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쥐가 만든 비옥한 흙

유 진 정 2022. 4. 11. 20:52

 

 

쥐들을 기를 때 묫자리에 대한 고민을 꽤 했다.


업체를 통해 화장을 치르고 싶은 생각은 없었고

야외에 매장하는 것은 불법이라길래 그럼 어떻게 해야하나 알아보니

1. 밀봉하여 종량제 봉투에 폐기


2. 화분장


이라는 옵션이 남았다. 1안은.. 패스

하지만 햄스터에 비해 몸집이 훨씬 큰 래트를 묻으려면 얼마나 큰 화분이 필요할지 몰라서 영문 검색을 했는데
대충 4-50cm깊이의 화분에 묻으면 한달 여에 걸쳐 분해된다는 글을 읽었던 거 같다.

그래서 작년 여름 가로쥐는 옥상에서 야채를 길러먹던 대형 화분 중 왼쪽에 묻혔다.

가끔 이웃이 옥상에서 개를 산책시키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 알려드렸고
( 쥐가 파헤쳐지는 것도 문제지만 부패한 쥐를 먹게되면 먹은 동물 역시 사망할 가능성이 있다고 )

악취가 풍기면 어쩌나 하고 좀 걱정했는데,
다행히 아무 일 없이 가로쥐는 미생물들에 의해 곱게(?) 분해되었다.

가로쥐의 무덤에는 파를 심었고 수확해서 먹었다. 가로쥐의 성분이 나의 일부를 구성하길 바라며

그리고 확실히 유기물은 흙을 비옥하게 만드는 것 같다. 왜냐하면



 


가로쥐를 묻은 화분에만 정체모를 식물이 왕창 자랐기 때문이다.

 

 

 

같은 상태였던 오른쪽 화분과의 비교


저 파도 심지어 월동을 함
당연히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한 작년 봄에 심은 케일도 다시 돋아나 세로쥐와 함께 나누어 먹음

하지만 올해 저 화분엔 루콜라를 심을 것이기 때문에 잡초를 제거하기로 했다.
원래 저번 달에 하려고 했는데 어쩐지 뽑기가 망설여져서 미뤘다.

 

 


모두 제거했고 한 포기는 화분에 옮겨심었다.

이건 기를 예정이다. 이 식물의 이름을 혹시 아시는 분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다른 식물들은 큰 변화는 없다.


 


냉해를 입고 가지치기를 왕창당한 홍콩야자는 아래쪽에서 다시 새 잎이 돋기 시작한다.

스킨답서스는 잎의 일부가 노랗게 변했는데 일단 쥐흙(?)을 한삽 떠다 넣었다.

이것처럼 기르기 쉬운 풀이 없다는데 나는 항상 스킨답서스만 별 재미를 못본다. 두 번 죽였고 번식도 잘 안됨

저 빈약한 화분이 5년 전 들여온 것인데 병에 걸릴때 마다 상한 잎 제거하니 남은게 저 만큼

 

 

 


마찬가지로 냉해를 입었던 행운목은 살아있는 부분만 물꽂이 해뒀다가 뿌리가 내렸길래 오늘 흙에 심음





2년 전 사망하실 뻔 했던 스파티필름. 겨울을 나면서 잎이 좀 노래지긴 했지만 무난한 생장을 보여줌







 

 

화분과 친밀하던 가로쥐의 생전모습

 

맨날 흙에서 이상한 거 꺼내먹고 풀뿌리를 씹어서 저지당하곤 했음. 그래도 넌 정말 좋은 쥐였어




 

어제자 세로쥐

인간나이로 팔순을 바라보시는 중이라 존댓말을 써야 할 거 같음
해먹을 오르내리기가 힘든지 요샌 박스를 선호하신다.

쥐 사육 초기에 래트구루라는 유튭채널에서 사람들이 당신을 호더라고 생각할 정도로
작은 종이박스들을 많이 모아놓으면 좋다는 영상을 본 기억이 있는데
세탁실에 쌓인 로켓배송 박스 보니까 진짜 호더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