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에요

목장노동기 오아마루 Oamaru 2012/3

유 진 정 2013. 7. 10. 05:03

 

 

 

 

크라이스트 처치에 머문지도 벌써 4개월. 제잌과 나는 자가용을 구입후 좀더 한적한 곳으로 떠나기로 결정했다. 

나는 기후가 따듯한 북부 넬슨을 제안했지만 제잌은 뉴질랜드 목장에서 일을 하고 싶어했고 이미 목장관리인에게 편지를 보내놓은 상태. 그리고 관리인이 우리를 고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 일자리와 주거지가 보장된 상황였으므로 우리는 결국 남섬의 보다 남쪽(뉴질랜드는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추워진다) 오아마루로 향했음. 

 

이 시기를 전후하여 나는 가고싶은곳을 내맘대로 정할수 없다는 사실에 슬슬 불만이 쌓여가고 있었는데 그것은 제잌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생각 한다. 오아마루에서의 목장일이 끝날즈음 우리의 관계도 끝장이 났다. 

 

목장에서의 일은 흥미로웠지만 상당한 체력을 요하는 것이였다. 

일은 새벽 4시에 시작하여 9시즘끝나고

오후 4시쯤 다시 쉐드로 돌아가 밤이 될때까지 같은 일을 하는 것이여서 수면시간 조절에 애를 먹었음

한 일주일 하고 나니 왜 크라이스트 처치에 있는 백팩커에게 까지 일자리가 돌아왔는지 이해가 갔다.

 

목장의 관리인은 존과 클레어라고 하는 영국출신의 부부였는데 둘의 사이는 당시 제잌과 나만큼이나 위태로와 보였다

 

엠마와 클레어의 조카 캣, 빨간머리 던컨, 트렉터 드라이버 제임스는 우리의 컬리였는데 모두 캐릭터가 강해서 지켜보고 있으면 참 재미가 있었다. 

 

 

엠마는 키가 제잌만큼이나 컸고(한 백구십 정도 되지 않았나 싶음)  얼굴은 엘비스프레슬리를 조금 닮았으면서도 예뻤다. 가슴도 컸다.

제잌이 엠마를 처음봤을때 그녀는 소똥이 가득한 우리에 맨발로 서서 금발을 휘날리고 있었다고 한다. 

시급이 아닌 연봉을 받고 일하는 열아홉살 엠마는 가끔 나와 조가 되었을때 농땡이를 피우곤 했기때문에 나는 하루 날잡아 지랄을 해야했다. ( 둘이서 젖짤때 한명이 설렁설렁하면 남은 한명은 죽어나기 때문에 )

가끔 눈이 완전 풀려서 일하러 오곤 했는데 제잌과 나는 엠마가 무슨약을 하는지 항상 궁금해 하곤했다. 

엠마의 남자친구는 우리보다 어렸지만 애가 셋이 있는 이혼남이였는데 걔를 볼때마다 나는 엠마가 백배쯤 아깝다고 생각했다. 

엠마는 젖소를 무척 좋아했고 자기 소유의 '몰리'라는 예쁜 소도 한마리 가지고 있었다.

엠마는 어려서 부터 기골이 장대하여 가끔 동네 장사하는 친구들 집 가드를 봐주기도 했다고 한다.

엠마는 힘도 엄청쎄서 소방호스를 방불케하는 청소용 호스를 번쩍번쩍 잘도 들어올렸다 (반면에 난 청소할때마다 죽을 맛이였음. 호스의 수압이 세지면 나는 뒤로 날아가고 바닥에 팽개쳐진 호스가 성난 용처럼 꿈틀대며 모두를 홀딱 젖게 만들곤 했다 ) 

엠마는 파티에서 자기를 강간하려고 했던 남자를 제대로 두들겨 팬적이 있다고 했다. 

엠마는 소들이 말을 잘안들을때면 씩씩대며 소의 얼굴에다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고는 했지만 결코 소를 때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영국에서 축산학과를 나온 캣은 다부진 몸집에 딱부러지는 인상의 여성이였는데

잔소리는 제일 많이 했지만 제잌과 다투고 울적해 있는 나를 위로해줄때는 정말 언니 같아 보였다.

캣은 나에게 손이 빠르다며 칭찬을 해주었지만 그후로 일할때마다 밀킹머신 속도를 열라 올려서 함께 일하는 날은 늘 녹초가 되었다. 

캣은 농장에서 가장 품위가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또한 내가 모르는 어휘를 자주 구사하는 인물이기도했음

 

 

 

던컨은 반고흐의 초상화를 실물로 만들어 놓은 듯한 빨간수염을 가진 아일랜드인이였다.

평소에는 고독해 보이는 인상의 조용하고 상냥한 사람이였지만 

소들이 말을 못알아 들으면(소니까) 쌍욕을 하며 옆구리에 주먹을 날리곤 했다. 

