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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놈

내가 아는 인간 중 제일 나쁜 놈이 A였다. 범죄자였고 죄질이 상당히 불량했다. 생계형 범죄 그런 거 아님어느 날 A와 대화를 하는데 A가 여기 사람들 다 외강내유라고, 나쁜 놈인 척 하는데 사실 제일 여리고 착하잖아, 라는 말을 했다. 그 ' 여기 사람 '들에는 당연히 A 그 자신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인간도 스스로는 착하다고 생각하는구나,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2차 충격파가 몰아쳤다. 그렇다면 나도 나쁜 놈일 수 있겠구나허구헌날 위선을 욕하고 아닌 척 하면서도 스스로를 선량한 인간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구나수년 후 A 모친의 인터뷰를 우연히 읽게 되었다. 가정폭력에 시달렸고 자살시도를 수차례 했다는 내용이었는데A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은 한 번도 없었음으로 조금 놀..

2025.04.14

oman

같이 명상하는 분 중에 말을 매우 겸손하게 하시는 분이 있다. 사실 겸손은 좋게좋게 표현한거고 내가 보기에는 지나치게 저자세인 감이 있어서 아 좀 저러지 좀 말지 언어의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행위 궁시렁궁시렁 so K..하면서 속으로 못마땅해 하고 있었다. 저번 코스를 그 분과 같이 하게 되었다. 마지막날 기분이 좋아서 말을 걸어 보았다. 이럴수가 성폭행 피해자 상담사로 근무하시는 분이셨다.말 한마디 한마디를 조심해야 하는 직군에 계셨던 것이다. 안 하면 일을 계속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명상을 하는 이유도 있다고 하셨는데 아무튼 부끄러웠다. 그래도 상담까지 하러 오는 피해자들은 강한 사람들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2025.04.13

내가 제일 무식한 자리가 개꿀임

일전에 홍긔하씨가 뭔 철학교수들 오는 파티에 가야 된다고 후달린다는 이야기를 함당신이 무식한 사람들 볼 때 느끼는 기분을 그 사람들이 당신보고 느낄까봐 그러는 거지! 하니까 맞다 하길래  잠깐 생각에 잠김스무살 때 쯤 본 토탈이클립스 랭보 대사 중에 라는 게 있었는데. 저 말에는 꽤나 공감했다. 그래서 싸이월드 메모장에 적어놨더니 숄티캣의 홍유정 양이 무서워ㅜㅜ 그렇게 보지 말아줘 라고 답글을 달아서 빵 터졌던 기억이.. 아 근데 하려던 말은 이게 아니고 원래 내가 제일 무식한 자리가 개꿀임그 반대가 최악이고 내가 제일 박식한 집단에서 지내다 보면 분조장이랑 정신병 생김 내가 남 때문에 고통받느니 남들이 나 때문에 좀 고통받는게 낫지 그래서 무식하면 개꿀이라 이거야 유남쌩?

2025.04.12

동네 미용실

오래된 동네 미용실에서 교환되는 정보의 량에 대해 알게 되면 남자들은 놀랄겨정말 모든 이야기가 다 나옴 그리고 먹을 것도 나옴저번엔 심지어 숟가락 들고 밥 먹으라고 하시길래 그건 거절함오늘은 땅콩 캬라멜이랑 롤리폴리를 주워 먹으며 원장님(69)이 23년간 막걸리를 부어가며 기른 군자란 이야기를 들었음 시장 쪽에도 잘 하는 집이 있는데 거긴 원장님이 직원을 너무 구박해서 보고 있는게 고역임 방문할 때마다 학대의 강도가 높아지고 있고 원장님의 음주빈도를 고려하면 전두엽에 손상이 오기 시작한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듬근데 여기는 혼자 하시고 동네 할머니들 사랑방 느낌이라 맘이 편함 정치 얘기도 맨날 나오는데 상당히 민주적임이재명 지지발언을 해도 되고 윤석열 지지발언을 해도 되는데다른 사람한테 누구 지지해라 말어..

2025.04.10

한국말의 빛과 어둠

라디오는 보통 클래식FM을 듣는데 클래식을 좋아해서가 아니라딴 채널 디제이들 말하는 거 개열받고 노래 가사는 울화통이 터져서 들을 수 있는게 별로 없음그래서 불교 클래식 미군방송 세 개 돌려가면서 들음 아무튼 오늘도 수프 끓이면서 bgm으로 클래식FM 틀어놨는데뭔 음대 교수가 유럽어디 다녀와서 이러이러한 점이 좋았다.. 하니까 진행하는 남자가넘 부럽네여 겨수님 설명 듣고 있으니까 유럽 다녀온 거 같구여블라블라그래서 아니 말을 왜이렇게 저능아 같이 함???!!! 소리 지르고 주먹으로 라디오 내려쳐서 끔분기별로 한번씩 ㅇㅈㄹ하고 있는데 안 뿌서지는 거 보면 라디오가 튼튼한듯암튼 그래서 한국어에 대한 생각을 또 해봤음옛날에 영국인 구남친한테 나 한국말 하면 어떻게 느껴지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걔가 잠시 생각..

