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라요 비구의 책 마음챙김 확립 수행 에서 정리한 내용을 도반 분이 공유해 주심. 재공유
- 죽음에 대한 명상 -
현대사회에 사는 우리는 죽음이나 죽는다는 사실을 외면하거나 피하는데 익숙하다.
인간은 동물과 마찬가지로 자기보존의 본능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물과 달리 인간의 경우는 죽음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죽음에 대해서 특별한 관점을 갖는다.
자기보존에 대한 본능적인 욕구와 죽음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인간은 죽음에 대하여 무기력함과 공포심을 느낀다.
여기에 대응하는 방어수단으로 주의를 딴 데로 돌리거나 죽음의 문제를 먼 미래로 밀어버리려고 애쓰는 것이다.
그러나 붓다가 되기 전의 보살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이 죽은 것을 보고 그것에 혐오감을 느낄뿐 그들 자신도 똑같은 운명에 처할 것이라는 사실을 애써 무시한다는 사실을 보고 이런 유형의 반응이 부적절하다고 생각했다.
보살은 자신도 똑같은 운명에 처할 것이라는 진실을 수용하고 마음에 새겼다.
그 결과 그의 삶에 대한 도취는 사라졌다.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은 보살로 하여금 깨달음을 추구하는 동기를 부여했다.
출가수행후 깨달음을 얻은 붓다는 자신이 불사를 실현했다고 선언했다.
것은 어떤 형태상의 불사가 아니다.
그의 몸은 여전히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있었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그 자신의 죽음이든 다른 사람의 죽음을 보아도 어떤 영향도 받지 않고
항상 고요하고 평온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하면 죽음으로부터의 해탈은 아직 살아있는 동안에 성취되었다는 것이다.
붓다는 수행자들에게 죽음이 현재의 순간으로 곧장 다가오도록 해야한다고 말씀하신다.
현재 호흡 바로 후에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숨을 알아차리는 것은 바람의 요소의 나타남과 사라짐을 가지고 하는 것이다.
바람의 요소는 네가지 요소가운데 가장 덧없는 것이다.
이것은 몸이라는 존재의 불안정성에 대해 우리를 일깨운다.
호흡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은 완전히 무상하고 비실체적인 것이다.
우리 몸은 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호흡과정에 의존한다.
그런 몸이 어떻게 영속적일 수 있겠는가. 그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너무나 쉽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몸의 연속성이란 것도 다만 호흡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에 의존할 뿐이다.
그러나 호흡 자체는 너무나 분명하게 무상한 것이다. 그것은 단지 변하는 흐름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의 몸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는 있다.
손발을 움직이거나 이런저런 움직임을 결정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어느정도의 몸에대한 소유권과 나에 대한 정체성의 관념이 남아있다.
또한 우리는 우리의 몸과 다른 사람의 몸을 구별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소유의식과 통제권은 아주 제한적이다.
그것은 조건들의 관계 안에서만 가능할 뿐이다.
그리고 그 조건들 가운데 상당히 많은 조건들은 우리의 통제와 소유권의 영역 밖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몸에 대하여 온전하고 완전한 통제권을 갖고 있지 않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의 몸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의 몸은 결코 아프거나 확실히 죽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또한 이 몸의 유일하고 진정한 소유자가 아니다.
살아가는 과정동안 음식물과 음료의 형태로 밖에서 취하는 요소들을 '나의 것'이 된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곧 이 섭취물 중 일부는 대소변으로 변하여 빠져나가고, 몸에 남아 있는 것도 죽음과 마찬가지로 내가 통제하고 소유하고 있다는 생각의 영역 밖에 존재한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죽음은 우리 몸의 무상함과 공성의 의미를 분명하게 하고 있다.
언젠가는 호흡이 멈추고 이 몸이 죽을 때가 반드시 온다는 것이다.
호흡이 끊어진 시체에 대한 이미지는 숨을 쉴 때마다 이것이 마지막 호흡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데 도움이 된다.
우리는 호흡이 현재의 순간을 넘어서 계속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없다.
일단 이런 불안정성을 인식하게 되면, 우리는 호흡을 더 이상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죽음의 순간을 마주하게 될 자신을 훈련시킬 수 있다.
때로는 우리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사실이 마음에 와 닿지 않을 때도있다.
이럴때는 이 순간의 들숨과 날숨이 마지막 호흡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마음챙겨 알아차리면 된다.
때로는 마음이 동요할 수도 있다.
이때에는 날숨, 놓아버림, 긴장완화에 중점을 둔다.
이런식으로 마음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수행을 발전시켜 나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행은 십중팔구 반응을 초래한다.
일반적인 반응의 한 유형은 정신의 몽롱함과 명료성의 결여이다.
이런 때에는 죽음이라는 사실도 마음에 충격을 일으킬 수 없다.
정신적인 숙고는 빈말처럼 느끼지고 무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이럴 때에는 현재 순간에 존재하는 것에 중점을 두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이것은 수행을 자동적으로, 또는 기계적으로 타성화하는 무명의 경향성에 대응할 수 있다.
현재 순간 경험의 변하는 성품에 활짝 열리는 상태로 머무는 것은 우리가 자동조종장치 모드에서 빠져 나오도록 돕는다.
현재 순간의 취약성에 대한 알아차림은 우리가 호흡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에서 시작될 수 있다.
이 호흡이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비록 이 호흡이 마지막은 아닐지라도, 그것은 분명히 죽음에 더 가까운 하나의 호흡이다'라는 생각을 더욱 강화하는데 도움이 된다.
우리는 죽음이 언제 닥쳐 올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분명히 올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모든 호흡과 함께 우리는 명백하게 죽음의 시간에 더 가까이 가고 있다.
