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과연 자애수행을 어떤 식으로 하고 있습니까?
그냥 ‘내가 행복하기를, 내가 행복하기를’ 어디 스님들 염불 외우듯이 그냥 이렇게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요
그게 가장 경계해야 되는 것 중에 하나입니다.
쉽게 말하면 말로만, 그러니까 문구에만 매여가지고 ‘내가 괴로움이 없기를’ ‘내가 행복하기를...’ 해보았자
행복이 뭔지도 잘 모르고, 괴로움이 왔을 때 어떤 느낌이 되고 왜 괴로움이 없기를 바라는지, 하는 것들은 생각이 안 들고
그냥 말로만 ‘괴로움이 없기를, 행복하기를’ 이렇게 하면 그거는 아무것도 아니게 됩니다.
그냥 자애수행도 아니고 그것이 위빳사나도 아니고 사마타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상태로 그냥 거기에 꽉 매여 있게 됩니다.
그래서 자애 수행할 때는 똑바로, 바른 방법으로 해야 됩니다.
경전에는 그렇게 나와 있죠. 하나뿐인 자식을 애어머니가 지극정성으로 돌보듯이 자애를 수행하라.
온 마음을 다 기울여가지고 진짜 이 애가 다치지 않고 항상 행복하고 하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그 애를 돌보듯이 자애 게송도 그런 마음으로 해야 되지, 그냥 살그머니 해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래서 본인이 잘한 것들 또 행복한 것들 그런 것들을 떠올려가지고
‘아, 내가 참 이렇게 항상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괴로워하는 다른 사람들이나 아니면 자기가 괴로움을 당했던 걸 생각해가지고 ‘아, 내가 그런 괴로움은 좀 안 일어났으면 좋겠다, 정신적인 괴로움이든 육체적인 괴로움이든 그래서 마음이 항상 평온하고 고요했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행복하기를, 괴로움이 없기를’ 그렇게 하도록 해야 됩니다.
그것도 온 마음을 다 거기에 기울여서.
본인을 대상으로 할 때는 그게 잘 됩니다.
왜 그러냐하면, 자기는 자기가 더 잘 알 거 아니에요
내가 어느 때 행복했는지, 어떤 때 내가 또 괴로움이 많았는지
아니면 육체적으로 다쳐가지고 진짜 통증들이 있을 때가 언제였는지, 그런 것들을 떠올릴 수가 있는데,
문제는 다른 사람에게 할 때입니다.
같이 내내 접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사람이 뭘 가지고 행복해하는지 괴로워하는지를 잘 모르잖아요
그럼 다른 사람한테 ‘니가 괴로움이 없기를, 니가 행복하기를’ 그렇게 하는 것들이 잘 안 와닿습니다.
오히려 본인에게 할 때는 그 자애가 충만되는 느낌이 딱 들고 자애가 쫙 펼쳐지는 게 느껴지는데, 다른 대상으로 할 때는 그게 참 잘 안됩니다.
그래서 대부분 다른 대상으로 할 때 이미지화 시키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처음에 스님도 자애 수행을 할 때 누굴 떠올렸냐면 다른 사람을 할 때 스승의 미소를 떠올렸습니다.
스승의 얼굴을 보면 뭐 하면 빙긋빙긋 웃고 이렇게 계속 웃는 모습이 보였거든
그래서 스승의 미소를 탁 떠올리면서 그 사람에게 ‘아, 저와 같이 항상 당신이 미소 지으면서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괴로워하고 얼굴 찡그리는 일 없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마음을 이렇게 냈어요.
쉽게 말하면 내가 그 사람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 때문에, 다른 내가 평상시 많이 접해왔던 스승을 이미지화 시켜가지고, 그 사람에게 자애의 마음을 보내는 거라.
그런데 어떨 때는 그 마음이 탁 보내지는 것 같은 느낌도 있는데, 어떨 때는 ‘내가 뭐하고 있지?’ 할 때가 있었어요. 그거는 언제일까?
제 마음에 자애가 가득 차질 않으면 절대 다른 사람한테 보내는 것이 진실되어지지를 않는 거라.
내가 자애의 마음이 가득 차서 ‘아, 진짜 내가 이렇게 행복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 들었다, 행복해지면 그 자애의 마음이 생기면 어떤 현상들이 일어날까? 자기가 지금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만족을 하죠
그리고 그 ‘행복하기를’ 하는 게송을 하는데 그 힘이 전에 ‘행복하기를’ 했을 때하고 또 이번에 ‘행복하기를’ 했을 때의 힘이 강도가 틀린 걸 느낍니다.
