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루라기

유 진 정 2025. 9. 16. 03:42

 

지리산에 갈 거다. 곰이 두렵다. 호루라기를 샀다.

방울이 더 효과적일 거 같긴 하지만 티타늄 호루라기가 갖고 싶었다.
2박3일 동안 짤랑거리는 방울소리를 듣고 싶지도 않고 

십여년 전 반달곰 복원하시는 전직 사냥꾼의 숙소에 묵었었는데
지리산이 곰 살기에 꽤 좋았는지 지금은 개체수를 좀 줄여야 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곰의 습격을 받은 뒤 흐려져 가는 눈으로 ' 그 때 그 숙소가 복선이었어... ' 
중얼거리는 장면을 떠올리다 지리산에서 곰 만나 죽을 정도면 그건 그냥 죽을 운명이라는 생각을 했다. 

알레스카에서 불곰이 무스를 먹는 장면을 봤다는 분의 이야기도 떠오르는데
고기가 크니까 다는 못 먹고, 매일 같은 장소로 와서 무스를 조금씩 파먹었다고 한다. 
무스가 점점 작아지는 딱 그만큼 불곰이 살쪄가는 모습이 귀여웠다고.

그 표현이 마음에 들어 가신 뒤에도 또 만날 수 있을까요? 여쭤보니
매우 당연하다는 듯이 만나게 될 거에요. 라고 대답하셨는데.
소멸까지 여러 생이 걸릴테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긴 하겠지 

곰루라기를 배낭에 걸어놓고 부는 연습을 한다. 높고 시원스러운 소리가 난다. 

 

지리산
작년엔 사람들이랑 갔고 효율적으로 움직였으니 이번엔 혼자 가서 잔뜩 비효율적으로 움직일 생각이다.  

최근 몇년 동안은 사람이랑 여행을 좀 다녔는데 혼자 다닐 때랑 감각이 꽤나 다르다. 
맛있는 걸 훨씬 더 많이 먹게 되고 안전한 느낌을 받는다. 

근데 내가 여행을 안전하고 맛있으려고 가는 건 아닌 거 같다. 그런 의미에서 식량을 좀 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