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에요/도서

미셸 우엘벡 - 세로토닌

유 진 정 2021. 3. 20. 01:44

 

- 물론 내가 단순화하는 것이긴 하나, 단순화하지 않는다면 어떤 것에도 이르지 못한다. 


 - 자고로 자유는 주체성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상부에서 하달된 수칙에 대한 하급자의 반감이나 일종의 불복종, 또는 제 이차 세계대전 직후에 등장한 다양한 실존주의 연극에서 이미 묘사된 개인의 도덕심에 의한 반항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 나는 사랑은 서로의 차이점을 기반으로 키워나가는 것이며, 비록 깊이 파고들면 누가 됐든 무수한 차이점이 발견된다 해도 원칙적으로 비슷한 사람끼리는 절대 사랑에 빠질 수 없다고 굳게 믿게 되었다. 연인은 서로 같은 언어를 써서 좋을 것이 없다. 서로 하는 말을 모두 알아듣고, 말로 의사소통을 해서 좋을 게 없다. 말은 흔히 사랑이 아닌 분열과 증오를 조장하기 때문이다. 말은 하면 할수록 의도와 멀어지는 반면, 남자든 여자든 마치 개를 어르듯 상대를 향한 반 언어적이고 두루뭉술한 사랑의 속삭임은 무조건적이고 지속적인 사랑의 조건을 형성한다.


- 태국 매춘부들은 약간 모자란 사내들을 위한 처방이었다. 어떤 사랑의 표현도, 그보다 더 단순하게는 여성의 성충동까지도 진짜 사랑으로 덥석 믿을 준비가 된 영국의 서민층 남자들 중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유형말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그들은 매춘부의 손과 음부와 입에 의해 새 사람이 되어 돌아오고, 더는 이전과 같은 사람이 아니게 된다. 서구의 여성들에게 좌절당한 그들은, 가장 명백하게 앵글로색슨인들의 경우, 실제로 새 사람이 되기도 하지만 나는 그들과 같은 경우가 아니었다. 


- 어떤 인간 존재도 그처럼 혹독한 고독 속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터였다. 어쩌면 나는 일종의 대안현실을 창조하여 시간의 갈림길로 거슬러 올라가 삶을 추가로 대출받으려던 것은 아니었을까. 어쩌면 지난 세월 동안 그 대출된 삶이 이곳에 숨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저 두 플랫폼 사이, 열차들의 먼지와 기름때 속에 숨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러자 나는 포식자에게 발각된 뾰족뒤쥐, 아주 귀엽고 작은 뾰족뒤쥐처럼 심장이 세차게 두방망이질치기 시작했다


- 그리 매력적이지 않은 인류의 선조들은 몇십명씩 부족을 이루어 살았고, 이런 형태는 오랫동안 유지되어왔다. 수렵채집 사회에서든 농경사회에서든, 거의 촌락과 같은 규모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도시가 생겨났고 그에따른 자연스런 결과로 바로 고독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고독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오직 짝을 이루는 것만이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있었다. 우리는 결코 부족의 단계로 되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지성이 부족한 일부 사회학자들이 '재구성 가족' 안에서 새로운 형태의 부족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실제로 그럴 수도 있었으나, 어쨌든 나는 재구성 가족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해체된 가족이라면 모를까. 


- 우리를 죽이는 것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다. 자꾸만 되살아나서 우리의 가슴을 에고 우리를 좀먹고 결국 우리를 죽음으로 몰아간다. 

- 인간은 천사도 짐승도 아니다. 불행하게도 천사가 되고자 하는 자는 짐승이 된다. -파스칼의 <팡세>


- 우정도 연민도 정신분석도 이성적인 상황판단도 전혀 유용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스스로 불행의 매커니즘을 만들어낸 뒤 의미를 최대로 부풀리고, 그렇게 매커니즘은 하릴없이 계속해서 돌아간다. 질병이 개입하면 작동오류나 결함이 생기지만 계속해서 돌아간다. 끝까지, 마지막 순간까지.


- 나는 단지 혼자였다, 말 그대로 혼자였고, 나의 고독에서 어떤 즐거움도 정신의 자유도 느끼지 못했다. 나는 사랑이 필요했다. 매우 구체적인 형태의 사랑, 일반적인 사랑이, 무엇보다 여자의 음부가 필요했다. 음부는 많고 많았다. 지구상에 적게 잡아 수십억은 있었다. 생각하면 경악스러운 일이었다. 아찔하지 않은가. 남자라면 누구나 현기증을 느낄 터였다. 한편 음부도 페니스가 필요했다. 그러니까 적어도 그렇다고 여겨졌다(이 행복한 오해에 남자의 쾌락과 종족의 보존과 나아가 사회민주주의의 보존이 달려 있다). 이론적으로는 문제의 해결이 간단하나 실질적으로는 이제 더는 그렇지 않으며, 바로 그렇게 인류 문명은 요란하지 않게, 위험도 비극도 없이, 아주 미미한 유린만으로 거꾸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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