(중략)
그게 이제 멧따 수행의 원칙입니다.
그러니까 그걸 잊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나보다도 사랑하는 사람이 좋고 가족이 좋고 스승이 좋고 하더라도 나만큼 사랑할 수는 없어요.
그래서 내가 먼저 자애가 가득 차도록 만드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자애의 마음이 다른 대상을 향할 때는 그 자애로운 마음이 자애의 대상이 되게 됩니다.
자애의 마음이 그 사람을 향하도록 돼야 하는 것이지, 저 사람이 대상이 돼 버리면 안 됩니다.
사람이 대상이 돼 버리면, 이 앞에 우리 이 사람이 대상이 됐다치면, ‘왜 저렇게 살이 쪘어?’ 하는 게 이미지화 될 수도 있고,
안 그러면 저 사람이 잘한 거나 못한 거나 아니면 저 사람이 나에게 했던 말들이나 이런 것들이 탁 떠오르게 될 수가 있다는 거라.
'자애의 마음' 자체가 대상이 돼서 저 사람한테 향해야 되는데, 대상이 '저 사람'이 돼버리면은 그런 잘못된 방향으로 가버리게 돼요.
그러면 마음이 어떻게 돼요? 마음이 굉장히 산만해져버립니다.
(중략)
그래서 위빳사나 수행을 할 때는 되도록이면 본인의 자애 수행을 하고 나서,
되도록이면 한 사람 정도 가장 친한 사람 아니면 가장 존경하는 분에게 자애 수행을 하고, 그리고 자애가 필요한 사람에게 마음이 향하도록 하는 것,
이 순서를 밟아가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마지막에는 반드시 모든 생명들에게 자애를 보내도록 그렇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게 위빳사나 수행자들이 일반적으로 하는 방법입니다.
(중략)
자애수행을 계속하면, ‘내가 행복하기를, 진짜 정말 행복했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마음을 계속적으로 가지다 보면 자기가 행복하지 않은 것은 안 하려고 그래요.
쉽게 말하면 감각적인 쾌락에 빠지는 것들,
술 마시고 어디 뭐 음악 듣고 놀러 가고 하는 거, 별로 관심이 없어져 버려요
감각적인 욕망들이 점점 버려지다 보면 성내는 것도 ‘아휴, 그거 뭐 별것 아닌데’ 하면서 성내는 것도 점점 줄어들고,
욕심부리는 것도 ‘그래 뭐 니가 하고 싶으면 그냥 가져가’ 욕심부리는 것도 줄어들고,
그게 점점 줄어들면서 나중에는 완전히 그게 탁 사라지는 게 보입니다. 그게 불환과까지 이르게 됩니다.
(중략)
자기 자신을 가장 자애롭게 만들도록 먼저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출처: https://cafe.naver.com/f-e/cafes/30737456/articles/8520?referrerAllArticles=true&page=2
자애 수행을 할 때 문제되는 부분들(2026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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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최초로 삼장법사가 되신 ( 경/율/론을 통달한 불교계의 고시3관왕 ) 아짠 빤냐와로 스님의 법문인데 방구석에서 들을 수 있다니 감사한 일
멧따 수행 할때 주변의 존경하고 좋아하는 사람들 웃는 얼굴 떠올리는 건 나도 자주 써먹는 방법. 쉽고 자연스러움
그리고 멧따수행에서 또 유의해야 할 점 중 하나는 타인을 떠올릴 때 알게된지 얼마 안 된 이성을 처음부터 떠올리는 것을 삼가라고 함. 왜냐면 마음의 성격이 변질되기가 쉽기 때문에.. 이게 상대의 평화를 비는건지 상대를 욕망하는건지 아리까리해지기 쉽다고
그리고 일종의 방사이기 때문에 몸이 아프거나 기분이 좋지 못할 때도 하지 말라고함
https://digthehole.tistory.com/431070
자애명상 하는 법
우리 전통에서는 위빳사나 한 시간 후 말미에 메따(자애)명상을 5분 더 하는데 이게 은근 귀찮아서 초기엔 자주 스킵했었음 자애를 보내는 대상에서 날 제외해서 그랬던 거 같고자
digthehole.com
 진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