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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설

유 진 정 2021. 3. 4. 00:31

내 가슴에서 지옥을 꺼내고 보니
이윤설

내 가슴에서 지옥을 꺼내고 보니

네모난 작은 새장이어서
나는 앞발로 툭툭 쳐보며 굴려보며

베란다 철창에 쪼그리고 앉아 햇빛을 쪼이는데

지옥은 참 작기도 하구나


꺼내놓고 보니, 내가 삼킨 새들이 지은
전생이구나
나는 배가 쑥 꺼진 채로
무릎을 세우고 앉아서

점점 투명하여 밝게 비추는 이 봄

저 세상이 가깝게 보이는구나


평생을 소리없이 지옥의 내장 하나를 만들고
그것을 꺼내보는 일
앞발로 굴려보며 공놀이처럼
무료하게 맑은 나이를 꺼내어보는 것
피 묻은 그것

내가 살던 집에서 나와보는 것

너무 밝구나 너무 밝구나 내가 지워지는구나

 

 

 

 

 

 

 

오버
이윤설

 

지구 반대편으로 떠나기로 했다 오버

널 떠나기로 했다 오버

엔진이 툴툴거리는 비행기라도

불시착하는 곳이 너만 아니면 된다 오버

열대 야자수잎이 스치고 바나나 투성일 거다 오버

행복하자면 못할 것도 없다 오버

죽이 끓고 변죽이 울고 이랬다 저랬다 좀 닥치고 싶다 오버

원숭이 손을 잡고 머리 위 날아가는 새를 벗 삼아

이구아나처럼 엉금엉금이라도 갈 거다 오버

왜 그렇게 쥐었다 폈다 꼬깃꼬깃해지도록 사랑했을까 오버

사랑해서 주름이 돼버린 얼굴을 버리지 못했을까 오버

엔꼬다 오버

삶은 새로운 내용을 원하였으나

형식 밖에는 선회할 수 없었으니

떨어지는 나의 자세가 뱅글뱅글 홀씨 같았으면 좋겠다 오버

그때 네가 태양 같은 어금니가 반짝 눈부시도록 웃고 있었으면 좋겠다 오버

지구는 속눈썹으로부터 흔들리는 풍경으로부터

추억을 모아주고 있지만

태어나 참 피곤했다

벌어진 입을 다물려 다오 오버

내 손에 쥔 이 편지를 부치지 마라 오버

희망이 없어서 개운한 얼굴일 거다 오버

코도 안 골 거다 오버

눅눅해지는 늑골도 안녕이다 오버

미안해 말아라 오버

오버다 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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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윤설 시인은 1969년 경기도 이천에서 출생했으며, 명지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중앙대 대학원 문창과에서 석사과정을 수료했으며 지난 200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희곡이 당선됐다. 다음해 국립극장 신작희곡 페스티벌 당선, 거창 국제연극제 희곡 공모에서 당선되기도 했다.

200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나무 맛있게 먹는 풀코스법’으로 당선했고, 같은 해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시 ‘불가리아 여인’이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시 작품활동을 했다.

고 이윤설 시인은 당시 당선소감에서 “사람은 누구에게나 은유가 있다”며 “오늘의 기적에서 신의 은유를 느낀다”고 썼다.

munhaknews.com/?p=34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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