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자의 보상심리 부자의 특권의식

유 진 정 2026. 2. 3. 23:06

며칠 전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 길이었다.
서로를 형 동생이라 부르는 두 할저씨가 올라탔다.
차림새는 남루했고 술에 잔뜩 취해있었다. 동생이라는 분의 목소리가 대단히 컸다.

못된 놈은 천만원 벌고 착한 놈은 십만원 벌어
대한민국 이 썩어빠진 나라가 문제야 내 친구가 동두천에 양계장을 하는데.. 로 시작된 한탄은 곧
이 썩은 나라는 90프로 다 뒤져야 돼 착한 사람만 살아 남았으면 좋겠어
어떨 땐 전쟁이라도 나서 다 뒤졌으면 좋겠다니까 씨벌 이라는 반사회적 웅변으로 번져갔다. 

그 뒤로 자신이 얼마나 착하게 인생을 살아왔는지, 어떤 대단한 사람과 알고 지냈는지
좌중을 다분히 의식한 자기소개가 이어졌다. 모두 과거의 이야기였다. 

내용에 비해 장황한 말투와 비틀거리는 몸짓은 추락하는 존엄의 상징처럼 보였다. 버스 안엔 울적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좀 더 듣고 싶은 호기심과 견디기 힘든 마음이 충돌하다 결국 도착지 몇 정거장 전에 내려 다음 버스를 타고 갔다.

오늘 받은 뉴스레터에서 엡스타인 리스트 관련 기사를 읽었다.
별로 알고싶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노동당 거두의 팬티 사진에 압도되어 다 읽어버렸다.

강력한 욕망의 힘으로 권력을 거머쥔 인물들의 사생활이 모범적일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착각일 것이다.
많은 것을 쥐게 됨과 동시에 책임질 것도 감춰야 할 것도 늘어났을 것이다. 엡스타인은 권력층의 스트레스 해결사 노릇을 그 동안 잘 해왔던 것 같다. 

아무튼 기사를 읽으며 버스 안의 술 취한 아저씨를 떠올렸다.
양상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유사한 구조에서 파생된 심리라고 느낀다. 

착하게 살아왔으니 사회가 내게 보상을 해줘야 한다. 
중요한 사람이니 나는 특별대접을 받을 권리가 있다. 

아는 사람이 호빠에 취미를 붙였을 때 동행하자는 권유를 받은 적이 있다.
가면 뭐하는데 물으니 다 벗은 남자 둘 양 옆에 앉혀놓고 아무거나 다 시킬 수 있다고 하길래 별로 안 가고 싶어졌다.
왜 돈내고 그런 짓을 하고 싶은 건가 하는 의문은 얼마 후 풀렸다.
회사 이사가 밤낮을 가리지 앉고 전화해 이 사람의 일거수 일투족을 통제하는 것이었다.

통제를 당하니까 통제하고 싶은 거구나,
성산업은 단순히 성욕만이 아닌 권력의 욕망에 의해 돌아가는 면이 있는거군 싶었다.

과정에서 충만감을 느낄 때 인간은 결과에 집착하지 않게 된다.
반대로 결과를 위해 심리적 고통을 크게 감수할 수록 큰 보상을 바라게 된다. 
지나치게 강해진 보상심리는 필연적으로 극단성을 띄게 된다. 

금강경에 나오는 무주상보시는 주고 안 주고의 문제가 아니다.
줄 거면 ‘주는 나’ 를 버리고 바라지 말고 주어야 한다는 동기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