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

공항풍경 등

이번 코스 선생님은 외국 분이라 L님이 공항에 픽업을 가셨다. 동행을 권유받아 따라갔다 왔다.돋보기 안경을 쓴 선생님은 사진보다 마른체구에 명랑하고 꾸밈없는 태도가 매력적인 분이셨다.마음이 정돈된 인간과 함께있으니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약을 하나 먹을까 하고 있던 두통이 사라졌다1996년 거주지 뉴욕을 좀 벗어나고 싶어 참가한 첫번째 명상 코스 이후로 직장을 그만두고 봉사만 하고 살고 계신다고 한다. 핸드폰 없이 사신지 20년이 넘었다는데 이 정도면 거의 출가자에 가까운 삶이 아닌가.. 그렇게 살라 하면 못 할 거면서도 부러움이 앞선다. 한국과는 뭔가 인연이 있으신지 대학시절 룸메이트도 한국인, 첫 직장 상사도 3연속 한국인이셨다고 한다. 이천년대 초반 고엔카지와 수행하신 이야기도 들었다. 근데 그건 쓰..

00:21:49

파란색 연질 캡슐

을 하나 삼키고 쓴다 레진으로 때워놓은 어금니가 살짝 깨졌길래 치과에 갔다치아 윗부분이 멀쩡하고 아프지도 않아서 몰랐는데 이빨 두 개가 옆쪽으로 조용히 썪어가고 있었다한무현 치과의 한무현 선생님은 이제 여든을 넘기셨을듯 한데 정정하시다 몸의 선이 둥글어지고 눈빛은 더 따듯해지셔서 사제복이 어울리실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직원이 한 분 줄었고 누군가 반짝이는 종이로 학을 접어 통에 넣고 '한무현 선생님 감사합니다' 리본을 달아놓았다선생님 대단하십니다, 라는 아저씨의 공치사에 네 30년만 더 하려고요 허허 웃으신다내가 이는 이제 틀니지만.. 눈 하나는 엄마가 잘 주셔서.. 라며 입 안을 들여다 보셨다 의자에 무당벌레 스티커가 두 개 붙어있었다 여기서 여러번 이빨 고치는 동안 아픈 적이 없어서 정말 신묘한 ..

2026.06.10

호더와 곤더 1

아래는 내가 Z의 집을 처음으로 방문한 뒤 기록한 메모이다 연식이 꽤 된 빌라 십년째고양이 제단 호더같은 미친 방 하나. 책 땜에 바닥 내려앉을 거 같음깨끗한 주방 작업방은 안락침실에 두께가 동일한 수많은 이불들이 칸칸히 수납되어 있음 WHY??아빠가 일본에서 사다준 체스판 뒤집으면 오셀로 할 수 있음 소화기가 세 개. 침실에도 한 개 WHY????변기위치 문제있음화장실 거울 옆 메모용 보드마카 신발장 신발 다 비슷하게 생김 옷 체크무늬 존나 많음 타이머 시계 달력이 많음 (마감?)타이머가 곰돌이 모양임책은 10%정도 읽었을 것이라고 함 부채감에 시달리지 않을까? 읽을 책이 그렇게까지 많다면(전혀 아니라고 함 책꽂이는 일종의 인생의 지도였음 그 책을 사던 순간의 로그라고) 방문 전 분명 어떠한 광기를 ..

2026.05.21

넘버원 넘버투 바로잡기 위원회

조직의 발족을 기념하며 초대 회장과의 담화를 옮깁니다 나 : 넘버 1과 넘버 2의 차이점에 대해서 일단 설명해주십시오 회장 : 넘버 1이 대변이어야 하고, 넘버 2가 소변이어야 합니다.이유는 분명합니다. 두 가지로 얘기할 수 있는데,첫째로는 그것의 중요성, 위급성을 놓고 볼 때 그렇습니다. 우리가 밖에서 대변 실수를 하면 그것은 실로 치명적인 일 아닙니까?네사회적 자살.. 사회적 로그아웃을 당하게 되는데, 소변은 사실 약간 좀 지린다고 해서 그렇게까지 큰 일이 벌어지지 않고오히려 어떤 동정을 받을 수도 있는, 그런 측면이 있단 말이죠. 네 그러다 보니까 그 중요성, 위급성의 차원을 놓고 볼 때도 넘버 1은 대변이어야 하고 넘버 2가 소변이어야 된다, 양놈들의 그 이상한 언어 습관은 잘못되었다, 라고 얘..

