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는 세계 193

아 여자란 무엇인가

동네에 미용실이 있다. 가격이 말이 안되게 싸다. 가깝지만 너무 싸니까 무서워서 한번도 안 가봤다.  그러다 올 여름 혼자 머리를 자르다 뒷머리는 도움이 필요할 거 같아  용기내어 들어가 봤다. 외관처럼 좁고 남루한 미용실이었다. 미용사는 눈썹 문신을 진하게 한 4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여성이었다.진한 눈썹에 비해 눈이 슬펐고 말투가 대단히 겸손한 분이었다. 아유 뭘요 암요 이런 대사가 어울리는아무튼 머리를 어떻게 만들어 놓으려나 기대반 걱정반으로 앉아있었는데 예상과는 달리 매우 말끔멀쩡하게 잘 잘라주셨다. 오며가며 보니 항상 할머니들로 붐비는 곳이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까지 가격을 싸게 받는가 의문이 다시 고개를 든다. 자기 건물이라 그런가보다, 하고 폭주하는 생각을 마무리 지었다. 어지러운 작업환..

적는 세계 2023.11.13

하녀같은 엄마 이대로는 안된다

며칠 전 애엄마가 오른손에 아이스크림과 킥보드를 쥐고, 왼손에 좀 더 작은 킥보드를 쥐고 힘겹게 언덕을 올라가고 있는 모습을 보았음앞에는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꽤 큰 아들들이 아이스크림을 신나게 핥으며 걸어가고 있었는데중간에 작은 쪽이 엄마를 돌아보며 뭐라뭐라 훈수를 둠 전후사정에 대해 내가 완전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별로 아름다워 보이는 풍경은 아니었음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옛날에 어떤 분 집에 갔다가 고등학생 아들 손톱을 깎아주고 있는 걸 보고 충격받은 기억이 떠올랐는데 이거 절대로 자식을 위한 행동이 아니라고 봄  충분히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일을 대신 해주고 있는 것은 모친이 그만큼 아들에게 심리적으로 의존하고 있거나 자기가 답답하니까 (= 신뢰가 부족하니까) 그러는 것임. 헌신처럼 보이지만 사..

적는 세계 2023.10.30

Happy Birth Death

2018년 어느날 원효대교를 자전거로 건너다가 내가 가진 시간이 한정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 전에도 해본 적이 없는 생각은 아니지만 이날 갑자기 그 사실이 엄청 충격적으로 다가와서 그 순간 내려다본 바닥의 색깔까지 기억이 난다. 아 무의미한 일에 시간을 쓰면 중요한 일에 써야할 시간이 그만큼 줄어드는구나, 인연을 신중하게 만들고 시간을 신중하게 써야겠다 싶었다. 그렇게 다짐을 하고서도 꽤 많은 시간을 낭비했는데 요새 또 이 생각이 자주 난다. 이틀 전 명상센터에 가서 오랜만에 접수봉사를 도왔다. 남들보다 일찍 오신 세련된 노인의 신청서를 받아들고 빈칸이 있나 체크를 하는데, 또박또박 적힌 문장 한 줄이 눈에 들어왔다. ' 일상에서 죽음을 느끼게 되어서 왔습니다. ' 도반 S님이 그룹시팅에 오셔서 ..

적는 세계 2023.10.21

Love & Kindness

작년 가을엔 사랑이 하고 싶었다. 봄이되니 데이트가 하고 싶었다.. 그러다 여름이 오니 데이트고 나발이고 장마철 우중섹스하면서 짐승적 본능에 몸을 맡기고 싶어짐 (못함) 점점 쉬운 거 찾게 되는게 매슬로우 욕구단계 보는줄 암튼 다시 가을이 오니 사랑이 하고 싶어짐 근데 대상이 개인은 아니고 국가를 사랑하기로 왜 이런 생각을 했냐면 여름내 한혐이 맥스를 찍었단 말임 외모지상주의(근데 미감은 빻빻음) 급나누기 허세과시 정상성강박 가성비집착 8282 약자혐오 일해라절해라.. 그야말로 정병이 정병을 양산하는, 부유하면서도 영혼은 빈곤한 사회 (자막 on) 근데 또 그렇게 된 데까지 넘나 타당한 이유와 근대사가 존재하잖음. 한국 너무 불쌍한 나라라고!!! 사람으로 치면 흙흙흙수저 결손가정에서 학대당하고 코피 터져..

적는 세계 2023.10.13

기득권 서태지 노무현

홍기하: 백인 분노 생길거 우려했는데 막상 오니깐 백인들 존나 좋은거 같아요. 너무 착함 유진정: 그렇다니까!! 홍기하: 근데 문제는 그게 표면적으로 그런거지 딥한 관계에서는 미묘한 차별이 있음 microaggression 유진정: 전에 누가 양놈들 졸라 착해보이는데 그건 너를 똥양인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니가 쟤들이랑 대등한 위치에 가게되면 졸라 밟을 거란 얘기한 적이 있었는데 홍기하: 맞아요 그냥 커엽다고 생각하는듯 유진정: 백인뿐만이 아니라 그게 진짜 기득권의 속성인거 같음 홍기하: 그래서 주장 센 한녀 뭐라 안하는것도 똥양인 여자라서 그런거라고 전다화: ㄴㅇ 전다화: ㅇㅇ 귀여움의 속성이 일단 그런거죠 유진정: ㄴㅇ이 뭔가요 냐옹입니까 전다화: ㅋㅋ오타 넘어가요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유진정..

