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세계에요

한병철..!

유 진 정 2023. 3. 9. 22:47

넘 멋있당

지난 주 한병철에 버닝하고 계시는 홍기하 양의 제안으로 한병철 신간출간 기념 강연회에 다녀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유잼이었다.
강연 내용도 내용인데 멋진 남자 보는게 너무 오랜만이라 좋았고 한병철이 멋있는 이유는 후술하겠음

몇 달 전 기하씨가 한병철 책도 한 권 선물해주셨는데 제목은 에로스의 종말이었고 책을 요약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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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긍정성과 매끄러움 성과주의에 미쳐있는 시대를 살아가는 중이고 
부정성이 배척되면서 타자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능력, 즉 에로스=사랑하는 힘을 잃게 되었다,

그래서 이 시대는 동일자들의 시대이고 나르시스트들의 시대이다, 
우울증도 나르시즘적 질병이고 그것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에로스가 필요한데
지금 에로스는 없고 포르노만 존재한다
포르노에 타자는 없고 단지 나의 나르시즘적 욕망과 그것을 뒤집어씌울 대상만이 존재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점점 우울해지고
우울하고 고독하니까 디지털 미디어등을 이용해서 타자를 최대한 가까이 끌어오려고 하는데

그렇게 자꾸 타자와의 거리를 무리하게 막 파괴하려고 해버리니까 오히려 타자에게서 아무 것도 얻지 못하게 됨
(틴더나 SNS중독, 연락충들 생각해보면 이해가 쉬움)

무데기로 몰려오는 정보들은 세계의 엔트로피, 소음 수위를 엄청나게 높여버린다 
사유는 고요함을 필요로 하는데 저 소음들 때문에 사유가 불가능해지고
현대인들은 죄다 정신적 공황상태에 처해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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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이런 내용
모든 주장에 공감했고 그래서 사실 막 감긴 눈이 떠지는 느낌 같은 건 별로 없었음 

나처럼 시간많고 쓸데없는 생각 많이 하는 인간들은 은연중에 짐작하고 있을 법한 내용들임
근데 그걸 너무 유려한 문장으로 정리해 두었고 그래 그거지!! 싶은 예시들을 귀신같이 잘 찾아내 
적어둔 책이라 읽으면서 쾌감이 있음

몇년 전 이케아에 처음 갔을 때 가구들이 핥아보고 싶게 생겼다는 생각을 했고
아이폰을 처음 가졌을 때도 입에 넣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는데 그래서 저 <매끄러움>이라는 표현으로
자본주의와 소비문화를 묘사한 부분은 정말 기가 맥히다고 생각했음..

아무튼 강연에서 기억나는 장면들을 까먹기 전에 적어두겠음

 

 - 정보사회는 손가락만 쓰고 손을 쓰지 못하게 만드는데 행복은 손으로 온다. 행복해지고 싶으면 손을 써야 한다
(본인은 그래서 정원을 가꾸고 피아노를 치신다고) 

- 사람들이 자꾸 나를 비관주의자라고 하는데 아니다, 철학은 구원에 대한 동경이다. 나는 휘망을 가지고 있다
(모친과 통화할 때를 제외하고 오랫동안 한국말을 쓰지 않았다는 그는 희망을 계속 휘망이라고 발음했는데 그게 꽤 좋게 들렸다. 희망보다 힘있게 들렸음)

- 요새 한국 취업난이 문제이고 대학생들이 정말 하고 싶은 일보다 현실적인 목표에 맞춰 진로를 결정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러지 말고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해라. 나 독일에서 너무 가난해서 길에서 주워온 드러운 매트리스, 그 위에서 십년 동안 살았다. 난방도 안돼서 방안 온도 10도였다, 그래도 행복했다. 하고 싶은 거 하고 있으니까.
이제 교수 되어서 15평,20평(이 말할 때 정말 귀엽게 웃음)되는 아파트에서 산다.  

(이런 말 하는 사람 너무 오랜만이라 신선했음. 하면 욕 처먹으니까 아무도 안함. 근데 요즘은 나도 저렇게 생각함. 왜냐면 이상을 추구할 수 있는 환경을 가지고서도 용기가 없어 자꾸 현실과 타협하다보면 인간이 작아지는 거 같음. 그리고 한국은 이제 굶어죽는게 어려운 사회가 되었기 때문에 정말로 하고 싶은게 있으면 하고, 하다 망하면 그냥 좀 험한 일 하면서 아껴 살면 되는 거 아닌가 싶음. 근데 별개로 한병철이 겪었던 가난이 찐가난이라는 생각은 안듬)  

 - 저 멋있죠? 제가 멋있는 이유가 뭔지 알아요? 자유롭기 때문이에요 (중년의 남성 독자가 참 매력있으시다는 말을 하자)

- 제가 힘이 있는 이유는 놀아서 그래요. 대학 밖에서 많이 놀아서 지금까지 힘이 있어요 

- 독일 철학교수들 철학자가 아니고 공무원이에요 공무원들이랑 같이 있으면 "죽어요" 

- 독일은 인종차별이 심해서 미국에서 흑인이 대통령되는 거 보다 독일에서 동양인이 교수되는게 더 힘들다 그런 말이 있었었어요 근데 지금 학장은 용기가 있는 사람이어서 내가 공개강의하는 거 딱 한 번 보고 교수자리 줌 ^^ 

- 정보 속에 내제된 가속의 강박

 

 

 

 

 

 

 

강연 다 듣고 나니 아주 용기가 샘솟았고 나와서 핑크플로이드 음감회를 갔는데 
눈감고 노래 한참 듣다가 갑자기 옆에 한병철이 있는 거 같아서 흐헉!하고 눈을 뜸. 미친 존재감

나중에 기하씨랑 저런 남자랑 사귈수 있냐 없냐 그런 얘기도 했는데
한 두번 만나는 건 좋은데 사귀면 싫을거 같다, 결혼하면 지옥같을 거 같다, 마누라는 어떤 사람일까  
하다가 역시 여자들 비슷한 감상 느끼는게 뭔가 웃기다고 생각했음
한병철 진짜 멋있는데 광인과 정상인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있는 느낌이라 무서움 

한병철 멋있단 이야기를 나중에 독순언니한테 하니까 아 그래서.. 라고 하더니
철학 전공한 자기 친구가 대학생때 교수랑 결혼할 거라고 가진 거 다 팔고 잠적해서 여지껏 연락이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길래 용기와 에로스에 대하여 복기해봄

난 사실 이성을 사랑한다는 건 남성에게만 허용된 행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하는데
기분 내키면 여기에 대해서도 언제 적어보도록 하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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