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이에요

쥐 = 유해조수

유 진 정 2021. 7. 13. 01:04
when 쥐 was young





아침에 침실에서 지린내가 나길래 더블침대를 들어냈다.
침대와 벽사이 공간에 쥐들이 종종 들어가 있는데, 안에서 뭘하는지 짐작도 안갈정도로 조용히 있다가 밥먹으러 기어나온다.

침대를 치우니 역시나 바닥에 말라붙은 오줌 자국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머리카락도 많이 나왔고, 쥐들이 발기발기 찢어놓은 휴지와 잃어버린 연고, 참빗도 하나 나왔다.
찝찝한 유기물들을 모두 식초로 닦아내고 향을 하나 피운 뒤 쥐들의 진입 통로는 골판지와 박스테잎으로 막아버렸다.

오후에는 가로쥐 피검사를 하러 병원에 갔다.
피를 뽑아 기계에 돌려 원심분리한 뒤 여러 상태를 측정할 수 있다고 한다.
일전에 엄마를 만났을때 쥐 병원비는 얼마나 드냐고 묻길래 오륙만원 정도 드는거 같다 라고 대답했다.
아저씨에게 얘 좀 보세요 쥐새끼 병원비로 오만원을 쓴대! 라고 외치는 엄마를 보고 사실 그 열 배를 지출했다는건 말하지 않기로 했다. 엄마는 내가 코트사려고 쟁여둔 돈으로 쥐를 데려왔을때부터 쥐를 싫어했다.

쥐는 술도 안 먹는데 간수치가 높게나와서 원래 먹던 약에 간약을 추가로 타왔다.
병원 두 군데를 왕복하며 이런저런 검사를 했지만 결국 정확한 병명은 밝혀지지 않았다. 설치류계의 닥터 하우스가 필요한 시점이다. 선생님은 가로쥐를 들여다보며 가로쥐.. 미스테리야.. 라고 혼잣말을 하셨다.
래트 포럼의 의견들은 저희 쥐도 그러다 곧 죽었어요가 대부분이다.
어쨌든 약을 먹는 동안은 컨디션을 어느정도 유지한다. 가는 날까지 너무 큰 고통은 받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저번 주엔 고비가 와서 이제 정말 죽는구나 하고 제일 좋아하는 장소인 침대에서 쉬게 했는데 꼬북칩을 뜯었더니 그야말로 눈을 번쩍 뜨고 기어왔다. 이런거 보면 또 살 것 같기도 하고

돌아와서 쥐장을 치우고 약 먹이면서 생각해봤는데, 쥐들은 존재 자체가 민폐다.
주인으로 하여금 시간적 경제적 그리고 특히 감정적 리소스를 왕창 소모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밉지 않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아까는 검사 끝난 뒤 마취가 덜 풀려 몸을 못가누면서도 부득불 기어와 무릎에 척 달라붙더니 바로 잠들어 버렸다. 어쩌면 이럴까?

쥐들이 새끼이던 시절 구충제 타러 병원 갔을때 애기 이름이 뭔가요 라는 질문을 듣고 약간 거부감을 느꼈었는데
쥐들이 나의 대체자식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옆집 애기엄마가 애한테 하는 말들을 잘 들어보니까 내가 쥐한테 하는 말이랑 별반 다를게 없다. (안돼/귀여워/밥먹자/잘했어/어이구그랬어요/미안해/괜찮아)

아무튼 쥐들이 가고나면 동물은 안 기를 것이다. 풀때기가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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