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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의 관찰자 - 내향도, 외향도 아닌 이향인

(전략)그니까 결국 억지로 다른 사람이 될 필요가 없다, 스스로를 수용하라는 얘기인데 사실 너무 당연한 말이라 MBTI, 퀴어, 신경다양성 운동 등의 흐름을 타고 등장한 일종의 정체성 마케팅이라는 느낌도 든다. 실제로 저자는 개인이 스스로에게 정체성을 부여하는 행위를 적극 찬성한다 정신건강적 측면에서 사회가 정해준 정체성에 스스로를 가두어 가며 고통받는 것 보다 그 편이 낫다는 이유에서다 이 대목을 읽으며 우울증을 너무 병리적으로만 해석하면 환자가 잘 낫지 않는다, 우울증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삼아버리기 때문, 이라는 이야기가 생각났는데 이런 식으로 스스로를 이향인이라는 새로운 틀에 가두는 것이 과연 고통의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복잡하고 유동적인 인간을 너무 하나의 유형으로 퉁쳐버리고 마는 것..

리뷰 2026.09.02

믿고싶은 자 믿게하라, 진정한 사기꾼 쿠마레

..그리고 여기 타락한 구루들과 무지성 추종자들에게 질릴대로 질린 청년이 있다. 그의 이름은 비크람 간디 (중략)이에 간디는 구루와 추종자들의 실체를 만천하에 폭로하고 싶은 욕구를 느끼고, 스스로 가짜 구루가 된 뒤 속아넘어가는 사람들을 촬영하는 방식으로 그 계획을 이행하기로 한다. 그의 구루네임은 - 스리 쿠마레 (의미불명) 간디는 인도로 건너가 영적지도자들을 만나 그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성자라고 불리우는 이들 특유의 태도를 익히고, (눈을 오래 맞춤, 말을 느리게 함) 교리와 헛소리들을 잔뜩 듣고 다리를 쭉쭉 찢어가며 요가를 수련한다. 일년 후 긴 머리와 수염, 그리고 고용된 미녀 제자 둘과 함께 아리조나주 피닉스로 건너온 그는 할머니의 인도억양을 따라하며 제자들을 모집하기 시작하는데 이런, 생각보..

리뷰 2026.09.02

아이고 애쓴다 - 마틴 파

(전략)이 공간엔 아주 편안한 소파가 놓여져 있었는데 나올때 보니 협찬품이었고 이런 광고가! 계급상승의 욕구에서 파생된 소비문화에 대한 냉소적 시선을 하이엔드 리빙브랜드 소파에 앉아 감상 킹능한 이 놀라운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기획된 아이러니라고 생각하면 재밌고 아니라면 웃긴데 기획된 척 하는 진심인 거 같아서 좀 구리다는 생각도 듬(중략)나는 마틴 파가 사진 속 욕망의 주체와 부산물들을 진심으로 혐오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함 오히려 상스러움에 대한 강렬한 애호가 느껴지는 지점이 있음 정말 싫어하면 이렇게까지 집착할 수 없기도 하고.. 근데 그가 거짓말쟁이라고는 생각함 걍 모든게 ㅈㄴ 웃기고 미쳤다고 생각하는 듯. 뭔가 되게 사춘기적 감수성이 있음 그래서 그런지 인터뷰를 잘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저는 ..

리뷰 2026.08.22

부처님은 왜 걸어야 했나 - 국중박 어메이징 타일랜드

(전략)그렇다면 부처님은 왜 걸어오셔야 했는가 부처님은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은 뒤 이렇게 생각하셨다고 한다 " 이 법은 참으로 심오하며, 깨닫기도 어렵다.어차피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것도 아닌데 이걸 괜히 욕심많은 닝겐들에게 설하려고 했다가는 서로 너무 피곤해지지 않을까? " 라는 이유로 법을 가르치지 않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고 그때 범천 사함빠띠가 등장한다. 범천은 부처님의 마음을 읽고 무릎을 꿇고 합장한 뒤 간청한다. " 세존이시여, 눈에 먼지가 적은 존재들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법을 감추지 말아 주십시오! " 불사의 문은 열렸다.귀 있는 자는 믿음을 내라. 마음을 바꾼 부처님은 결국 녹야원의 다섯 비구에게 첫번째 설법,초전법륜을 설하고그들은 순차적으로 번뇌를..

리뷰 2026.07.28

독창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 오티즘 아티스트 4인

(전략)며칠 전 양재 AT센터에서 열린 오티즘 엑스포에 다녀왔다. 자폐라는 명칭의 어감이 질병을 연상시키는 등 부정적인 편이라 이제 공식행사 등에서는 오티즘이라는 영어 표현을 쓰는 듯 한데 듣기에는 확실히 이 편이 낫다. 자폐하면 뭔가 어두운 공간에 외롭게 갇혀있는 이미지가 떠오르고 오티즘 하면 통통 튀는 밝은 느낌을 받음 아무튼 이 행사는 재작년에도 다녀왔는데 브라스 밴드의 연주가 대단히 훌륭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드러머가 ㄹㅇ 미쳤음 일단 개잘치고뭐랄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정확히는 기능적으로 불가능한 것이지만) 태도가 퍼포먼스에 진정성을 부여함 부스 한 켠에 작게 미술전시도 하고 있었는데 아마추어 전시이긴 했지만 상당히 독창적이라 기억에 남음사회적 상호작용이 어렵다는 것은 달리 말해 남다르..

