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339

이 또한 지나가리 - 2026 연등회 후기

인간은 기본적으로 어두운 배경에 반짝거리는 무언가가 나타나면 좋아하는 거 같은데 그 최초의 기억은 성공적으로 피워낸 모닥불이었을 테고 짐승을 막아주고 추위를 쫓아주며 서로의 환한 얼굴을 마주볼 수 있게 해주는 불 불빛 주위로 빙 둘러앉아 기뻐했을 원시인들을 불꽃놀이나 캠프파이어, 등 잔치 등을 볼 때 떠올린다. 지난 5월 말 연등회 구경을 갔다 일단 시작지점 동대문에서 일행과 만나 몽골거리에 있는 식당 잘루스에 들어갔다 손님 대다수가 몽골인이고 티비에선 전통음악 흐미가 흘러나오는 현지느낌 식당이다 이날은 레슬러 체형의 몽골 남자분이 말없이 양고기를 해치우고 있었다 이 호방하고 정직한 주스메뉴를 보라 아니 그러고 보니 포도 주스가 건포도 주스잖아? 잘루스 추천메뉴는 양갈비와 굴라쉬 이날은 칼국수 볶음도 ..

리뷰 2026.07.03

내가 빡돌면 사람이 죽는다 - 빈스 길리건, 엑스파일에서 플루리부스까지

(전략)빈스 길리건은 생긴대로 살 수 밖에 없는 괴물의 비애를 동정적인 시선으로 그려낸다. 월터,엑스파일의 인육먹는 돌연변이,사울 굿맨까지 모두 사회화 되기 위해 죽어라 노력하지만 결국 본능의 부름을 이기지 못하고 파멸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회화라는 것은 본능에 재갈을 물리는 작업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안 웃겨도 웃고, 하고 싶은 말을 삼켜가며 평생을 살아간다. 그래서 우리는 월터 화이트가 하이젠버그로 변하는 순간, 사울 굿맨이 지미 맥길의 양심을 내던지는 순간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빈스 길리건은 본능을 인내하는 고통, 그리고 한계에 다다른 인간의 파괴력을 디테일하게 묘사하는 창작자이다 그래서 나는 그가 많이 참고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이 창조해낸 괴물들이 가면을 벗을 때마다 그는 자기 대신 ..

리뷰 2026.06.21

퐁피두 한화에 대한 단상

pierre albert birot - The War (1916) (전략)작년 퀴어 퍼레이드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음 땡볕 아래 신나게 걷고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 구호가 슬그머니 바뀜 free free 팔레스타인 free free 팔레스타인 을 떼창하는 사람들이 나타났고 하마스와 팔레스타인 사회의 성소수자 취급에 대해 떠올려 보니 생각이 많아짐 한편으로는 언제부터 한국 사람들이 이 문제에 이렇게 관심이 많았나? 작금의 이-팔 사태에 있어 약자라는 이유로 팔레스타인 편을 들겠다는 것은 너무 도덕적으로 심플한 것이 아닌가? 구호를 외칠 수 있을 만큼 우리들이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음고딩 때 웹진에서 당시 대선 후보였던 노무현의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음 시오니즘은 위험한 사상이다, ..

리뷰 2026.06.06

삶과 사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feat. 수전 손택)

레소토라는 국가에 대해 알고있는가 남아공 국토에 둘러쌓여 섬처럼 존재하는, 높은 고도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살률을 보유한 나라이다. (한국의 세 배) 나는 이런 나라가 존재하는지 어제 알았다. 레소토의 빈번한 강간사례를 다룬 bbc의 기사를 읽던 중 “의사가 저보고 제가 너무 매력적이라더군요. 갑자기 총을 꺼내더니 저와 쾌락을 느끼고 싶다면서 그러지 않으면 절 죽이겠다고 했습니다.” 라는 강간 피해자의 증언을 읽고 순간 눈을 몇 차례 빠르게 깜박였다. 내가 지금 제대로 읽은 게 맞나? 의사 총 강간 이라는 키워드의 조합은 지나치게 생경하게 느껴진다. UN의 조사에 따르면 레소토 여성의 80%가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다고 한다. 인구의 20%가 에이즈 보균자이며 특히 40대 이하 도시 여성 중 절반..

리뷰 2026.05.23

느긋하고 따듯한 오컬트 : 모로호시 다이지로

개인적으로 꼽는 그의 만화의 매력은 따듯함이다. 특히 [ 시오리와 시미코 시리즈 ]의 경우 공포물임에도 불구하고 죽는 사람이 거의 나오지 않는 (죽어 있는 사람들은 많이 나오지만) 느긋한 분위기가 좋다. 대롱여우 화에서 대롱여우를 부려 사리사욕을 채우려던 소녀는 여우에 씌여 건물에서 뛰어내리지만 나중 권에서 밝혀진 바로는 건물이 2층짜리라 그냥 낙상만 한 것으로 밝혀지는데 작가가 그려놓고 ' 아니 너무 불쌍한 거 같은데.. 죽을 정도로 잘못한 건 아니지 않나..? ' 하고 설정을 추가한 거 같다. [ 비오는 날에는 귀신이 나타난다 ] 라는 단편집에서 병사한 어린 소녀의 유령은 너무나 외로운 나머지 소년을 유인해 저승으로 데려가려 하지만 실패하고, 그러자 저승다리 문지기 역을 하는 아저씨가 상..

