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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지 못해 잃어버리는

90년대 패션에 관한 웹게시물을 보다가 문득 충격을 받은 적이 있음곱게 꾸미고 역전 벤치에 앉아 일행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시선이.. 전부..정면을 향하고 있는 것임아무 것도 안하고 멍을 때리고 있는 것임!  고개를 폰에 처박고 있는 사람이 한명도 없는 것임! 사람들이 멍때릴 시간이 없어졌다는 것은 곧 사유의 죽음이라는 뜻으로 다가왔고공포는 나에게 액션을 취하게 했다. 일단 인스타그램을 삭제함이게 작년 초여름의 일인데 인스타 열달 정도 안 쓰니까 짱좋음 (메시지는 pc로 확인)물론 팔 거 생기면 다시 할 거지만 사적 용도로는 사용하지 않을듯  이 뒤로 순간에 몰입은 '순간' 이 존재하고 '나'가 사라지는 거지만소유에는 '나' 가 들어가는 거라 감상의 질이 낮아질 수 밖에 없는듯요소유하려는 시도가 반대로 진..

2024.04.24

명상원에서의 10일은 번개처럼 지나갔다

침묵하는 동안 한심한 농담부터 꽤 진지한 내용까지 여러가지 단상들이 쌓였는데 나는 끊임없이 뭔가를 머릿 속으로 적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필요한 버릇이지만 현재에 머무르지 못하게 만드는 주원인이기도 하다. 글 쓰는 사람들 정신병 걸리는 이유도 이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왔는데 (만화가들 황당한 사고로 잘 죽는 이유도) 동시에 작문은 미치지 않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블로그는 뇌 전용 클라우드이다. 여기에라도 좀 옮겨놓아야 내가 살지 아무튼 코스에 대해서는 정리해서 다시 적어야겠고, 어제오늘 있었던 일이나 기록해 봐야겠다. 12일만에 폰을 켜니 이00님 부친상 문자가 와있었다. 모르는 이름이었는데 위에 온 메시지들을 보니 3년전 중고거래를 했던 사람이다. 라는 나의 문자 아래로 라는, 오타 ..

2024.04.22

매지컬 데이

입춘은 애저녁에 지났지만 공식적인 봄의 시작은 어제였던 거 같다. 휴일도 아닌데 동네 사람들이 밖에 많이 나와 있었다. 나무가 많은 동네라 노랑 분홍 연두색 가루를 뿌려 놓은 거 같은 모습이고 구름이 낮은 흐린 날은 얇은 솜 이불을 덮은 듯 포근함마저 더해준다. 다양한 모습의 개들이 주인과 함께 산책 중이고 그 중 몇몇은 썩 잘 어울리는 옷까지 입고 있다. 허리를 조이는 남색 코트를 걸치고 있던 그레이 하운드에게 베스트 드레서 상을 주겠다. 옷발은 역시 말라야 산다. 하지만 벌거벗고 있는 통통한 갈색푸들도 정말 귀엽다. 굴곡이라곤 전혀 없는 평평한 등허리를 햄처럼 한 입 베어물고 싶어진다. 몇년 동안 외벽으로 감추어져 있던 거대한 건물이 준공의 위용을 뽐낸다. 흰 고래같은 건물에서 검은 얼굴의 인부들이 ..

2024.04.04

봄은 광기의 계절

요즘 내 표정난 가벼운 경조증 진단을 받은 적이 있음진단은 필요에 의해 형식적으로 받았던 것이라 약은 안먹고 버림경조증이랑의 사이는 나쁘지 않음 별 일 없어도 대체로 잔잔하게 신나있으니까 개꿀이라고 생각함대우울 시대에 나 같은 인간도 좀 있어줘야 균형이 맞지물론 여기에 대한 자각이 전혀 없던 시절엔 은밀하게 사고도 좀 치긴 했지만이제 무서운게 많아져가지고 조증 도지면 걍 믹서기 분해해서 세척하고 그런 거 함봄이랑 흐린 날에 증상이 심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요즘 봄에다 비까지 계속 와가지고 쭉 하이텐션임이럴 때면 생각과 말의 속도가 빨라지고 계속해서 움직이며 충동적이 되는데그 결과  정수리에 빵구뚫림발단 : 잠자리에 들기 전 목 스트레칭기로 스트레칭을 함다 하고 도어스토퍼에 스트레칭기 밴드를 한 번 걸어 봤..

2024.03.29

우주로 보내버리고 싶은 노래 :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

음악은 조심해서 들어야 한다.  인간의 너무 원초적인 곳을 건드리고 정서에 깊숙히 관여하기 때문이다.  그 맥락에서 요즘은 음악을 신중히 듣고 있는데 WE ARE THE WORLD만큼은 반복해서 듣는다. 일단 너무 좋고.. 노래가 사람을 일시적으로나마 친사회적으로 만드는듯 아무튼 그래서 이 곡의 메이킹 필름이 다큐로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기뻤는데 이렇게 흥미롭고 감동적인 과정까지 있었을 줄은 특히 기획을 후닥닥, 녹음은 하룻밤 만에 해버렸다는 사실을 알고 상당한 충격을 받음 당연히 이런 미친 캐스팅에 갓띵곡이면 철저한 기획과 무수한 연습이 동반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하긴 질질 끈다고 꼭 좋은 게 나오는 것도 아니고 어느 날 벼락같이 떠오른 영감으로 작곡한 노래가 띵곡일 수도 있는 거고 그런 점..

