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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긋하고 따듯한 오컬트 : 모로호시 다이지로

개인적으로 꼽는 그의 만화의 매력은 따듯함이다. 특히 [ 시오리와 시미코 시리즈 ]의 경우 공포물임에도 불구하고 죽는 사람이 거의 나오지 않는 (죽어 있는 사람들은 많이 나오지만) 느긋한 분위기가 좋다. 대롱여우 화에서 대롱여우를 부려 사리사욕을 채우려던 소녀는 여우에 씌여 건물에서 뛰어내리지만 나중 권에서 밝혀진 바로는 건물이 2층짜리라 그냥 낙상만 한 것으로 밝혀지는데 작가가 그려놓고 ' 아니 너무 불쌍한 거 같은데.. 죽을 정도로 잘못한 건 아니지 않나..? ' 하고 설정을 추가한 거 같다. [ 비오는 날에는 귀신이 나타난다 ] 라는 단편집에서 병사한 어린 소녀의 유령은 너무나 외로운 나머지 소년을 유인해 저승으로 데려가려 하지만 실패하고, 그러자 저승다리 문지기 역을 하는 아저씨가 상..

리뷰 2026.05.20

인간이 뭐 다 그렇지 : 다카하시 루미코 단편선

초딩때 란마를, 고딩때 이누야샤를 보며 자랐다.성인이 된 지금, 다카하시 루미코 여사는 단편이 찐이라고 외치고 싶다.이누야샤 단행본 권수가 무려 56권이다.듣기만 해도 약간 토가 나온다매너리즘에 안 빠질 수가 없는 분량이지만 주간소년 선데이의 간판작을 맘대로 접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그리고 일단 판타지 소년만화인데,생활감 넘치는 메종일각으로 데뷔한 중년의 여성으로써 표현하고 싶은 세계가 더 존재할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그런 여사의 목마름이 느껴지는 단편집이을 비롯한 걸작선 들이다.애완동물 사육이 금지된 아파트에 사는 부부가 있다. 무뚝뚝한 표정의 카케이씨는 자치회 회원 중 이 애완동물 금지령에 가장 강한 지지를 보내는 사람이다.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거래처 부탁으로 며칠 맡아주어야 한다며 소화기만한..

리뷰 2026.05.16

돌아옴

술과 계집을 대령... 아니 이게 아니지 명상원에서 돌아온 건 한참 전이지만 그동안 정신이 없었음으로 이제야 기록해둔다 치즈와퍼를 먹고 도서관에서 이번 달 뉴튼을 읽고 나니 비로소 일상으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다 작년엔 돌아와서 일지를 적었던가? 그때는 맨 앞줄에 앉아 웃참하느라 고생했다온갖 웃긴 기억과 밈이 계속 떠오르고 중간쯤엔 급 야한 생각이 들길래 방에 누워 동굴에 사는 원시인 부부와 옆 동굴에 이사한 원시인 총각이 나오는 야망가 시나리오를 머릿 속으로 한 편 썼다 (코스에선 필기구가 금지된다)중간부터는 야한 생각보다는 캐릭터 설정을 다듬는데 몰입했고 다 쓰고 나니 마음이 상쾌해져서 잠을 잘 잤다 메따데이 때 이란 쪽 유목민 여학생, 필리핀에서 귀국한 다이버 분과 이야기를 오래 했고 말을 하는 ..

의식의 세계 2026.05.15

기괴한 다큐 인생 - 루이스 떼루

이 무지막지하다 싶을 정도로 평범해 보이는 남자를 보라 키가 크고 마른, 지각있어 보이는 안경 낀 백인 남자가 수줍은 미소를 짓고 있다면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대충 환영받을 것이다 낯선 상황에서 평범함은 무해함으로 인식되고 이는 상대의 경계심을 허문다 저널리스트이자 다큐 제작자인 루이스 떼루는 이를 십분 활용하고 있다 옷도 ㄹㅇ그 나이대 서양 남자 평균들이 입는 옷만 입는데 그런 거만 찾아주는 전담코디가 있나 싶음 그러나 그런 그가 다루는 인물들은 비범하다.연예인 재벌 이런 평범한(?) 비범함 말고 주류 사회의 경계 밖에 존재하는, 예를 들어 - 전자발찌 차고 모여사는 성범죄자집단 - 매매혼 알선업자 - 종말론자 - 난교파티 주최부부 - 모든 백인들을 불태워 죽여야 한다고 말하는 극단주의 블랙 네셔널리..

