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세계

엄마 데리고 담마 코리아 봉사 다녀온 후기

유 진 정 2023. 6. 4. 16:24

 

 

 
좀 전에 집에 돌아와 빨래돌리는 중에 쓴다. 좀 있으면 안 쓰고 싶어질 것 같아서..

이번 봉사는 육체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빡셌다. 왜냐면 봉사자로 코스에 갔고 모친을 모시고 갔기 때문에
참고로 모종의 사태로 인해 최근 반년 동안 모친의 번호를 차단해 둔 상태였다.

몇 달 전 일련의 화해과정을 거친 뒤 연세도 그렇고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못 오게 되실 수도 있을 것 같아
모친의 시팅 (일반적인 10일 명상 코스)과 나의 봉사 (시팅 중인 학생들을 위해 노동하는 코스) 신청을 후다닥 했다.
대기자로 떴지만 취소자가 발생해 다행히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사실 2017년 첫 시팅을 마친 뒤 모친이야말로 여기에 와야 한다고 생각해서 권유를 했고
본인도 긍정적 반응을 보였는데 신청할 때마다 일이 터져서 이번 생엔 글렀나 하고 있는데 드디어..!

확정 메일을 받은 후 모친이 다니는 대학병원을 찾아 의사소견서를 받는 등
이런저런 준비를 끝낸 뒤 악몽을 수차례 꿨다.

명상원에 입소한 엄마가 금쪽이처럼 난리를 치고 내가 존경하는 선생님들도 그것을 말리지 못해 당황하는 내용이었다.
사실 그런 짓까지 할 사람은 아닌데 꿈이 일종의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여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종의 심리적 대비를 시키는 것 같았달까
 

담마코리아는 나의 생추어리 같은 장소이다.
세상의 이상함과 잠시 거리를 둘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라고 느낀다. 

물론 명상원에도 이상한 사람들은 있지만 (어쩌면 바깥보다 더 많을 수 있음) 그들도 분위기에 압도되어 절제를 하고,
무엇보다 선생님과 코스 관리자들의 판단력에 신뢰가 있기 때문에 마음이 편한 곳이다.
그런데 이제 그런 장소에 나의 심리적 발작 버튼인 가족이 온다면..

그러나 엄마는 꼭 한번 데리고 가고 싶었다.
세간의 눈으로 봤을때 엄마도 꽤 이상한 사람일 수 있지만
그 이상한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을 나는 평생 옆에서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엄마는 너무 많이 고통받아왔고 그 결과 다량의 신경안정제와 불면증 치료제를 복용하게 되었다. 
아무튼 길고 긴 12일을 보내고 온 지금 떠오르는 단상들을 정리해 본다.
 

- 엄마는 첫날 법문을 안 들으면 안되겠냐, 기독교인(최근 새로운 고난을 겪고 신실해짐)으로써 가치관이 충돌하는 것 같다. (정확히는 두 영혼이 충돌하는 느낌이라고 표현) 라는 요구를 선생님께 한 것 외에는 돌발행동을 하지 않았고 성실하게 코스에 임함

- 엄마의 돌발 행동을 우려하는 내 모습은 엄마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순전히 나의 에고에 의한 것이라는 걸 깨달음.
사람들이 돌발 행동하는 엄마를 둔 내 모습을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아상, 즉 나의 이미지에 대한 걱정이었음.
이걸 깨달으니 약간 내려놓을 수 있게 됨

- 코스 중엔 묵언을 하고 가족끼리도 절대 아는척을 하지 못하게 함.
최근 알게된 뉴욕 도반도 모친을 코스에 데리고 가서 봉사를 했는데
복도에서 자신을 본 엄마가 큰 소리로 이름을 부르며 손을 흔드는 바람에 정신적 위기가 왔었다는 말을 함.
하지만 모친은 이 룰을 끝까지 지켰음

- 마지막 날 묵언 해제 후 담마홀을 나가면서 엄마를 쳐다봤는데 웃음이 터졌음.
모친도 만면에 미소를 띄웠는데 이건 좀 기억에 남을것 같음. 근 십년간 처음 보는 좋은 표정

- 그 후 바로 사람들에 대한 험담을 시작함.
쟤는 왜 저렇게 뚱뚱하냐, 나보고 문 소리 내지 말라고 뭐라 그런 여자 좀 이상한 거 같다. 이상한 옷에 신발도 이상하다 등등 
사실 이게 내가 가장 두려워하던 상황이었는데 10일동안 열심히 수행을 한 뒤에도 모친이 톡식한 모습을 보이는 순간 내 마음 속 뭐가 하나 확 죽어버릴 거 같다는 생각을 했음

물론 10일 꼴랑 명상하고 사람이 바뀌기를 기대하는 것 또한 비현실적이지만 그래도, 그래도!
십일만에 처음 하는 대화인데!!!