너무 놀라서 꼭 그래야 되는거냐고 물어보자 머리를 긁적이며 뭐 꼭 필요해서 이러는것은 아니라고 대답하던 던컨.

제잌은 너때문에 유진이 베지테리언이되면 나도 풀만 먹고 살아야 한다고 말했고

그날 이후부터 그는 우리 앞에서는 소들을 때리지 않았다. 

던컨을 사실 이 목장자체를 좋아하지 않았던 모양으로 다른 지방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말한 이후 부터는 소들에게 상냥하게 대해 주었다. 던컨은 소나 농장의 기계 다루는 솜씨가 좋아서 같이 일하면 열라 편했다. 제잌과 나의 선호도 1위 컬리였음.

 

 

 

젊은 트렉터 드라이버 제임스는 금발의 고수머리, 황갈색눈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신을 마오리 족이라고 소개했다. 

어머니가 마오리, 아버지가 스코틀랜드 출신이라고.

존과 클레어는 제임스를 신뢰했으나 제임스가 마오리 혈통을 밝힌 이후부터는 예전처럼 그를 대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 이유를 물어보는 우리에게 뭔 당연한걸 물어보냐 그건 계네가 시발 레이시스트니까. 라고  대답하면서도 그닥 거기에 대해 신경은 쓰지 않는듯 보였다. 

제임스는 엑스박스용 게임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한동안 제잌의 좋은 동무가 되었다.

제임스는 기숙학교에 다닐때 파티에서 꼬신 여자아이와 대화중 그녀가 어린시절 헤어진 그의 쌍둥이 여동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제임스가 계랑 자기전에 그사실을 알게되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그동안 제임스가 엄마인줄 알고 살았던 사람은 사실 이모였으며 이모인줄 알고 살았던 사람이 그의 친엄마였다고.

이런이야기를 마치 날씨 이야기처럼 하던 제임스. 

성격이 유순하고 농담을 잘해서 엠마는 제임스가 쉐드에 찾아올때마다 기뻐했음.

 

 

 

아직 어린 보더콜리 제스는 목장의 일등일꾼이였다.

돈도 안받고 일하면서 제일 열심이였음.

좀더 크면 정말 좋은 개가 될것이라고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하던 엘리트 목장견 제스. 

 

 

 

반면 같은날 태어난 제스의 남동생 엘로는 천덕꾸러기였는데 

제스에 비해 덩치도 한참 작고 일도 안하는 처지이면서 목장에 따라와 난장을 피우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였다.

백미터 앞에서 우리를 향해 미친듯이 달려오는 엘로를 보는 일은 너무나 재미있었음. 

가끔 차 창문을 열어놓으면 지맘대로 들어가서 조수석 시트에 앉아있곤 했다. 

엘로는 밀킹쉐드에서 좀 떨어진 엠마의 집에서 살고있었는데 

심심하면 제스와 함께 차도를 달려 쉐드에 방문하곤 했다. 그모습은 흡사 일하러 가는 누나 치맛자락 붙들고 쫓아오는 꼬맹이와도 같았다.

 

 

 

몰리는 제스와 엘로의 어미개였다. 

한쪽 앞발이 없었는데 그것은 몰리가 쿼터바이크 앞으로 뛰어드는 버릇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제스와 엘로도 종종 우리의 차앞으로 뛰어들곤 했기 때문에 쉐드근처에는 늘 천천히 운전을 해야했다.

소를 몰러 나갈때 늘 쿼터바이크에 목장견을 태우고 가기 때문인지 이녀석들에게는 차가 '올라 타는것' 이라는 생각밖에 없는듯

 

 

 

1027번은 우리 쉐드에서 덩치가 가장 작은 젖소였다. 

늘 자신의 두배는 되어보이는 다른소들과 부대끼고 있는 1027번의 모습에 나는 내 자신을 투영하며 안타까워 했다.

( 나는 체형에 별 불만이 없지만 농장과 목장에서 일할때 만큼은 예외다 )

10월 27일은 나의 생일이기도 하다. 

 

 

 

963번은 유일하게 우리를 두려워 하지 않는 젖소였다. 가끔 제잌의 얼굴을 널름 핥기도 하였다. 

 

 

덩치는 크지만 겁이 많은 젖소들은 우리가 무리속으로 들어갈 때마다 모세가 바다를 가르듯 좌악 두무리로 갈라지곤 했는데  이것은 나에게 상당한 우울함을 안겨주었다. 

두려움에 두리번 거리는 소눈 사이를 걸을 때면 무슨 유대인 수용소안의 독일인 장교가 된 느낌이였음  

훗날 제잌도 정확하게 같은 비유를 들어 그때의 기분을 설명하였다. 

 

 

레드헛은 문제가 있는 젖소의 집단이였다. 

이 소들의 엉덩이엔 젖소 전용 컬러 스프레이로 마킹을 해두는데 각 표시별 뜻은 이러하다.

