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이슈에요

대중교통 리클라인(좌석 젖히기)에 대한 생각

유 진 정 2018. 11. 1. 17:50

image from film Euro trip





엊그제한 포스팅의 답글만 봐도 알겠지만 대중교통에서 좌석 젖히기라는 떡밥은 던져놓는 즉시 찬젖(젖혀도 됨)과 반젖(젖히면 안됨)파로 여론이 팽팽히 갈린다.

 

몇년 전 이드게시판에도 같은 주제의 글이 올라왔었는데 답글이 백 개가 넘을 정도로 격렬한 토론의 장이 벌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승무원 출신의 게시판 이용자가 앞사람에게 양해를 구할 순 있지만 배려를 강제할 권리는 없다. 라고 친절하게 정리를 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항공사가 개념이 없다느니 등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몇몇 반응들을 보고 깝깝해서 나도 답글 몇 개 달았는데 오늘 이 주제에 대해서 정리를 좀 해보고자 한다. 


우선 내 입장부터 밝히자면 나는 찬젖파이다. 재끼라고 설계되어 있는 좌석을 재끼는 것은 이용자의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돈 들여 특수한 좌석을 달아놓은 의미가 없다. 일본의 경우 시민의식이 너무나 뛰어난 나머지 아무도 좌석을 젖히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굉장한 사회적 낭비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저 주장은 뻥이다. 신칸센 좌석 제끼고 자는 사람 많기만 하드만)


또한 대부분의 대중교통 좌석 젖힘 각도는 뒷사람 체격이 평균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이상 신체에 무리를 주지 않는 선안에서 설계되어 있다. 

나 역시 보통체구인지라 앞사람이 좌석을 풀로 재껴도 크게 불편함을 느낀적은 없는데 확실히 심리적 압박감이랄까 그런것은 있다고 본다. 


하지만 공공재란 개인의 편의를 극단으로 추구하라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편의를 추구하고 싶다면 그만한 자본을 투자해 자가용이나 전용비행기 등 프라이빗 시설을 이용해야 할 것이다. 


좌석의 레버는 공급자가 이용자에게 보내는 '여기까지는 가능' 이란 뜻의 메시지이다. 그것은 그 공간안에서의 일종의 법이며 기준이다. 그렇기 때문에 승무원은 식사시간 등의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좌석을 젖힌 사람을 제지하지 않는것이다. 


물론 좌석을 올려달라는 양해 정도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앞사람이 그 제안을 거절하였을때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는 사람을 나는 거의 보지 못하였다. 배려는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가능한 것이 아닌가. 화를 낸다고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반젖파 중엔 제안을 받아들이고 말고를 떠나 뒤에 사람이 앉아있을 경우 애초부터 좌석을 뒤로 젖히는것 자체가 몰상식이라는 주장을 펼치는 사람이 많았는데, 이것은 일전에 이야기한 마지막 만두 안먹는 한국인이라는 주제랑 상통하는 점이 있다.

 

왜 애초부터 좌석을 재껴서는 안되는가? 뒤의 사람이 불편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어림짐작은 뒷자리 이용자가 나처럼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일 경우 앞사람은 불편하고 뒷사람도 딱히 큰 이익을 취하게 되지않는 병신같은 사태를 초래하게 된다. 


나는 여행 중 이런 식으로 자신이 무례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을 너무나 두려워한 나머지 손해를 보고 사는 한국인들을 자주 목격했는데 아니 그럴 필요까진 없잖아요 한번 시도라도 해봐요 라고 아무리 설득해도 그들은 ' 좀 그렇잖아.. ' 라는 모호한 문장으로 대화를 마무리해버리곤 했다. 


이 부류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설정해 놓은 ' 좀 그런 ' 의 기준을 남한테도 적용해놓고 그들이 선을 넘을 시 혼자 빡쳐하는 자폐적 경향도 가지고 있었는데 자기 주장을 똑바로 해야 인간 취급해주는 문화권에서 이런 식으로 살다보면 처음에는 병신호구 종내에는 성격이상자 취급을 받게되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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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석 젖히기를 반대하는 입장에 선 사람들의 의견을 접할때마다 흥미로웠던 것은 그들이 좌석을 젖히는 사람에 대한 강한 혐오감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었는데 여기에 대해서도 궁예질을 좀 해봤다. 


그들의 글에서 느껴지는 한가지 공통된 정서는 그들이 평소에 많이 참고 사는 사람같다는 것이었다. 

원래 자기는 참는걸 남들이 해버리면 빡치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도 배려를 강요하며 무식을 뽐내는 자들을 보면 빡치는거고 


며칠 전 쓴 글의 청년 역시 참고사는 사람이였다. 시발시발거리다가 승무원이 도착하자마자 굉장한 저자세로 아, 여기 이분께 부탁을 드렸는데 들어주시질 않네요~^^ 라며 야누스적 면모를 보였는데 나는 그가 폰팔이 등의 영업직 종사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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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정리가 길어졌는데 결론을 내리자면, 반젖파와 찬젖파는 사실 똑같은 주장을 펼치고 있다.


' 나의 편함을 위해 네가 희생해라 ' 가 바로 그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젖파의 경우 찬젖파를 반사회적 사이코패스 취급한다는 점에서 내로남불의 화신이자 빡대가리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찬젖파의 경우 내가 너를 불편하게 만드는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법이 지정해준 나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 뿐이다 라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자기합리화에 능한 개자식들이라고 볼 수 있겠다. 


내가 찬젖파이긴 하지만 최대한 객관적으로 결론을 내리려고 노력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장이 편향적으로 느껴졌다면 그것은 나의 젖이 참젖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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