리뷰 2026.05.08

Zine, 독서하는 서브컬쳐

스누피 파쿠리 비글 개가 나오는 만화책을 만든 적이 있다중학교 1학년 때 쯤이었던 거 같다A4용지를 반으로 접고 호치케스로 중앙을 집은 뒤 연보라색 포스터 컬러로 표지를 칠하고 내지에 만화를 그렸다 완성 뒤 그럴듯한 책의 형태에 전율했다 이것을 아마 진zine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Zine이란 MAGAzine(혹은 Fanzine)의 줄임말이며 개인이나 소집단이 지 맴-대로 제작, 배포하는 독립 출판물을 뜻한다 한권을 만들어도, 천 권을 찍어도 좋다 각 페이지에 글자를 하나씩만 써도 좋고나를 제외한 모든 자를 다 죽여야 한다는 급진적 사상도 당연히 용납된다. 감수나 검열처럼 수고로운 과정이 존재하지 않으니까껌의 역사에 대해 기록한 뒤 페이지 중간에 씹던 껌을 붙여놓으면 멋질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 간..

리뷰 2026.04.16

작업실 방문

최인호 작가랑 서제만 작가 작업실에 놀러갔다 이름 뒤에 작가 붙이는 거 여전히 저항감이 좀 있다 홍기하 한국 들어왔을 때 놀러가고 1년쯤 만인가 이번에도 시간이 후딱갔다 날씨와 장소가 아름다웠다 물론 사람도 ㅋㅋ 제만씨가 두부를 사 주셨고 두부집 아주머니들이 웃고 계셨고 인호씨는 쥐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나와 보여주셨다제만씨는 요새 모교에서 강의를 하신다 인호씨가 소 여물주는 막대기와 도자기를 수업자료 용으로 들고오셨다제만씨는 머리에 따로 하는 게 없다고 하셨는데 스타일이 멋있었다 인호씨와 그의 자태를 칭송하니 쑥스러워 하셨다자태라는 건 뭘까? 예전에 펑크씬 사람들은 머리가 삐죽삐죽 났다 어떤 이는 눈썹마저사람이 걷거나 서 있을 때의 모습은 많은 것을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최인호 작가가 스무살 힉긱거머리..

사진 2026.04.14

넘버원 넘버투 바로잡기 위원회

조직의 발족을 기념하며 초대 회장과의 담화를 옮깁니다 나 : 넘버 1과 넘버 2의 차이점에 대해서 일단 설명해주십시오 회장 : 넘버 1이 대변이어야 하고, 넘버 2가 소변이어야 합니다.이유는 분명합니다. 두 가지로 얘기할 수 있는데,첫째로는 그것의 중요성, 위급성을 놓고 볼 때 그렇습니다. 우리가 밖에서 대변 실수를 하면 그것은 실로 치명적인 일 아닙니까?네사회적 자살.. 사회적 로그아웃을 당하게 되는데, 소변은 사실 약간 좀 지린다고 해서 그렇게까지 큰 일이 벌어지지 않고오히려 어떤 동정을 받을 수도 있는, 그런 측면이 있단 말이죠. 네 그러다 보니까 그 중요성, 위급성의 차원을 놓고 볼 때도 넘버 1은 대변이어야 하고 넘버 2가 소변이어야 된다, 양놈들의 그 이상한 언어 습관은 잘못되었다, 라고 얘..

2026.04.13

용사와 쥐

용사는 지루했다전쟁이 끝났기 때문이다 쥐도 지루했다 갇혀 살았기 때문이다 오늘도 의욕없는 발걸음으로 시장을 지나던 용사의 눈이 쥐의 빨간 눈과 마주쳤다 용사는 쥐를 샀다지루했기 때문이다 용사의 집에 있던 큼지막한 무기상자는 쥐의 집이 되었다쥐는 별안간 찾아온 환경의 변화에 공포를 느꼈다 어쨌든 평생을 왕진가방만한 크기의 케이지에 갇혀 살았던 것이다 용사는 쥐의 집에 몇가지 물품을 넣어주었다 쥐에게는 숨을 곳이 생겼다물과 밥을 주었다 쥐는 곧 적응했다 변화에 적응한 용사와 쥐는 다시금 지루해졌다용사는 쥐에게 말을 걸었다쥐는 침묵했다 용사는 쥐에게 손가락을 내밀었다알비노 쥐의 시력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지만예민한 청각과 후각이 다가오는 거친 손을 감지했다 물어야 할까쥐는 생각했다하지만 마음을 바꿔 두 앞발을 ..

2026.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