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쪽

너는 한국인인데 왜 한국인 편 안듬? 한나아렌트 : 세번의 탈출

유 진 정 2024. 7. 25. 21:59

 

한나 아렌트 (1906 - 1975)
 
 
 

 
시작은 이랬다.

뉴여크에서 수학 중인 홍기하 작가와 카톡을 하던 중 저 문장을 시작으로 야밤에 분노의 일화를 줄줄이 읊었는데 (언제나 답변이 준비되어 있는 질문)

정제되지 않은 분노를 타인에게 이렇게 집어 던져버리는 게 맞는가 싶었으나 그냥 말했음 물어봤으니까..

아무튼 한차례 와와왁 키보드를 두들긴 후 실례를 범했군 하며 이야기 마무리를 지었는데
예상치 못한 휴메인한 답변이 돌아옴
 

 
며칠 뒤
 

 
 

기하씨가 추천한 책은 한국에 출판이 아직 안 되었길래 다음날 도서관에서 인간의 조건을 빌려 왔는데 음..

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악의 평범성)도 안 읽은 거 같은데?
걍 인용한 책을 읽었거나 설렁 설렁 읽다가 꽂히는 부분만 메모해 뒀던 거 같음

왜냐면 인간의 조건 너무 두껍고
아렌트 선생님 배우신 분+ 모국어가 독일어 = 글이 어려움 = 아오 읽기싫어

현대들의 가속 강박에 대한 한병철의 말이 떠올랐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밥도 청소도 일도 해야되는데

그래서 만화책을 읽음




만화는 정말 최고다.
그 어떤 노잼썰도 만화로 만들어 놓으면 읽을 만한 것이 된다.
게다가 나치 치하 유대녀였던 아렌트의 삶은 핵꿀잼 대하 드라마이기까지 했기 때문에 순식간에 빠져들어 완독
 
 
 





2차 대전 종전 직후 자신들이 벌인 일을 직시하고 싶지 않았던 세계는 조폭출신 기업인 마냥 서툰 이미지 세탁에 들어갔다.

미국에서 상영된 안네 프랭크 뮤지컬은
그래도 저는 사람들의 마음은 선하다고 믿어요~  라고 안네가 노래하는 환상적인 장면으로 끝이 났고

" 그런 종류의 시도는 그녀가 수용소에서 고통받다 가스실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덮어버리고
안네가 아직 그 다락방에 살아 숨쉬고 있다는 이미지를 관객들에게 전달했다. " (by 데보라 넬슨)

그러던 찰나 한나 아렌트가 등장한다.

이스라엘로 건너가 수많은 유대인을 가스실로 보낸 아이히만의 재판을 참관한 아렌트는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그는 괴물이 아니라 사유에 철저히 무능력한, 
고지식한 공무원이었다는 '악의 평범성' 에 대해 주창한다

또한 유대인들이 스스로 져야 할 책임이 있다는 주장을 펼치는데 
그 무정한 현실의 직시는 사람들을 광분시켰고 아렌트는 이 글로 수많은 독자와 적을 얻게 된다.
격노한 그녀의 유대충 친구들은 공격을 시작했다.







너는 한국인인데 왜 한국인 편 안 듬? 너는 여잔데 왜 여자편 안 듬?

등의 소리를 나도 살면서 종종 들어왔는데 이런 류의 비난을 마주할 때 마다 충격을 받곤 한다.
여자라서 여자의 편을 들거나 한국인이라서 한국인의 편을 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엄청나게 비윤리적이기 때문이다.
아니 생각을 해보라고 그럼 같은 논리로 한남은 한남 편만 들고 북한 사람은 북한 편만 들어야함?

앵무새처럼 본인 진영의 무결을 주창하는 태도는 광기와 진배없다. 
진영 논리에 구속된 자들은 필연적으로 현실을 왜곡시키며 발언의 자유를 억압하게 되어있고
이것이 바로 악이 출발하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정의를 외쳐봤자 자신들의 저항의 대상과 같은 폭력을 저지르고 존재의 의의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기존의 사회질서가 유지되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사회 전반에 충격을 미치는 대형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분노한 군중이 빠르게 목 매달 희생양을 원함 
( 이 때 희생양은 우리와는 완전히 공통성이 없는 공포의 존재로 묘사됨 )

군중심리에 빠삭한 언론과 정치인들이 물고 뜯을 거리를 던져줌

잠잠해짐

반복


'기존의 사회질서 유지' 라는 말은 안정감을 주지만 결국 유사한 사태가 또 발생할 것이라는 소리와도 같다.
사고를 초래한 개인을 목매달아 봤자 사회 구조가 바뀌지 않는 이상 유사한 비극은 다시 벌어질 것이고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아렌트는 그래서 본질을 알리려고 시도한 사람이다.
현실의 직시는 아렌트에게 있어 곧 생존을 뜻했다.

그가 수용소의 혼란을 틈타 탈출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을 때 
탈출하다 총살 당하는 리스크를 지느니 남아서 안전을 꾀하겠다, 여기도 나쁘지 만은 않다며 반대하던 낙관적 여성들은 모두 가스실 엔딩을 맞았다.

 




아니 이렇게 똑똑한 여자가 왜 철학을 하지? 라는 의문이 들 찰나 등장한 컷

요즘 철학의 한계에 대해 종종 생각한다.
아름답고 중요하지만 거기서 끝나버리면 안 되는 거 같아
 
2024.05.15 https://c-straw.com/posts/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