지금의 호흡은 '완전히 호흡이 없는'상태가 될 때까지에서
'한 호흡 더 적은' 호흡인 것이다.
죽음은 모든 인간이 태어나는 바로 그때 받는 가장 확실한 생일선물이라는 사실이 놀라울 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은 대부분의 인간들이 떨쳐내고 싶은 것이고 '죽음은 확실하다'라는
사실에 직면하는데는 용기와 노력이 필요하다.
또 하나 무명의 영향을 받는 반대 유형의 반응은
'이것은 너무 과하다. 나는 이것을 해낼 수 없다.'와 같은 두려움과 동요이다.
그런 생각이 일어날 때마다 그 생각을 즉시 내려놓고 긴장을 완화하는 것이 좋다.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자신에게 죽음의 진실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을 납득시킴으로써, 동요하는 경향을 점차 줄여 나갈 수 있다.
죽음에 대한 명상을 지속적으로 수행하면 실제로 죽음의 순간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도 상당히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평온한 마음으로 죽음에 직면하는 것을 배운다면 삶의 부침에도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평화를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평정심을 얻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자신의 죽음을 직시하는 수행을 지속하는 것이다.
미래의 어느 때에, 우리는 어쨌든 죽음에 직면하게 될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그때 어떤 조건으로 죽음을 맞이 할지 어떻게 알겠는가?
우리가 죽음을 앞에두고 불안과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을 때,
주변에는 울고 당황해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쌓여 있고,
그동안 못다한 일과 잘못한 일들이 아른거리고 불안과 걱정이 우리 마음을 내리 누를지도 모른다.
우리가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매우 힘들고 괴로운 과정이 될 것이다.
죽음을 준비할 시간은 바로 지금 여기이다.
우리가 시험보는 날에 공부를 시작할 수 없듯이, 죽음의 준비를 나중에 천천히 하겠다고 미루는 것은 현명한 생각이 아니다.
아직은 꽤 건강하고 우리가 죽는다는 사실에 조금씩 다가가고 있을 때 미리 준비하는 것이 현명하다.
죽음에 직면하는 것을 조금씩 배우면서 우리는 죽음의 기술을 훈련하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명상은 죽음을 준비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삶을 온전하게 살아가는 방식이기도 하다.
우리 자신의 죽음과 다른 사람의 죽음을 알아차리는 것은
현재의 순간이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게 해준다.
죽음에서 달아나는 대신에 자신의 죽음을 직시함으로써 우리는 점차적으로 온전한 삶을 살수있게 된다.
죽음이 삶의 일부분이 되도록 받아들이는 것은 치유의 과정이 될 수도 있다.
죽음은 삶과 분리될 수 없고 그것을 무시하면 우리는 결코 온전하게 살 수 없다.
우리가 죽음에 대해서 알아차리는 것은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과 온전하게 함께할 수 있도록 고무시킨다.
내가 먼저 죽을지 만나는 사람이 먼저 죽을지 어떻게 알겠는가?
그러므로 내가 누구를 만나든지 그들에게 온전한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현재의 순간을 가장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다.
만일 죽음이 우리를 헤어지게 만들지라도 어떤 후회도 남기지 않도록 내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여 그들과 함께 하여야 한다.
그러면 내가 말하려고 했지만 하지못한 말이나 잘못된 행동을 할 가능성이 줄어들 것이다.
더구나 내가 용서하거나 사과하려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여 후회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후회없이 살고 죽을 수 있을 것인가?
그 방법으로 혼자 걸을 때나 산책할 때 다시 이 자리에 돌아올 수 없다면 지금 당장 어떻게 해야 것인지 무었을 해야할 것인지 숙고할 수 있다.
나의 재산과, 가족, 친구, 사회에서의 역할과 기능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런 식으로 숙고하면 우리는 그것들과 영원히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되고 무었을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인지, 불필요하게 이것저것에 관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주변을 살펴보게 되고 조금씩 내려놓는 법을 배우게 될것이다.
또한 우리는 보다 쉽게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들을 용서하고 우리가 잘못한 일에는 기꺼이 사과하게 될것이다.
더구나 다른 사람들을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도록 하거나
그들에게 행동을 강요하는 경향성을 내려놓는 것도 배울 것이다.
내가 지금 죽는다 해도 그들은 그들 방식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내 방식으로 살도록 강요하지도 말고, 나에게 의존하도록 만들지도 말고,
열린 마음으로 지켜보면서 그들이 원하는 것은 도와주고 조언해 주게 될 것이다.
이런식의 숙고는 사회관계에서 나의 역할, 기능에 대한 집착을 줄여준다.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은 내가 없어도 그들의 삶을 살아갈 것이라는 이해는 남들보다 나 자신의 일에 더욱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은 무었인가?
어떤것이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일인가?
내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알게 된다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명상이 주는 변화의 힘은 좌선에서든, 일상의 활동중에서든, 숙고에 의해서든 그것에 시간을 할애하는 만큼 가치를 나타내게 될 것이다.
이런 모든 발걸음 하나하나가 우리가 불사의 깨달음에 다가가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Happy Birth Death
2018년 어느날 원효대교를 자전거로 건너다가 내가 가진 시간이 한정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 전에도 해본 적이 없는 생각은 아니지만 이날 갑자기 그 사실이 엄청 충격적으로 다가와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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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앜 죽기싫어 : 슬픈 불멸주의자
여름 밤 젊은 작가들과 강변에 앉아 있다 나온 이야기이다. 한 분이 자기는 가능하다면 영생이 하고 싶다는 말을 했는데 그러자 다른 한 분이 지친 표정으로 ' 참 신기하네. 나는 죽으면 좋을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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