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en act and women appear
남자는 행동하고 여자는 보여진다 "
존 버거의 저서 Ways of Seeing의 핵심개념이다.
예를 들어 근대미술이 표현하는 남녀의 누드를 보라.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깨벗었지만 어쨌든 생각 중이다.
지적이며 주체적인 남성이다.
반면 마네의 올랭피아는 정물로써 존재한다.
아름다운 과일처럼 침대보 위에 그저 놓여져 있을 뿐이다.
(한편으로는 나 벗은 거 보니까 좋냐? 하는 띠꺼움도 느껴진다. 마네는 보여지는 여성들의 피로를 이해했던 것 같다. 후기로 갈수록 여자들 표정이 흠 개같넹 이라고 말하고 있음)
근대미술 속 여성의 누드는 누워 있거나 수동적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남성의 누드는 영웅서사를 진행 중이거나 행위의 주체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사실 흐늘하게 늘어져있는 남자 누드 따위를 보고 싶은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은 든다 여하튼..
남자는 여자를 본다.
여자는 자신이 보여지는 모습을 본다.
여자는 남성의 시선을 내면화해서 스스로를 감시한다.
이것은 촬영자와 피사체의 관계와도 유사하다
존 버거는 이 현상의 원인으로 사회구조와 서구 미술계를 지목하지만 내 생각에는 성의 본질 자체가 그런 면이 있는 거 같다.
오래 전 친구가
' 난자와 정자까지 내려가도 여자가 있는 곳엔 남자가 개때처럼 몰리지 ' 라는 명언을 남긴 적이 있는데
넣는 쪽과 넣어지는 쪽, 침투하는 쪽과 방어하는 쪽이라는 성의 특징이 만들어낸 차이를 세상이 구조적으로 심화시키고 있는 것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너무 개같다 싶으면 저항이 필요하고
아무튼 서론이 길었는데
바로 이런 이유로 여자가 찍은 여자 사진에는 어떤 편안함이 존재한다.
고추가 달린 존재가 무해하기가 쉽지 않다.
설사 무해하다 한들 피사체의 남성에 대한 시각과
' 여차하면 내게 박을 준비가 되어있는 존재에게 보여지는 나 '
라는 의식이 또 존재할 것이기 때문에
보여지는 것 이상의, 존재가 드러나는 여성의 사진은 여자 사진가가 찍은 경우가 많더라, 라는 것이 나의 감상이다.
이런 점에서 고 박영숙 작가의 개인전은 편안했다.
(전문): https://c-straw.com/posts/7520
여자가 찍는 여자 - 박영숙 개인전
촬영은 보는 행위이다. 보여지는 쪽은 보는 쪽을 의식하고 보는 쪽은 보여지는 쪽을 컨트롤한다. 개인적으로 캔디드 샷 Candid Shot 이라는 촬영방식을 선호한다. 대상이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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