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

될일될

작년의 계획대로라면 오늘은 장기코스를 시작하는 첫 날이어야 할 것이다.하지만 이런 저런 고민 끝에 코스를 미뤘다가, 뒤늦게 다시 신청했다가, 받아들여졌다가, 출발 전날 밤 미국 센터 선생님의 최종 결정으로 결국 취소통보를 받았다.막판에 번복된거라 신청을 받아주셨던 한국 선생님이 거듭 사과를 하셨는데 사실 원인을 따지자면 나의 변덕과 조바심 때문이고결국 순리대로 된 거 같아서 잘 되었다는 마음이다. 보호를 받은 것 같기도 해서 감사함을 느낀다.하지만 분명 실망감도 존재했기 때문에 트리플 머쉬룸 와퍼와 만화책 구매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아무튼 이 에피소드를 계기로 지난 몇 년을 돌아보니 우당탕탕 수행일지라는 타이틀이 떠오른다.머릿 속에 조지 해리슨의 My Sweet Lord가 24시간 재생되는 것 같은 환희..

2025.12.19

닫힌 세계는 반드시 자기 자신을 기형적으로 재생산한다.

백년의 고독 줄거리가 기억이 안나서 지선생한테 물어봤더니 그럴듯한 문장을 떡하니올초 예전에 몇 번 뵌 적이 있는 분의 부고를 전해들었다. 자살인지 사고사인지 사인이 불분명하다고 했는데 생전 쓰신 글을 읽고나니 전자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쓰는 문장들은 모두 자신으로 귀결되었다. 다루는 모든 소재들이 존재를 지탱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했고 끊임없이 자기를 호출하고 증명하려는 시도에서 절박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인스타 왜 밀었어요?- 껍데기만 키우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알맹이가 넘쳐서 껍데기가 만들어지면 좋은데 그게 아니라 그냥 껍데기만 빚고 있는 거 같더라고요

2025.12.16

색계 베드신

모아놓은걸 봤는데첨엔 걍 양조위 누드 흐흐흐 하며 클릭했다가보다보니 숙연해져서 정좌하고 감상함 다 보고 나니 사는게 뭔가 싶음일단 정말 잘 만든 베드신임 첫번째 베드신에서는 탕웨이가 방어적임 구라치고 있는 입장이기도 하고 얼마전까지 처녀였으니까 반대로 양조위는 거의 돔 수준의 지배적인 면모를 보임 사람을 너무 많이 죽인 사람이라 인간을 못 믿으니까 통제와 관찰로 불안을 잠재우는 수 밖에 없음 껴안아서 자기 표정 가리려는 탕웨이 계속 침대에 다시 눕혀서 얼굴 들여다보고 나중엔 목잡고 섹스함 그러다 점점 신뢰가 생겨서 막판에는 여성 상위도 나오고 아무튼 둘의 심리를 말 한 마디 없이 되게 직관적으로 묘사함 훌륭한 감독 아무튼 그런데 보고나니까 기분이 이상해짐 전쟁이 배경인 영화의 베드신은 특히 그런듯도처에 ..

2025.11.12

햄스터 백만마리

기하씨가 조카 어록 정리한걸 보내줌 조카한테 허락 안 받고 우리끼리 얘기해서 걍 올림 - 아빠 발에서 썩은 브로콜리 냄새난다고함. 자기는 식초 냄새 난다고함- 아빠 발 뒤꿈치가 깨졌다고함- 아빠가 나쁜 말, 나쁜 행동 하는건 아빠 잘못이 아니고 하느님이 아빠를 조종을 잘못해서 그런거라함. 그래서 새로운 하느님이 왔으면 좋겠다고함- 다리에 쥐가 나면 햄스터 백만마리가 지나가는 것 같다고 함- 우리는 진짜가 아니고 게임처럼 게임세상에 사는거고 누가 우리를 조종하고 있는 거라함- 외할아버지는 바삭한 부분 혼자 다 먹고, 외할머니는 생선냄새 나고, 이모(홍기하)는 온몸으로 자기를 자꾸 만져서 같이 안 자고 싶다함- 00(동생)이 발에서 피넛버터 냄새난다고 함- 아빠랑 외모를 바꾸자고 하니 아빠는 못생겼고, 얼굴..