 

하지만 이 또한 나의 기대고 나의 집착이라는 사실을 떠올림

솔직히 나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도 묵언 해제되면 신나서 실언 겁나 많이 함
아무튼 정언, 정언해야 한다고 (센터 안에서는 비방 등의 남을 해치고 자신을 해치는 말이 금지됨) 했더니 알겠다고 하심

- 오는 길 젊고 아름다운 부부께서 카풀을 해주셨는데 차 안에서 엄마가 갑자기 송혜교 싱가폴 중국 부자들한테 스폰받아서 이혼한거라는 말해서 또 상카라(마음의 습관) 끓어오름

- 오기 전 도반들이랑 우리 집에서 영화를 봤는데 한 분이 어떤 철학자가
<자신의 수행 정도를 파악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부모를 지켜보기가 있다>
라는 말을 했다고 알려주셨는데 ㄹㅇㅍㅌ ㅂㅂㅂㄱ 나 지금 좀 손이 떨리고 십년 정도 늙은 기분

- 이제는 모친이 환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 것 같음
어쨌든 나는 상태가 나빠지기 전의 모친에게 양육되었기 때문에 예전의 이미지로 모친을 기억하는 부분이 많은데,
그래서 기대가 있고 더 힘든 것 같음. 확실히 거리가 먼 사람들이 엄마를 더 관대하게 봐줌.

모친을 만나거나 이야기를 전해들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사람이 정말 솔직하다! 라고 평하는데
나도 그걸 잘 알고 그 점에 매력을 느끼고 있지만 어떨 땐 그 솔직함이 폭력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단 말이야

- 신경안정제 무섭다. 사람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
자살하지 말라고 주는거긴 한데 이렇게까지 인간의 의식을 흐리게 만드는 것은..



- 예전에 심리상담 하는 분께서 <그렇지만 유진씨의 부모님은 유진씨의 심리적 지지기반이 되어준 적이 없잖아요> 라는 말을 하신 적이 있는데 그 말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부모가 지지기반이 되어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부모에게 심리적으로 기댈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너무 충격적이었음
지지기반 같은 건 기대해본 적도 없고 그냥 날 제발 내버려 두란 말이야 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거 같음
덕분에 심리검사 같은 거 하면 항상 독립성은 그래프를 뚫고 나가기 때문에 이것은 긍정적 효과

그리고 뭐 아기 때는 지지기반 잘 되어주셨지.. 울면 안아주고 먹여주고.. 최선을 다해 길러주신 모친이었다고 기억됨

아무래도 지능이 발달하면서 부터 역기능 가족이 되어버린 거 같은데
그래서 가끔은 사고를 졸라 쳤으면 관계의 역학이 좀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도 있다. 

- 주방일은 빡셌지만 재밌었고 한국말 못하는 분이 한 분 계셔서 통역하면서 일하는게 좀 힘들었다.
게다가 이분이 너무 해맑고 맘씨가 고운 부잣집 마나님이라 친절한 말투로 일거리를 왕창 늘려주셔서.. (하지만 정말 많은 사람에게 기쁨을 주심)

주방 매니저 분은 일을 너무 잘 하시고 호쾌하시길래 주방장 출신인가보다 했는데 엔지니어로 평생 사셨다고 하길래 웃겼음. 젊을 때 학생운동하다 독방에서 2년 가까이 계셨다는데 아직도 가끔 거기 돌아가는 악몽을 꾸신다고

그리고 진짜 봉사는 시팅과 별개로 하나의 독자적인 코스라는 생각을 함. 왜 에고를 죽이는 과정이라는 건지 알겠음 

일단 움파룸파처럼 자신을 숨기며 학생들을 모셔야 하고, 바쁘고 지친 상황에서 못난 생각을 하는 자신을 끊임없이 돌아보게 됨 


- 예전엔 봉사 끝나면 학생들 앞에서 소감이랑 봉사의 장점 얘기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개버릇 남 못준다고 그날 입 털 생각을 첫날부터 함. 이 말 해야지 저 말 꼭 해야지 머릿속으로 시뮬을 몇번이나 돌렸는데 몇 코스 전부터 그거 없어졌다는 말을 마지막 날 듣고 스스로가 너무 웃겨서 폭소함


 
아무튼 오버올, 모친은 순한 아이처럼 수행을 잘 마쳤고,
죽기 전에 다시 올 일이 있을까 싶다, 라는 발언을 하긴 했지만
최근 몇 년간 각인되어 있다시피 했던 이마의 내천자가 잠시나마 사라졌었음

사람들이 모두 네살 아이를 대하듯이 과잉친절모드로 엄마를 대했는데 약간 킹받으면서도 고마운 부분 

앞으로 모친의 상태나 우리의 관계가 어떻게 될 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인생의 숙제를 하나 해치운 기분이라 기쁨
모친을 비롯한 모든 존재들의 고통이 줄어들어 세상이 조금 더 평화로워지기를 진심으로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