리뷰 2026.07.27

이 또한 지나가리 - 2026 연등회 후기

인간은 기본적으로 어두운 배경에 반짝거리는 무언가가 나타나면 좋아하는 거 같은데 그 최초의 기억은 성공적으로 피워낸 모닥불이었을 테고 짐승을 막아주고 추위를 쫓아주며 서로의 환한 얼굴을 마주볼 수 있게 해주는 불 불빛 주위로 빙 둘러앉아 기뻐했을 원시인들을 불꽃놀이나 캠프파이어, 등 잔치 등을 볼 때 떠올린다. 지난 5월 말 연등회 구경을 갔다 일단 시작지점 동대문에서 일행과 만나 몽골거리에 있는 식당 잘루스에 들어갔다 손님 대다수가 몽골인이고 티비에선 전통음악 흐미가 흘러나오는 현지느낌 식당이다 이날은 레슬러 체형의 몽골 남자분이 말없이 양고기를 해치우고 있었다 이 호방하고 정직한 주스메뉴를 보라 아니 그러고 보니 포도 주스가 건포도 주스잖아? 잘루스 추천메뉴는 양갈비와 굴라쉬 이날은 칼국수 볶음도 ..

리뷰 2026.07.03

내가 빡돌면 사람이 죽는다 - 빈스 길리건, 엑스파일에서 플루리부스까지

(전략)빈스 길리건은 생긴대로 살 수 밖에 없는 괴물의 비애를 동정적인 시선으로 그려낸다. 월터,엑스파일의 인육먹는 돌연변이,사울 굿맨까지 모두 사회화 되기 위해 죽어라 노력하지만 결국 본능의 부름을 이기지 못하고 파멸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회화라는 것은 본능에 재갈을 물리는 작업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안 웃겨도 웃고, 하고 싶은 말을 삼켜가며 평생을 살아간다. 그래서 우리는 월터 화이트가 하이젠버그로 변하는 순간, 사울 굿맨이 지미 맥길의 양심을 내던지는 순간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빈스 길리건은 본능을 인내하는 고통, 그리고 한계에 다다른 인간의 파괴력을 디테일하게 묘사하는 창작자이다 그래서 나는 그가 많이 참고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이 창조해낸 괴물들이 가면을 벗을 때마다 그는 자기 대신 ..

리뷰 2026.06.21

퐁피두 한화에 대한 단상

pierre albert birot - The War (1916) (전략)작년 퀴어 퍼레이드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음 땡볕 아래 신나게 걷고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 구호가 슬그머니 바뀜 free free 팔레스타인 free free 팔레스타인 을 떼창하는 사람들이 나타났고 하마스와 팔레스타인 사회의 성소수자 취급에 대해 떠올려 보니 생각이 많아짐 한편으로는 언제부터 한국 사람들이 이 문제에 이렇게 관심이 많았나? 작금의 이-팔 사태에 있어 약자라는 이유로 팔레스타인 편을 들겠다는 것은 너무 도덕적으로 심플한 것이 아닌가? 구호를 외칠 수 있을 만큼 우리들이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음고딩 때 웹진에서 당시 대선 후보였던 노무현의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음 시오니즘은 위험한 사상이다, ..

리뷰 2026.06.06

삶과 사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feat. 수전 손택)

레소토라는 국가에 대해 알고있는가 남아공 국토에 둘러쌓여 섬처럼 존재하는, 높은 고도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살률을 보유한 나라이다. (한국의 세 배) 나는 이런 나라가 존재하는지 어제 알았다. 레소토의 빈번한 강간사례를 다룬 bbc의 기사를 읽던 중 “의사가 저보고 제가 너무 매력적이라더군요. 갑자기 총을 꺼내더니 저와 쾌락을 느끼고 싶다면서 그러지 않으면 절 죽이겠다고 했습니다.” 라는 강간 피해자의 증언을 읽고 순간 눈을 몇 차례 빠르게 깜박였다. 내가 지금 제대로 읽은 게 맞나? 의사 총 강간 이라는 키워드의 조합은 지나치게 생경하게 느껴진다. UN의 조사에 따르면 레소토 여성의 80%가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다고 한다. 인구의 20%가 에이즈 보균자이며 특히 40대 이하 도시 여성 중 절반..

리뷰 2026.05.23

느긋하고 따듯한 오컬트 : 모로호시 다이지로

개인적으로 꼽는 그의 만화의 매력은 따듯함이다. 특히 [ 시오리와 시미코 시리즈 ]의 경우 공포물임에도 불구하고 죽는 사람이 거의 나오지 않는 (죽어 있는 사람들은 많이 나오지만) 느긋한 분위기가 좋다. 대롱여우 화에서 대롱여우를 부려 사리사욕을 채우려던 소녀는 여우에 씌여 건물에서 뛰어내리지만 나중 권에서 밝혀진 바로는 건물이 2층짜리라 그냥 낙상만 한 것으로 밝혀지는데 작가가 그려놓고 ' 아니 너무 불쌍한 거 같은데.. 죽을 정도로 잘못한 건 아니지 않나..? ' 하고 설정을 추가한 거 같다. [ 비오는 날에는 귀신이 나타난다 ] 라는 단편집에서 병사한 어린 소녀의 유령은 너무나 외로운 나머지 소년을 유인해 저승으로 데려가려 하지만 실패하고, 그러자 저승다리 문지기 역을 하는 아저씨가 상..

리뷰 2026.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