2025.02.07

노인의 웃는 얼굴

요즘 삶의 큰 기쁨 중 하나가 산책인데. 누가 노친네 같다고 했는데 일단 킹정하고산책 중 항상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애와 개와 노인이다. 걸어다니는 존재 중 가장 순수하다고 느껴지는데스스로의 이미지를 덜 의식하는 편 + 시간적 여유가 있는 포지션으로 인해 형성되는 느긋한 분위기 때문인듯아무튼 그런데,오늘 산책 코스 중 지나게 되는 약수터에 노인장 네 분이 옹기종기 모여 패트병에 물을 받고 계셨다. 기다리려면 한참 걸릴 거 같길래 한 모금만 먼저 마셔도 되냐 하니 흔쾌히 그러라 하신다. 저걸로 마시라며 분홍색 파란색 약수터 바가지를 가르키셨지만고개를 흔든 뒤 두 손을 오므려 물 나오는 입구에 가져다 댔다. 씻는 건 줄 알았던지 할머니가 반쯤 차 있던 페트병의 물을 내 손에 부왘 부어주시길래손으로 마실 거에요..

2025.01.26

렌지 밥과 중중무진

햇반 솥반(버섯) + 렌지에 돌린 동물복지계란찜 조리시간 10분 안 걸림 ㅈㄴ살맛남이렇게 차려놓고 갑자기 overwhelmed됨 이걸 한국말로 모라해야됨 감동의 쓰나미?알을 낳은 닭부터 시작해서 농부, 당근을 세척해준 중국인, 전자렌지 개꿀팁 전수해주신 블로그 독자분들전자렌지 사라고 압박넣은 홍기하 이드페이퍼에서 솥반 추천해준 소장님 솥반 개발자 전자렌지 발명가 서울시의 치수와 음식물 쓰레기를 담당해 주시는 분들 나아가 나에게 생을 부여해준 분들까지 (비록 교류는 단절되었으나)셀 수 없이 많은 존재의 도움으로 지금 이 순간 살아서 밥을 먹고 있다. 다 늙어서 공동체 따위에 의지하게 되느니 자살하고 말겠다는 글을 쓰던 젊은 날의 오만함을 되돌아보게 된다.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는 거 물론 당..

2025.01.15

전자렌지

한국에 잠깐 들어온 홍기하씨가 다녀갔다. 덕분에 냉장고가 깔끔해졌다. 이런 거 어?? 한 숟가락 남은 소스통, 다 버려, 이거 뭐야, 유통기한 지났자나, 그리고 냉장고 위에 저런 와글와글한거 다 치우고!! 전자렌지 사서 올리라고!!!!! 하시길래 네네하고 다 버림그김에 전자렌지도 삼. 린나이. 기능 제일 적은 씸플한 걸로자취 12년 만에 드디어 전자레인지가 생겼다. 영하에 가스 쓸 때마다 환기 십오분씩 하면서 덜덜 떨지 않아도 됨가스렌지 쓰면 환기를 꼭 하도록 하세요 폐암걸리니까집 화분들을 보면서 기하씨가 자기는 이런 responsible한 거는 아직 못 하겠다 그런 얘길 하길래아직 정착을 원하지 않는 상태라는 거 아니겠나, 나도 한국 돌아와서 정착의 의지를 기르려고 처음 화분을 들였다, 는 대답을 했는..

2025.01.14

개같으면 좀 개같다고

그니까 내가 사람이나 상황 때문에 기분이 개같다그럴때 아오 개같네 이걸 인정을 하는게 되게 중요함 ( 정확하게 말하면 에고의 반응 때문에 개같은 거지만 그건 다음에 얘기하고 )아니 뭐야 그걸 인정 안 하는 사람도 있나 싶겠지만 의외로 많음 특히 종교계 내가 어릴 때 교회를 열심히 나갔지 지금은 띵상을 열심히 하고 있고 고로 줜나 많이 봤다 이런 경우 교리같은게 가만 보면 사람을 엄청 기만적으로 만드는 경우가 있단 말임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교리에는 문제가 없고 그 교리를  을 치장하는 도구로 삼아버리는 과정에서 흔하게 발생하는 문제일전에 상대방이 너무 개같은 행동을 하고 있고 그게 뻔히 보일 때 제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라고 명상원 선생님께 상담을 받은 적이 있는데일단 그 행동은 그걸 저지르는 당사자..

2025.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