2025.11.04

싫은 인간 덜 싫어지게 만드는 법 2025버전

싫은 인간을 떠올림그 인간이 침대에 누워 이불 뒤집어 쓰고 목만 내놓고 있는 장면을 상상함 그럼 덜 싫어짐 요즘은 이렇게까지 해야 될 만한 대상은 없지만.. 대비용 https://digthehole.com/2509 싫은새끼 덜 싫어지게 만드는 법싫은 새끼를 떠올림싫은새끼가 지구 어디 한구석탱이에서 숟가락으로 우적우적 밥처먹고 있는거 상상함 그럼 덜 싫어짐digthehole.com

2025.11.02

탑골공원 바둑 금지에 대한 단상

2000년대 초부터 후반까지 홍대 놀이터는 많은 이들의 아지트였다. 벤치 아래로 쥐가 질주하는 오른쪽 코너는 펑크족들 차지였고 중앙에선 아마추어 MC들이 둥글게 모여 랩을 했으며왼쪽의 가장 넓은 공간은 홍대를 방문하는 여러 사람들이 공유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SNS나 카톡 등을 사용하지 않던 시기라 사람이 만나고 싶으면 놀이터나 가자, 하고 거기로 향하곤했다. 가면 아는 사람 한두명은 무조건 앉아 있었다. 반가운 사람일 때도 아 노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일 때도 있었지만 어쨌든 중요한 건 같은 장소에 얼굴을 아는 사람이 항상 나와 있었다는 거다.약속을 잡고 시간을 정해 만나는 만남과는 다르다. ' 내킬 때 ' 나가서 ' 그냥 ' 본다는 것이 이런 만남의 핵심이다. 시간을, 사람을 선택하는 수고를 들이지 ..

2025.09.19

곰루라기

지리산에 갈 거다. 곰이 두렵다. 호루라기를 샀다.방울이 더 효과적일 거 같긴 하지만 티타늄 호루라기가 갖고 싶었다. 2박3일 동안 짤랑거리는 방울소리를 듣고 싶지도 않고 십여년 전 반달곰 복원하시는 전직 사냥꾼의 숙소에 묵었었는데지리산이 곰 살기에 꽤 좋았는지 지금은 개체수를 좀 줄여야 하는 상황이라고 한다곰의 습격을 받은 뒤 흐려져 가는 눈으로 ' 그 때 그 숙소가 복선이었어... ' 중얼거리는 장면을 떠올리다 지리산에서 곰 만나 죽을 정도면 그건 그냥 죽을 팔자라는 생각을 했다. 알레스카에서 불곰이 무스를 먹는 장면을 봤다는 분의 이야기도 떠오르는데고기가 크니까 다는 못 먹고, 매일 같은 장소로 와서 무스를 조금씩 파먹었다고 한다. 무스가 점점 작아지는 딱 그만큼 불곰이 살쪄가는 모습이 귀여웠다고...

2025.09.16

논바이너리와 MBTI

그래서 그 논바이너리랑 트랜스에 대한 의견 사람들 앞에서 말할 수 있어요?음 미국에선 못 말할 거 같은데. 린치당할 거 같아요ㅋㅋㅋ아 근데 내가 최근에 영상을 하나 봤어. 9gag 갔다가.. 그 무슨 대학 강의실에 되게 전형적인 블레이저입고 턱수염 난 안경 백인남자가 강의하러 온 상황이고제목이 뭐 선생에게 침을 뱉기 위해 트랜스 학생이 마스크를 벗는다? 이런 포스트였거든요 아무튼 백인남자가 말을 하려고 하는데 막 뱃살 튀어나오고 피어싱 하고 검은 옷 입은 FTM 트젠이 괴성을 질러,그리고 그 뒤로 막 또 까만 옷 입은 퀴어친구들이 팔짱 끼고 병풍해주고 있고.. 나 그런 거 예전에 펑크 씬에서 많이 봤는데..아무튼 걔네들 표정 다 완전 자기 지금 영웅이야. 영웅적 행위를 하는 중이야. 근데 솔직히 너무 다..

2025.08.27

온라인으로 산 팬티

가 너무 크다. M으로 주문했는데 코끼리용이 왔음컴플레인 하려고 기존의 M사이즈 팬티와 비교샷을 찍어 내 카톡으로 보냈는데 몇초 뒤 어쩐지 등골이 서늘해지길래 톡창을 체크하니잘못 보냈다. 그것도 57명의 진지한 구수련생이 이용중인 명상 단톡방에그룹시팅 출첵 투표용으로 만든 방이고 사담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는 방이다호스트 분이 코스를 가실 때마다 내가 투표를 대신 올리고 있는 방이기도 하다. 거기에 입던 팬티 사진을 올린 것이다.떨리는 손으로 재빨리 삭제하기를 눌렀으나 가차없이 카운트다운되는 말풍선 옆 숫자들순간 숨이 거칠어지면서 아니 사람이 살면서 실수할 수도 있지 뭘 그렇게 동요하는 거야 아직도 아상에 대한 집착이 크구나라는 머릿 속의 목소리가 뒤따라왔는데 그것조차도 일종의 집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2025.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