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

깜순이

유 진 정 2016. 6. 1. 21:06

1994년 어느날 저녁. 퇴근한 아버지가 가방에서 시커먼 물체를 꺼내더니 거실바닥에 툭 내려 놓았다.

시커먼 물체는 곧 꾸물꾸물 움직이기 시작했고 엄마는 공포의 비명을, 나는 기쁨의 환성을 내지르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털이 곱슬곱슬한 검둥강아지 였던 것이다.

엄마는 도대체 이걸 어디서 가져온것이냐 따져물었고, 아빠는 옆의 카센터에 들렸다가 기름때를 뒤집어 쓰고 있는것이 안되어보여 데리고 왔다는 설명을 시작했다. 


엄마의 걱정이고 뭐고 나는 너무나 기뻤다. 

외동인 나는 아주 어릴때부터 강아지를 기르고 싶어했고, 피아노가 생기자 나에게 강아지를 사달라는 곡을 만들어 치기까지 했는데도 부모님은 그때껏 건전지를 넣으면 깽깽짖는 강아지 인형만을 사주었던 것이다.

아무튼 엄마는 강아지가 싫다고 했다. 어릴때 개에게 물린적도 있고 강아지 특유의 힘이없어 흐물거리는 느낌이 징그럽다고 했다.


우리는 강아지에게 깜순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싫다던 엄마는 동물병원에서 강아지용 분유를 사다 투덜거리며 타서 먹이고 발톱을 깎아주는 등 깜순이의 뒤치닥거리를 도맡아하기 시작했다. 나는 뭐 놀아주고 여름에 엄마가 강아지 이발시킬때 발 붙잡고 있는정도.. 귀찮았던 기억이 없는걸 보니 별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던거 같다. 아무튼 깜순이는 잘 컸다. 


기르다보니 깜순이는 똑똑한것 같으면서도 멍청한면이 있는 강아지였다. 낯선사람을 보면 무섭게 짖고 아침식탁위에 굴비를 먹어치우다가 엄마가 달려오면 부리나케 싱크대 아래 손이 안닫는 부분으로 피신하는 등 잔머리의 대왕이였으나 띨띨한 짓을 자주 저질렀다.


예를 들자면 이런것이다.

깜순이는 가끔 나의 등교길을 따라나오곤 했다. 책가방을 메고 한참 걷다 강아지를 발견하고 집에 가! 소리를 지르면 집으로 돌아가곤 했는데 하루는 엄마의 애를 먹인적이 있다. 보통 깜순이가 집에 돌아가면 문앞에서 멍멍 짖어서 엄마가 문을 열어주곤 했는데 멍멍 소리는 어디선가 들리는것 같은데 강아지가 안보였다고 한다. 엄마는 이게 어떻게 된일인가 왔다 갔다하며 깜순이를 찾았지만 낑낑소리만 들릴 뿐 이였다고..

알고보니 계단을 뛰어오르다 기운이 넘쳐버렸는지 우리집인 3층을 지나 4층앞에서 문을 열어 달라며 울어대고 있었던 것이다. 


집안에서 사라진적도 있었는데 알고보니 안방 침대 밑에 기어들어갔다가 너무 꽉 끼여서 나오지 못하고 낑낑대고 있던것이였다. 그날 엄마와 나는 퀸사이즈 침대를 들어내야만 했다.


하루는 같은 단지에 있던 외할머니댁에 깜순이를 데리고 간적이 있다. 

외할머니는 부산스럽다며 강아지를 베란다에 두라고 했고 우리는 식사를 했던것 같다. 밥을 다 먹고 깜순이를 꺼내려 베란다문을 열었는데 깜순이의 낌새가 이상하였다.

입을 꾹쳐닫고 열지 않는것이였다. 이녀석 왜 이래? 걱정이된 우리는 낑낑대는 깜순이의 입을 억지로 벌렸고, 곧 얼룩덜룩 화상을 입은 입안이 보였다. 

알고보니 베란다에 할머니가 비누를 만들려고 양잿물을 담아놓은 그릇이 있었는데 그것을 깜순이가 핥아버린것이였다. 

당황한 우리는 오라메디를 찾아 강아지의 입에 발랐고 1단지에 있던 동물병원에 깜순이를 들고갔다. 

의사는 실소를 흘렸다. 이런 상황은 자신도 처음이라며 오라메디를 계속 발라주라고 했다. 깜순이는 꼬박 이틀을 굶었다.


우리는 종종 깜순이와 등산을 함께가곤 했는데 산에 풀어놓는 순간 깜순이는 제 세상을 만난것만 같이 행동하였다. 

발이 네개라 그런지 늘 우리보다 수십걸음을 앞서 가서는 뒤돌아보며 왜 빨리 안오냐는듯이 컹컹 짖곤 했다. 

