될일될

유 진 정 2025. 12. 19. 00:01

작년의 계획대로라면 오늘은 장기코스를 시작하는 첫 날이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저런 고민 끝에 코스를 미뤘다가, 뒤늦게 다시 신청했다가, 받아들여졌다가,
출발 전날 밤 미국 센터 선생님의 최종 결정으로 결국 취소통보를 받았다.

막판에 번복된거라 신청을 받아주셨던 한국 선생님이 거듭 사과를 하셨는데
사실 원인을 따지자면 나의 변덕과 조바심 때문이고
결국 순리대로 된 거 같아서 잘 되었다는 마음이다. 보호를 받은 것 같기도 해서 감사함을 느낀다.
하지만 분명 실망감도 존재했기 때문에 트리플 머쉬룸 와퍼와 만화책 구매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아무튼 이 에피소드를 계기로 지난 몇 년을 돌아보니 우당탕탕 수행일지라는 타이틀이 떠오른다.
머릿 속에 조지 해리슨의 My Sweet Lord가 24시간 재생되는 것 같은 환희의 기간도 있었고 
그 행복이 박살나며 한 주먹에 납작해진 초파리가 된 듯한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좋아하는 분의 불완전함을 경험한 순간도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내면 깊숙히 자리한 아름다움이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워하던 분의 갑작스런 죽음을 겪으며 죄책감과 연민, 분노로 드러나는 미결감을 들여다 본 순간도 있었다.  
이 정도 충동쯤 내가 다룰 수 있지, 건방떠는 순간 바로 큰 코를 다친 적도 여러 번이다.

명상 중 특이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365일 일렁이는 호수같은 정신이 갑자기 정지화면처럼 딱 멈추는 찰나의 순간이 있었는데
너무나 비자연적이고 기묘한 상태였기 때문에 깜짝 놀랐고 마음 속으로 WHAT??? 을 외치는 순간 그 상태는 흩어졌다. 그리고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선생님들께 여쭤보면 의미를 두지말고 계속 수행하십시오. 라는 대답이 돌아올 것이기에 질문하진 않았다.
찰나의 놀라운 순간보다는 일상의 평정이 길어질 때 정진 중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전히 혐오하고 여전히 갈망한다. 그러나 동시에 다시 시작하라 말하는 등불같은 마음의 임재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