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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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진 정 2021. 8. 4. 20:18

가로쥐 담당 선생님이 이번 약을 주시며 어쨌든 끝은 올 거에요. 라는 말을 하셨다. 그래서 안다고 그랬다.
약도 한달치 지어올까 하다가 언제 끝날지 몰라서 보름치 용량만 받아옴
이제 막 슬프지는 않고 남은 시간을 최대한 즐겁게 보내야겠다고 생각할 뿐이다. 울지도 않는다. 쓸 데 없으니까.

전에 인스타에서 기르던 쥐를 떠나보낸 주인의 포스팅을 봤는데 쥐 죽고 나서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너무 즐거워 보이길래
아니 저게 가능한가?? 하는 생각을 잠깐 했는데 가능한 거 같다. 왜냐면 그 사람은 쥐에게 정말 잘 대해주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후회나 미련이 적어 심리적 회복이 빠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솔직히 그 정도로 잘 해주진 못한 거 같아서 아마 후폭풍이 좀 있을 것 같다.
그 고통을 최대한 약화시키기 위해 더 잘해줘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산 밀웜 600마리를 주문했다.
지금껏 줘본 간식들 중 기호도가 압도적으로 좋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 한 번만 사주고 그후로 안사줬다.
쥐들은 미친듯이 좋아하지만 밀웜은 살고싶어서 막 꿈틀거리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먹이 처지였던 쥐들이 불쌍해서 데려와 놓고 살아있는 밀웜을 먹인다는게 좀 내부에서 타협이 안되는 뭐 그런게 있었다.
근데 지금은 그냥 악행을 막 저지르기로 했다. 삐쩍 마른 가로쥐 밀웜으로 배터지게 해줘야지 라는 욕심이 살고싶은 밀웜들에 대한 동정심을 앞선다. 이 쯤에서 마광수의 시가 떠올랐다.



업(業)

- 마광수


개를 한 마리 기르기 시작하면서부터
자식 낳고 싶은 생각이 더 없어져 버렸다
기르고 싶어서 기르지도 않은 개
어쩌다 굴러들어온 개 한 마리를 향해 쏟는
이 정성, 이 사랑이 나는 싫다.
그러나 개는 더욱 예뻐만 보이고 그지없이 사랑스럽다
계속 솟구쳐나오는 이 동정, 이 애착은 뭐냐
한 생명에 대한 이 집착은 뭐냐
개 한 마리에 쏟는 사랑이 이리도 큰데
내 피를 타고난 자식에겐 얼마나 더할까
그 관계, 그 인연에 대한 연연함으로 하여
한 목숨을 내질러 논 죄로 하여
나는 또 얼마나 평범하게 늙어갈 것인가
하루 종일 나만을 기다리며 권태롭게 지내던 개가
어쩌다 집 안의 쥐라도 잡는 스포츠를 벌이면 나는 기뻐진다
내 개가 심심함을 달랠 것 같아서 기뻐진다
피 흘리며 죽어 가는 불쌍한 쥐새끼보다도
나는 그 개가 내 개이기 때문에, 어쨌든
나와 인연을 맺은 생명이기 때문에
더 사랑스럽다
하긴 소가 제일 불쌍한 짐승이라지만
내 개에게 쇠고기라도 줄 수 있는 날은 참 기쁘다
그러니 이 사랑, 이 애착이 내 자식 새끼에겐 오죽 더해질까
자식은 낳지 말아야지, 자신 없는 다짐일지는 모르지만
정말 자식은 낳지 말아야지
모든 사랑, 모든 인연, 모든 관계들로부터 탈출할 수 있게 되도록
이를 악물어 봐야지
적어도, 나 때문에, 내 성욕 때문에
내 고독 때문에, 내 무료함 때문에
한 생명을 이 땅 위에 떨어뜨려 놓지는 말아야지

(1979 년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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