하루는 산 아래의 계곡을 지나고 있었는데 깜순이가 예의 그 야생의 애티튜드를 자랑하며 미친듯이 다리 위를 달리기 시작하더니 그길로 계곡아래로 뛰어내렸다.  

앞발을 쭉뻗은 상태로 다리밑으로 곡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잡종푸들. 그것은 정말로 황당한 광경이였다. 

다행히 물살은 빠르지 않아서 떠내려가던 깜순이를 아빠가 건져올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깜순이는 감각기관 한두군데에 문제가 있었던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늘 활기가 넘치고 가족을 매우 사랑하는 깜순이였다. 아빠가 퇴근하면 누구보다 먼저 발소리를 알아듣고 현관으로 나가 배를 뒤집으며 반겼고, 내가 목욕을 하러 들어가면 목욕을 마칠때까지 화장실 문앞에 지키고 앉아 양말이나 팬티를 질겅질겅 씹곤했다. 

밥을 주는 엄마는 누구보다 좋아했던것 같다. 크레파스를 씹어먹은 날은 무지개색 똥을 싸곤했다. 


그리고 깜순이는 유용하기도 했다.

당시에도 나는 늦잠을 자주 잤는데, 엄마가 얼굴에 분무기로 물을 뿌려서 나를 깨우곤 했다. 하지만 깜순이가 온 뒤로 엄마는 귀찮은 일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저 방문을 열고 깜순이를 집어넣은 뒤 문을 닫아버리면 깜순이가 나의 온 얼굴을 핥아서 아침잠을 쫓아버리곤 했다.  

식구로서의 깜순이의 입지가 굳건해져가고 있을 무렵 큰아버지의 환갑잔치가 열렸다. 

나는 깜순이도 가족이니 데리고 가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그 의견은 부모님에 의하여 간단히 묵살되었다. 

우리는 부페에서 달팽이요리와 메뚜기 튀김을 집어먹고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깜순이의 상태가 이상했다. 평소였더라면 발광을 하며 반가워 했을텐데 어째 힘이 없고 비틀거리며 걸어나오는 것이였다.  


동물병원은 문을 닫은 시각이였고 우리는 이녀석이 왜이러지 하면서도 피곤하니 내일 병원에 가보자고 서로의 합의를 맞추었다. 

나는 금새 잠이 들었고 엄마 아빠는 늦게까지 상태를 지켜보았다고 한다. 아빠는 정신을 차리게 한다며 베란다에 깜순이를 내놓기도 했다는데 별 효과는 없었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 잠든 깜순이를 두고 나는 등교를 하였다. 오전수업만 있던 날이라 일찍 하교를 하였다. 

혜성이라는 친구와 함께 집으로 왔는데 혜성이가 분식집에서 깜순이를 주겠다며 오뎅국물을 얻어왔다. 나는 왜 개에게 오뎅국물을 주려고 하는것인가 의아했지만 토를 달지는 않았고 단지 깜순이가 아프니 시끄럽게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의를 주었다.


집에 도착하니 깜순이는 내 책상 밑에서 잠이 들어있었다. 

엄마는 아침에 네 방에 들어가더니 잔다고, 깨서도 계속 상태가 이러면 병원에 데려가자고 했다. 혜성이가 깜순이를 깨워 놀고싶어하길래 건드리지 말라고하고 점심을 같이 먹었다.

하지만 혜성이는 깜순이와 정말 놀고 싶었던것 같다. 몰래 내방에 들어갔다 나온 혜성이가 말했다


" 유진아 깜순이가 딱딱해 "


깜순이는 그렇게 죽었다. 엄마는 울면서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아빠도 운다는걸 그때 처음 알았다. 


우리는 왜 24시간하는 동물병원을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큰아버지의 환갑잔치가 열리던 밤 깜순이가 홀로 지키던 집에선 무슨일이 있었던 것일까? 

말아두었던 카펫이 쓰러져 있었는데 거기에 머리라도 맞은 것일까? 우리에게야 솜방망이 같겠지만 6킬로그램짜리 소형견에겐 큰 충격이였을것이다. 아직까지 우리는 깜순이의 직접적인 사인을 모른다. 

아무튼 우리는 개를 기르면 안되는 가족이였다고 생각한다. 깜순이의 작은 목숨은 우리의 무신경속에 그렇게 스러져버렸다.


다음날 부모님은 수락산에 깜순이를 묻어주러 갔다. 

나는 가고 싶지 않았다. 집에 있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왜 가고싶지 않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죄책감 때문인지, 죽음을 받아들이는것이 힘들었던것인지 아니면 이미 죽었고 묻어줄 사람도 있는데 나까지 갈필요는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때문이였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아무튼 수락산엔 한동안 가지 않았고 그후로도 깜순이가 묻힌곳을 찾아간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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