리뷰 2026.05.20

인간이 뭐 다 그렇지 : 다카하시 루미코 단편선

(전략)이누야샤 단행본 권수가 무려 56권이다.듣기만 해도 약간 토가 나온다매너리즘에 안 빠질 수가 없는 분량이지만 주간소년 선데이의 간판작을 맘대로 접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그리고 일단 판타지 소년만화인데,생활감 넘치는 메종일각으로 데뷔한 중년의 여성으로써 표현하고 싶은 세계가 더 존재할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그런 여사의 목마름이 느껴지는 단편집이을 비롯한 걸작선 들이다.애완동물 사육이 금지된 아파트에 사는 부부가 있다. 무뚝뚝한 표정의 카케이씨는 자치회 회원 중 이 애완동물 금지령에 가장 강한 지지를 보내는 사람이다.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거래처 부탁으로 며칠 맡아주어야 한다며 소화기만한 펭귄을 한 마리 받아오고,그 기간이 점점 연장되자 아내는 아파트에서 쫓겨날까봐 전전긍긍한다소시민이 짊어진 삶..

리뷰 2026.05.16

기괴한 다큐 인생 - 루이스 떼루

이 무지막지하다 싶을 정도로 평범해 보이는 남자를 보라 키가 크고 마른, 지각있어 보이는 안경 낀 백인 남자가 수줍은 미소를 짓고 있다면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대충 환영받을 것이다 낯선 상황에서 평범함은 무해함으로 인식되고 이는 상대의 경계심을 허문다 저널리스트이자 다큐 제작자인 루이스 떼루는 이를 십분 활용하고 있다 옷도 ㄹㅇ그 나이대 서양 남자 평균들이 입는 옷만 입는데 그런 거만 찾아주는 전담코디가 있나 싶음 (중략) 그리고 이 틱톡커도 폰 들고 루이스 떼루를 찍는데 여기서 기묘한 상황이 발생함루이스 떼루는 평생 기괴하고 위험하고 극단적인 인간들을 찾아찍고 그것을 컨텐츠로 만들어 판 사람임이제 그 기괴하고 위험하고 극단적인 인간들이 루이스 떼루를 찍어서 팜윤리과 상식의 시선을 탑재하고 있다지만 어쨌..

리뷰 2026.05.08

Zine, 독서하는 서브컬쳐

스누피 파쿠리 비글 개가 나오는 만화책을 만든 적이 있다중학교 1학년 때 쯤이었던 거 같다A4용지를 반으로 접고 호치케스로 중앙을 집은 뒤 연보라색 포스터 컬러로 표지를 칠하고 내지에 만화를 그렸다 완성 뒤 그럴듯한 책의 형태에 전율했다 이것을 아마 진zine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Zine이란 MAGAzine(혹은 Fanzine)의 줄임말이며 개인이나 소집단이 지 맴-대로 제작, 배포하는 독립 출판물을 뜻한다 한권을 만들어도, 천 권을 찍어도 좋다 각 페이지에 글자를 하나씩만 써도 좋고나를 제외한 모든 자를 다 죽여야 한다는 급진적 사상도 당연히 용납된다. 감수나 검열처럼 수고로운 과정이 존재하지 않으니까껌의 역사에 대해 기록한 뒤 페이지 중간에 씹던 껌을 붙여놓으면 멋질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 간..

리뷰 2026.04.16

읽는사람 몸살나는 : 데즈카 오사무 블랙잭 창작비화

거대한 에너지를 지닌 인간이 가끔씩 태어난다 이런 자들의 반경 내에는 일종의 에너지 장이 생성되고그것은 블랙홀처럼 주위의 인간들을 끌어들여 소비하며 이 과정이 시장과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 만화의 신 ' 만신이라는 칭호를 탄생시킨 데즈카 오사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책은 그의 히트작 블랙잭의 탄생과 연재과정을 그리고 있다 근데 이건 사실 제목에 걍 블랙잭을 넣고 싶어서 붙인 거 같고 데츠카 오사무의 캐릭터와 기벽, 일에 대한 태도의 묘사가 주를 이루는 내용인데 그것이.. 너무나 상식을 초월한 불가능에 가까운 짓거리들이라 읽는 사람 마음이 조마조마해지며 승모근에 힘이 잔뜩 들어간다 난 이 만화를 읽고 탈진하여 안마의자에 기어올라야 했다 따듯한 미소와 절륜한 스태미너를 갖춘 만신 데즈카..

리뷰 2026.04.06

여자가 찍는 여자 - 박영숙 개인전

" Men act and women appear남자는 행동하고 여자는 보여진다 "존 버거의 저서 Ways of Seeing의 핵심개념이다.예를 들어 근대미술이 표현하는 남녀의 누드를 보라.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깨벗었지만 어쨌든 생각 중이다. 지적이며 주체적인 남성이다. 반면 마네의 올랭피아는 정물로써 존재한다. 아름다운 과일처럼 침대보 위에 그저 놓여져 있을 뿐이다. (한편으로는 나 벗은 거 보니까 좋냐? 하는 띠꺼움도 느껴진다. 마네는 보여지는 여성들의 피로를 이해했던 것 같다. 후기로 갈수록 여자들 표정이 흠 개같넹 이라고 말하고 있음) 근대미술 속 여성의 누드는 누워 있거나 수동적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남성의 누드는 영웅서사를 진행 중이거나 행위의 주체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사실 흐..

리뷰 2026.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