2026.04.13

예술이 일어나기를 기다릴게요 - 메스매스뮤지움 아티스트 토크 축약본

유진정(이하 유) : 네 안녕하세요. 오늘 함께 아티스트 토크를 진행하게 된 유진정이라고 합니다. 도봉구민으로써 자격을 얻어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도봉구에 사실 이런 공간이 잘 없거든요. 생겨서 반갑고 자주 오고 있습니다. 올 때마다 먹을 걸 줘서 너무 좋습니다. 이제 오늘 토크의 주인공 두 분을 소개하겠습니다.이번 메스매스 뮤지엄 프로젝트를 총괄 기획하고 실행하신 박정아 작가님, 그리고 협업하신 세계적인 건축가 지니킴 작가님이십니다. 박수로 맞아주십시오.(박수)박정아: (이하 박) : 네 안녕하세요. 저는 박정아고요. 종로 상가에 있는 전통주점 세탁소에서 수석 알바생으로 일하고 있는데 요즘 장사가 잘 안 되고 있어서 혹시 괜찮으시면 많이 방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예술인 등록을 못해서 일단은..

2026.03.25

Flattening Field

방치된 인스타 팔로워가 갑자기 늘었길래 뭐지하고 보니 다른 계정에 서울펑쓰 소개글이 실렸다 글로우업 매거진의 팔로워는 26만명이고 게시글은 9503개이다서울펑쓰는 생명력이 있는 책이다내가 엮긴 했지만 시기와 장소 사진 속 인물들에 의해 태어난 컨텐츠이기도 하다책은 나의 사후에도 비주류 인간들에 의해 어딘가에서 반복적으로 발굴될 것이다그 사실이 나의 에고에 약간의 위로감을 가져다 주고 그런 스스로가 좀 구리다고 느낀다아무튼 그김에 몇몇 개인 계정들 클릭해서 흐름을 쭉 보는데 티비없이 살다가 고속버스에서 틀어주는 예능프로그램 볼 때의 초현실적 감각을 느낌2014-6년경 계정을 처음 만들고 올리는 것들은 예쁜 콩 강아지 바다풍경 등 그 사람의 눈으로 본 것들임그러다 어느날 셀카가 조심스레 올라오고 이전에 올린..

2026.02.27

대단히 화려한 차림의 여자들

S선배는 자취방 복도 끝에서 또각또각 소리가 들려올 때면 그것이 점차 큰 울림을 내며 다가와 자신의 방문 앞에서 멈추는 상상을 한다고 했다전철에서 책을 읽다가 왼편으로부터 또각또각. 들려오는 청량한 울림에 고개를 들었다밝은 갈색으로 염색한, 둥글게 컬을 넣은 머리에 요즘 보기드문 스키니진하나하나 공들여 흰색으로 칠한 네일 완벽한 코는 조금 인위적인 느낌이지만 그래서 더 어울리고 불편해 보이지만 아름다운 크리스찬 디올의 나무굽 샌들 그 샌들 끝으로 빠져나와 가지런히 한점으로 모아지는 흰 발가락들그 끝에 톡톡 붙어있는 작은 보석칙칙한 전철 속 황홀한 한 순간 다시 책을 읽는 척 하면서 얼굴을 한번 더 훔쳐본다. 차가운 표정번화가 근처에서 다시 한번 또각또각 소리를 들었다큐빅이 점점히 박힌 빨간색 드레스에 하..

2026.02.23

마음을 모으는 도구

일전에 놀러오신 S님이 명상하는 자리를 사물을 이용해 좀 분리를 시키면 좋다, 그리고 자리 근처에 마음을 하나로 모을만한 도구를 두면 좋다는 조언을 주셨는데. 본인 자리에 두는 불상도 보여주시고.과연 아름다운 조각이길래 어디서 나셨어요 하니 미얀마에서 사오셨다고하지만 마음에 드는 오브제를 과연 쉽게 찾아낼 수 있을지가 의문이고 사실 도구가 이미 있다방석 위에 앉으면 정면으로 보이는, 거실로 통하는 문인데 그 문을 살짝만 열어두면 한 시간 지나고 눈 떴을 때 이런 풍경이 들어온다.10일코스 때 방 안에 앉아 열심히 쳐다보던 창문과 비슷한 모습

2026.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