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과 은전 한 닢

유 진 정 2026. 1. 19. 23:47

중학생때 우리반에 서영(가명)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좀 통통했고 애가 순했음
같은 그룹이라 도시락을 같이 먹곤 했는데 얘가 좀 특이했던게 식탐이 엄청났음 

그 애들끼리 밥 먹을때 치킨너겟 같은 맛있는 반찬은 서로 나눠먹잖음
근데 얘는 맛있는 반찬이 보이면 호다닥 젓가락으로 집어다가 자기 도시락 위에 쌓아두고 
마치 금괴를 지키는 고블린처럼 손으로 벽을 쳐서 다른 애들의 접근을 원천봉쇄했음
그니까 집어온 맛있는 반찬들은 쌓아두고 자기 반찬도 애들이 못 가져가게 방어를 했던 것임

아니 원래 욕심많고 못된 애면 걍 놀부심보려니 하겠는데 평소에는 순하다 못해 좀 호구잡히는 애가
숟가락만 들면 저러니까 여자애들끼리 뒷말이 꽤 나왔고 그런 점을 은근히 놀리곤 했음  

그러다 어느날 서영이네 집에 초대를 받아 놀러갔는데 서영이한테는 남동생이 있었음
어딘지 모르게 겁먹고 우울한 표정의 서영이와는 달리 팔팔하고 귀엽게 생긴 마른 남자애였음

그리고 서영이 엄마는 남동생만 이뻐했음
반찬도 나랑 남동생한테만 권유하고 딸 친구가 와 있는데도 딸을 대놓고 구박하는 모습이 상당히 충격적이었음

걍 나랑 아들 쳐다볼 때는 이쁘고 상냥한 아줌만데 서영이가 입만 열면 갑자기 표정 표독스럽게 돌변하면서 그럼 니가 00하던가!!! 죽일듯이 쳐다보던 야누스적 모습이 넘 충격적이라 지금까지 기억이 남 

불편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오면서 서영이의 기괴한 식사 버릇을 떠올렸음
도시락에 쌓아둔 맛있는 반찬들은 어떤 내면적 붕괴를 막기위한 수단이었구나 싶었음 

은전 한 닢이 정말 오지는 수필이라고 생각하는게 
거지노인이 갈구했지만 가질 수 없었던 버젓한 삶에 대한 소망이 물질에 대한 집착으로 치환되는 묘사가 너무 탁월함
뭔가를 얻을 수 없을 때 대체제를 찾아 위안을 구하는 간절한 태도는 인간이라는 상심하기 쉬운 존재를 설명해줌 

일전에 정신과 의사가 말하는 쇼츠를 하나 봤는데 
사람들이 유튜브 나와서 그 막 소유로는 인간이 충족될 수 없다 설교하는 거 다 구라라고.
그 사람들도 돈 벌어서 좋은 물건 사려고 그런 영상 찍는거고 자기도 그래서 이 영상 찍는다고, 

사실 진정한 자존감을 빌드업 하는건 엄청 어려운 일이라 차라리 비싼 물건,
소소한 건 안되고 외제차 같은 사치재 하나 사서 몰고 다니는게 자존감을 올리는 그나마 쉬운 방법이라는 내용의 쇼츠였음 

꽤 설득력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했는데 따라오는 의문이

1. 그럼 외제차를 못 사는 사람은?
2. 죄다 외제차를 사 버리면?
3. 자존감을 소비로 올리면 환경은? 엔트로피는????
(근데 이건 후잡쓰레기 테무쇼핑하는 거 보다 돈 모아서 좋은 물건 하나 사는게 나을 거 같긴 함)

암튼 정신과 의사이신 만큼 어떤 (한시적으로라도) 불행하지 않은 상태에 인간을 데려다 놓는 것에 중점을 두고 하신 말이었던거 같은데 그래도 찝찝함이 남는 주장인게 그럼 노인이 은전을 잃어버리면 어떡함?
막 실업해서 생활수준 낮춰야 하는 상황에서 가족 죽이고 자살해버리는 가장 이런 거 생각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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