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립 체육관의 코리안 원로들

유 진 정 2025. 2. 15. 15:03

구립 헬스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집 앞에 있는 건 경쟁에서 밀렸고 자전거로 십분거리 더 큰 곳에 다니는데 
공에서 운영하는 장소 특유의 건조함과 실용성이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주는 곳임 
내가 다니는 시간대엔 6-70대 이용객이 8-90%를 차지하는데 어제 있었던 일 두가지 

레그레이즈 세번째 세트 후 쉬면서 팟캐채널 고르고 있었더니 웬 할저씨가 다가와 뭐라뭐라함
이어폰 빼고 네? 하니 운동 중간에 쉬지 말고 그 쉬는 동안 다른 기구를 쓰고 다시 돌아와서 운동을 해라,
다른 사람(본인)이 기다리고 있지 않느냐 라는 주장

뭐래는거지시발 하고 시계를 보니 기구 쓴지 딱 10분째 길래 십분 썼다고 해도 요지부동 쉬지말고 다른 기구 쓰러 가라는데 나 좀 어른이 된 거 같애. 화가 별로 안 나더라고
그래서 알았다 한 세트만 더 하고 자리 내드린다하고 원래 15번 할 거 25번 하고 일어남 

그러고 이제 운동 끝나고 스트레칭 하는데 스트래칭 교실 할주머니들이 한두명씩 들어와 자리를 맡기 시작했음
그걸로 말이 많았는지 시작 5분 이전에 자리를 맡아 놓으면 패널티를 주는 모양이던데
근데 이제 한국 사람들 부지런하니까 15분 전에 와서 차마 자리는 못 깔고 본인이 쓰고 싶은 위치에서 서성거림 게임 캐릭터 선택창처럼

그러다 그 중 한 할주머니가 폰기종을 물어보시길래 얘기를 잠깐 하고 있었는데
다른 할주머니가 끼어들어 내 러닝쇼츠를 가르키며 그거 아래에 레깅스를 받쳐 입어야겠다는 훈계를 시작함
저번부터 보고 있었는데 보기 안 좋더라고

그래서 나 또 어른이 된 거 같다고 느꼈어. 화가 안 나더라고
그리고 이럴 때 어떻게 응대해야 되는지 좀 알 거 같음. 일단 논리로 접근할 생각을 버려야됨

할: 보기 그러니까 뭘 좀 입어야 겠어
나: 더워요
할: 그래도 입어야지
나: 어쩔 수 없어요
할: 그래도 보기에
나: 더워요
할: 아니 그래도
나: 어쩔 수 없어요

할: ..어쩔 수.. 없어.. 

쓸쓸히 퇴장하는 할지매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옛날 생각이 났음 이런 사소한 걸로도 뻑하면 언성을 높였었단 말임
약간 그 주사기 들고 헬조선의 유독성을 나에게 주입하려고 다가오는 느낌이라 히이이익 이런 느낌으로 질겁하며 방어했던 거 같은데
문제는 이렇게 살면 분노가 자꾸 적립되어 인간이 반사회적이 되어감. 마음과 신경은 쓰는데로 길이 나게 되어있으니까

아무튼 언컨벤셔널한 조센징을 보는 순간 불같이 끓어오르는 것이 한국인의 훈계본능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다고 또 이 코리안 원로들을 악마화해서는 안 되는 것이 이 사람들은 그런 era를 살아 온 사람들이니까.
어른이 말하면 듣고, 나라가 시키면 하고
그렇게 자아를 억눌러 가며 개열심히 단합해서 이뤄낸게 한강의 기적이고 그 꿀을 내가 지금 빨고있고??

하지만 그들의 역사를 리스펙하는 것과 납득되지 않는 요구에 순종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임
개인과 개인사이 경계를 흐리는 일은 정신건강과도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