적는 세계 2023.09.21

퀘이크1은 정말 훌륭한 게임인데

왜 하는 사람이 이렇게 없나 당연히 없겠지 1996년에 나온게임이니까 미국놈들은 좀 하려나 하고 9gag에 퀘이크1 검색했더니 자폐증과 늙은이들이 하는 게임이라는 답글이 나옴 암튼 한 게임을 반평생 넘게 하면서 여기에 대해 사람이랑 얘기를 못하고 있으니까 답답해서 전에 만나던 사람한테 퀘이크 예찬론을 펼쳤더니 스팀 깔아서 뭐 어찌저찌 하면 퀘이크1을 멀티 플레이 할 수 있다길래 깔았고 그가 퀘이크의 보라색 하늘 아래 등장한 순간은 좀 감동이었다 그래서 라고 했더니 그새끼가 바로 나 쏴죽임 무인도에서 평생 살다 사람 만난 기분이 어때요? ㅇㅈㄹ 소시오패스신줄 암튼 퀘이크1은 멋진 게임이다 특유의 속도감과 만나는 적을 다 쏴죽이는게 스토리의 전부인 순수함이 넘 매력적임 그리고 이런 점도 https://dig..

적는 세계 2023.09.20

구린 미술

꽤 오래 전 광주의 한 미술관에서 보고 이름을 기억하게 된 작가가 있다. 왜 기억하게 됐냐면 너무 구려서 장르가 민중미술이었는데 내가 민중미술을 별로 안 좋아하긴 하지만 그것 땜에 구리다고 생각된 건 아니었고 뭔가가 너무 얄팍하다고 해야되나? 무슨 형이 죽었다. 그래서 내가 뭐를 했다, 이런 멘트를 대충 그린 인물화 옆에 찍찍 적어놨는데 이게 전혀 비통한게 아니고 걍 한없이 얄팍한 느낌아니 내가 화가고 정말 깊은 감정을 느꼈다면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고 싶어질 것 같지는 않은데심지어 저렇게 무성의한 을 옆에 띡 적어서 죽은 형을 팔아먹고 싶지는 않을 거 같은데 싶더라고 그 후로 다른 미술관에서도 헉 구려 뭐지 하고 보면 어김없이 그의 이름이 적혀 있길래 이름이 뇌새김 되어벌임게다가 그의 그림은 대체로 이름..

적는 세계 2023.09.14

개자식 전성시대

샘 해리스가 간만에 격렬한 에피소드를 업데이트 했다. 타이틀이 무려 운동하면서 듣다가 몇 번 뿜었고 짚어볼 만한 이슈라고 생각되어 번역을 해봄 군기반장 톤으로 읽으면 재미있을 것.. 의역이 쫌 있으니 영잘알들은 직접 들어보세요 https://www.samharris.org/podcasts/making-sense-episodes/331-a-golden-age-for-assholes === 요즘 음지에서나 활동해야 할 법한 인물들이 소셜미디어의 힘을 빌어 문화전반을 주름잡고 있는 현상을 목격하고 있다. 심지어 그들이 다루는 주제들은 공중보건 경제학 전쟁 등등 매우 중대한 사항들인데 그 디지털 토사물에 가깝게 보이는 주장들이 오늘날 새로운 형태의 영양소로 추앙받으며 천리만리 퍼져나가고 있는 중이다. ( so ..

적는 세계 2023.09.14

인테그리티

요즘 integrity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하는데 crows are white 주제도 그거라 매우 집중해서 봤음 integrity가 한국에서는 정직과 성실이라고 번역되는 경우가 많은 거 같은데 약간 다름 정확하게 대체할 수 있는 단어는 없고 진실성 + 일관성이 그나마 제일 비슷한듯 그니까 내가 뭐를 하겠다, 정했으면 거기에 반하는 세상의 가치나 관계, 규범마저도 쌩까고 밀고나가는 하드코어한 태도를 말하는 것인데 언행의 일치도 여기에 포함됨 예를 들자면 입시제도를 강력 비판하던 신해철이 사교육 광고를 찍은 행위는 본인의 integrity를 훼손한 것임 내가 책을 8월에 내겠다고 공표해놓고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것 역시 integrity를 훼손하고 있는 것 워랜버핏은 integrity가 없는 놈들이 조직을 ..

적는 세계 2023.08.24

코리아 코리안

전다화: 저 요즘 영어회화 공부 중인데 진짜 한국어 영어 너무 호환 안 되는 언어임 유진정: 그래서 진짜 사고체계 자체가 넘 다르게 발달한 거 같음 한국어 존나 무논리 무지성 대신 개처럼 싸울땐 진짜 좋은 언어 전다화: 선생님이 한국어를 번역하려고 하지 말고 어린이처럼 걍 쓸 수 있는 말만 하라는데 일단 주어가 무조건 있어야 하는 게 젤 적응 안되고 한국어는 한문장에 동사가 개 마니 들어갈 수 있더라고요 유진정: 예시 들어주세요 전다화: 어제 마트에 라면 사러갔다가 그냥 짜파게티를 사려고 마음을 바꿨는데 또 막상 라면을 보니까 라면이 먹고 싶어져서 두봉지 샀어 이런 식이랄까. 일부러 지금 만든 문장이라 어색하지만 글고 영어가 훨씬 두괄식이고 내가 누구에게 어디서 무엇을 했다 이런게 꼭 들어가야하고. 친구..

적는 세계 2023.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