은 추락하는 존엄의 상징처럼 느껴졌다.좀 더 듣..

2026.02.03

도시락과 은전 한 닢

중학생때 우리반에 서영(가명)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좀 통통했고 애가 순했음같은 그룹이라 도시락을 같이 먹곤 했는데 얘가 좀 특이했던게 식탐이 엄청났음 그 애들끼리 밥 먹을때 치킨너겟 같은 맛있는 반찬은 서로 나눠먹잖음근데 얘는 맛있는 반찬이 보이면 호다닥 젓가락으로 집어다가 자기 도시락 위에 쌓아두고 금괴를 지키는 고블린처럼 손으로 벽을 쳐서 접근을 원천봉쇄함그니까 집어온 맛있는 반찬들은 쌓아두고 자기 반찬도 애들이 못 가져가게 방어했던 것임원래 욕심많고 못된 애면 걍 놀부심보려니 하겠는데 평소에는 순하다 못해 호구잡히는 애가 숟가락만 들면 저러니까 여자애들끼리 뒷말이 꽤 나왔고 꼽도 좀 줌그러다 어느날 서영이네 집에 초대를 받아 놀러갔는데 서영이한테는 남동생이 있었음어딘지 모르게 겁먹고 우울한 표정의..

2026.01.19

갓생살기 싫은 이유

용모단정하고 똑똑한 A의 주변에는 사람이 많았다. 일도 공부도 열심히 했고 주말에 열리는 파티에는 빠짐없이 참석했다.만나자 해서 나가면 A는 이미 헤어진 후의 일정까지 모두 짜놓은 상태였다. A의 집에서 나가는 즉시 그의 남자친구가 릴레이 바톤을 전달받듯 여~ 하며 들어오곤 했다.A는 시간을 절대 낭비하지 않았다. 스케줄이 타임터너를 사용해 호그와트의 모든 수업을 뿌수고자 했던 헤르미온느를 방불케했다.손목에 주저흔이 있고 귀여운 말투를 사용하는 A와 단둘이 있게되면 숨이 막혔다.A가 베푸는 대접은 절대 공짜가 아니었다.밝고 생산적인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그는 어두운 감정을 쏟아낼 누군가를 필요로 했다.자유영혼 B는 노동을 거부했다. 대신 인도로 떠났다.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는 그의 육체는 수년에 걸친 여..

2026.01.13

내 머리 속의 프리즘

어떤 이에게 채찍질은 징벌이고 어떤 이에게는 포상이다.어떤 이에게 원전은 종말의 징조이고 어떤 이에게는 기후윤리의 최후카드다.반응은 해석이고 해석은 주관적이다. 같은 것을 보아도 해석은 모두 다르게 내린다.이런 상황을 목격할 때 머릿 속에 하나씩 들어있는 프리즘을 상상한다. 정보라는 빛이 우리 안에 닿는 즉시 프리즘이 그것을 굴절시킨다.어떤 파장은 강조되고 어떤 파장은 사라진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주입된 정보, 교육, 경험 등에 의해 프리즘의 형태는 제각각으로 깎여나간다. 프리즘은 정체성, 가치관, EGO 등으로 명명되며 정의와 상식이라는 명목으로 은폐되기도 한다.상식 = 절대적 진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상식이 비슷한 사람과 교류하게 되는 이유는바쁜 뇌가 커뮤니케이션에 너무 큰 비용을 치르고 싶어하지 않..

2025.12.31

사우나 생로병사

목욕에는 의식적인 면이 있다. 셀프 세례를 주고자 사우나에 다녀왔다. 오늘 영업하시나요? / 저희는 쉬는 날 없습니다. 여주인의 대답에서 당당함이 느껴지는 유서깊은 동네 목욕탕이다. 오래된 맛집처럼 목욕탕도 잘 되는 곳은 로비에 쓸데없는 장식품들이 여럿 놓여져 있다. 아니 잉여의 과시이니 쓸데가 없다는 말은 적절하지 않다. 이곳에는 무려 물레방아가 전시되어 있다. 들어가자마자 할머니들의 여기가 아프고 저기가 쑤시다 레파토리가 펼쳐지고 있었다.42번 락커 앞에는 낮은 위치에 거울이 걸려있어 스스로의 몸을 볼 수 있도록 되어있다. 체중을 재고 샤워를 한 뒤 탕으로 들어간다.중앙에서 jello같은 형태로 솟아오르는 물의 움직임이 아름답다. 위에서 내려다 보다 얼굴을 반쯤 잠기게 집어넣어 시야를 바꾸어 보았다...

2025.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