2024.03.17

이강인과 12인의 성난 사람들

법정 드라마의 갓띵작으로 불리우는 이라는 영화가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한 이민자 소년이 법정에 선다. 친아버지를 칼푹찍해 주겨버렸다는 혐의이다. 12명의 배심원단은 이 소년을 사형시킬 것인가 말 것인가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불량배인 소년은 아버지와 사이가 나빴고 사건현장에서 발견된 칼과 동일한 종류의 잭나이프를 가지고 다녔으며 살해 현장을 목격했다는 증인도 존재하는, 유죄가 거의 확실해 보이는 상황이다. 폭염 속 선풍기마저 고장나 찜통을 방불케 하는 배심원실 어서 집에 돌아가 맥주나 씨원하게 들이키고 싶은 11명의 남자들은 서둘러 유죄에 표를 던진다 그런데 이때 생각에 잠겨 있던 8번 배심원이 나선다. 어딘가 이상하지 않냐는 것이었다. 만장일치가 아니면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상황임으로 11명의 ..

2024.02.20

아이 필 포 유 강인 리

자유의지란 없으며 (있더라도 적음) 인간은 유전자와 환경에 의해 프로그래밍 된 대로 작동하게 되어있다 또한 각 인간에게는 특성이라는 것이 존재하며 그것들은 서로 상호작용한다 얼음 알갱이에 수증기가 달라붙으면 비가 내리듯 특성과 특성이 부딪히면 어떤 현상이 발생하게끔 되어있는 것이다 손웅정 옹에게 서편제st 학대 정신교육을 받으며 자란 마이클 잭슨 손흥민 전국민의 슛돌이로 귀욤받다가 자유분방 남유럽에서 우아래 없이 성장한 이강인 경기 질 때마다 통곡하는 31살 손흥민 (머신으로 성장하는 동안 자아의 손상을 입음) 경기지고 좆니 울고싶은데 꾹 참고 인터뷰 하는 12살 이강인 상대방 입장에서 듣고싶은 말만 해주는 손흥민 지 하고 싶은 말만 쳐하는 이강인 (군면제요? 별 생각 없어요… 금메달이요? 무겁던데요) ..

2024.02.15

정의는 증오할 때 패배한다 서울의 봄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위키피디아에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들을 검색해본 적이 있다.일단 심심했고.. 몇 년 동안 한국말 안 쓰고 한국 뉴스도 안 보고 살았더니 근대사에 대한 정보부터 다시 구성하고 싶었음갓기피디아에는 대통령들에 대한 정보가 거의 책 수준으로 자세히 나와있었고 읽다보니 꿀잼이라 몇시간을 내리 읽었다. 대한민국 격동의 근대사 진짜 오진다. 이러니까 일본 아저씨들 제 5공화국에 미치는 거그 중 박정희 김대중 편을 유독 흥미롭게 읽었는데 정적으로 인한 죽을 위기를 몇 번이나 넘기고도 복수 대신 평화를 외친 킹대중 선생님의 행보에 감동을 느꼈고 한 마디로 평가하기 힘든 박정희의 복잡한 캐릭터성에 매력을 느낌 아무튼 그랬는데읽다보니까 좀 이상한게 박정희가 독재를 했고, 저격 당했고, 그럼 민주화가 되었..

2024.02.06

고독은 독인가

독이라고 생각한다. 독도 잘 쓰면 약이 되듯이 고독도 적당하면 삶의 자양분이 되어준다.몇년 전 집 정리 중 이십대 초반 쓰던 폴더 폰을 발견한 적이 있다. 뭐가 들어있을지 궁금해서 충전기를 찾아 켜봤다.여행을 떠나기 직전까지 쓰던 폰이었는데 약간 놀랐다. 송별의 문자가 엄청나게 많이 와 있었던 것이다.일주일에 사람을 한 번 만날까 말까하는 삶의 형태가 고착된 지 한참 된 후 였던지라 과거의 스스로가 낯설게 느껴졌다. 매일같이 사람에게 둘러싸여 지내던 날들이었다. 그리고 맨날 울면서 잤다. 그 때만큼 인간(나 포함)을 혐오한 적이 없었다.여행 중에도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이동 중이니만큼 관계들이 캐주얼하여 인간의 부정성을 목격할 일이 적었고, 사람들의 건강함과 따듯함에 인류애가 적립되던 소중한 시간들이었..

2023.12.30

take it or leave it

이십대 초 쓰던 일기장을 읽어봤는데아주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별로 없다. 좋은 사람에게도 나쁜 점이 나쁜 사람에게도 좋은 점이 있을 뿐이라는 메모가 적혀있었다 요즘 자주 하는 생각도 이건데 사고가 돌고돌아 다시 원점으로 도착한건가? 아무튼 사람 관찰하다보면 장점이 단점이고 단점이 장점인게 너무 극명하게 드러나서 약간 웃기기까지 한데 그래서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서 그 점만 싫다, 그것만 좀 고쳤으면 같은 생각은 필연적으로 번뇌를 초래하게 되는 듯take it or leave it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