 

L 발을 다친 것들 

C 곧 죽임을 당할 늙은 소들 

R 감염으로 인해 젖이 치즈처럼 나오는 것들 (가슴에서 치즈가 나온다고 상상해보자 으으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오른쪽 왼쪽 엉덩이에 그려진 C 마크는 뒤에서 보면 마치 웃는 얼굴과도 같아서 더욱 비극적으로 보였다.

 

 

 

 

 

 

 

 

 

 

 

젖소는 끊임없이 배설을 한다. 

컬리들은 이일하다보면 언젠가 똥을 한번은 뒤집어 쓰게 된다며 주의를 줬고 그말은 곧 현실이 되었는데 

단신인 나는 보통 어깨를 더럽히던 사람들과 달리 얼굴에 소똥을 뒤집어 썼음.  

그날 옆에서 숨넘어가게 웃던 제잌의 말에 의하면 갈색의 아웃라인이 너무도 깔끔한게 무슨 머드팩을 하고 있는것 처럼 보였다고. 

 

 

밀킹은 언덕에서 풀을 뜯던 소들을 몰아오는것에서 부터 시작된다.

필드에서 쉐드까지 소가 걷는 길 옆으로는 약한 전류가 흐르는 펜스가 설치되어 있어서 소들의 이탈을 막는다.

 

우리는 이렇게 몰아온 소들을 케이지 안에 집어 넣고 문을 닫는다.

 

그리고 나서 적당한 수의 소들을 바안으로 몰아넣고 버튼을 누르면 

휘파람 소리를 내며 바가 앞으로 전진하고 소들을 그것에 떠밀려 밀킹머신위로 하나씩 올라타게 된다.

이 와중에 아주 가끔 소가 기계에 끼기도 하는데 그럴때마다 소와 나는 동시에 패닉을 일으켰다. 

 

소의 주둥이는 잘보면 미소를 짓고 있는것 같아 보인다.

 

 소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눈을 뒤집는다. 

 

가끔 맨앞의 무리들이 긴장해서 움직이지 않으면 일이 골치아파 지는데 그때는 우리가 우리안으로 들어가 박수를 치며 소들을 움직여야한다. 소들은 앞에서 다가가면 겁에 질려 달아나므로 무조건 뒤에서 살살 몰아야 한다.

하루는 이러다가 발을 밟힌적이 있었는데 무척 아팠다. 이렇게 힘센 녀석들이 이런취급을 받으며 살아야 한다니 초식동물의 삶이란 서럽다.

 

가끔은 밀킹중인 소들에게 곡물이 공급된다.

이럴때면 소들은 앞을 다투어 밀킹머신에 올라타려 한다. 그모습은 마치 바겐세일 현장의 아줌마 부대를 보는 듯 하다. 

곡물은 소가 우리 앞으로 왔을때 버튼을 일일히 눌러 수동공급해야 했는데 가끔 타이밍을 놓쳐 곡물을 공급하지 못하고 소가 돌아가 버릴때면 상당한 죄책감이 들었다.

실망한 소는 눈을 두리번 거리고 표정에는 마치 원한이 서려있는것처럼 보인다.  

이날은 동네 참새들 잔칫날이기도 하다.

 

밀킹머신은 천천히 도는 회전목마와도 같은 구조로 이것이 한바퀴 회전하는 동안 소는 젖을 모두 짜이고 출구쪽을 향하게 된다. 

 

젖을 많이 생산하기 위해서는 소들을 가임상태로 두어야 하기 때문에 새끼를 배지 않은 소들은 호르몬 주사를 맞는다.

 

젖을 짜이기 위해 좁은 케이지 안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소들의 모습  흡사 임산부들로 가득찬 만원버스를 연상시킨다.

 

이곳에서 일한 이후로 나의 소고기와 우유 소비량은 대폭 줄어들었다. 

몇주간 채식주의자로 살아도 보았지만 머리가 어질어질해지는것 같아서 관뒀음.   

 

 

 

 

 

 

 

 

 

 

 

 

 

 

 

눈치보는 엘로

 

 

 

 

 

 

 

제스

 

 

뒷모습 마저 영리해 보인다

 

 

 

 

 

양배추를 먹는 엘로와 제스

 

 

트렉터의 속도조절기

 

 

 

 

 

마을 축제에서. 구강기를 거치고 있는 듯한 송아지와 함께 

 

 

 

 

 

 

 

 

 

 

 

 

 

 

 

 

 

 

 

 

 

 

 

 

 

 

 

 

 

 

 

 

엠마가기르던 눈먼 기니피그와 토끼를 들고

 

 

긴장감이 흐르는 대치상황

 

 

 

 

 

 

이곳에서 제잌에게 장작패는법과 불피우는 법을 전수받았다. 생존스킬 하나 늘은거 같아서 좋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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