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야마 겐지와 취집

유 진 정 2021. 8. 18. 01:05
 

마루야마 겐지의 에세이집 ' 인생따위 엿이나 먹어라 ' 를 읽고있다.
이 아저씨 너무 직진만 한다. 그래서 아주 재밌다.
성장기때 읽었으면 상당히 경도되었을 것이다. 지금은 좀 걸러서 읽게된다. 어쨌든 개인의 주관이니까

주제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의존성을 버리고 자립하라! 이다.
그리고 자립을 위해 부모, 국가, 종교를 버리고 회사를 때려친 뒤 자영업자가 되어 삶과 치열하게 맞서라고 겐지는 설파한다.
부모의 그늘에서 사는 건 진정한 인생이 아니니 가출하라는 대목을 읽다가 작년 겨울에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요양 겸 해서 당시 만나던 A의 집으로 내려가 한달동안 살았는데, 대충 이런 일과가 반복되었다.


9-11시 사이에 A가 살금살금 일어나 출근
나는 3-4시쯤 일어나서 침대에서 폰질
5시쯤 퇴근한다고 전화옴 외식할지 뭐 사올지 같이 장보러 갈지 결정. 집에 재료가 있으면 내가 뭐 만듬
어서 오세용~ 하고 A 식고나오면 티비 틀어놓고 앞에 앉아서 같이 밥먹음
과일 하나 깎아먹고 산책
컴터방에서 둘다 일하거나 일하는 척 하면서 놈
넷플하나때림
2-3시쯤 A가 자고 나는 놀다가 아침에 잠
주말엔 술먹거나 차타고 놀러다님


그러던 어느날 설겆이를 하던 나는 이 생활이 상당히 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전에는 취집하고 싶다는 말을 들으면 아니 대체 왜 한번뿐인 소중한 삶을 남 뒤치닥거리 하는데 쓰나? 라고 생각했는데
아 이래서... 라는 생각이 들면서 죽은 눈을 한 60대 아줌마가 되어 내 인생은 뭐였나 쓸쓸하게 읊조리는 스스로의 모습이 떠올랐다.
안주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고 진정으로 원하는걸 추구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겐지가 책속에서 지겨울만큼 되풀이하여 전달하는 메시지도 그것이었는데, 읽다 보니 작가의 삶이 궁금해져 검색을 해보았다.
썪어빠진 문단과 연을 끊고 시골집에 살며 매일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쓴다고 한다. 바깥일과 생계는 일절 본인이 책임지고 집안일은 부인이 다 한다고

매우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사람으로 보였는데 그럼 부인은? 이라는 의문이 들었다.
책의 내용으로 추정컨데 겐지의 세계관 안에선 자아실현의 욕구가 없거나 생계를 타인에게 의탁하는 사람은 폐급으로 취급되고 있다.

좀 더 정보를 찾아보니 부인은 겐지가 회사에 다닐때 옆자리 직원이었고 겐지가 쓴 소설을 읽어주던 것이 계기가 되어 연인관계로 발전했다고 한다.

창작을 하며 양육까지 하기는 벅차다고 느껴 합의에 의해 자식을 가지지 않기로 했고, 겐지의 고향에 내려가 살기로 한게 지금의 집이라는데
왠지 합의라고는 하지만 죄다 겐지 위주로 삶이 돌아가는 것 같이 보였다.

물론 부인의 생각은 내가 알 길이 없고, 문호를 보조하는 삶에 만족하는 사람일 수도 있는데
이런 글을 쓰며 그런 부인을 바라보는 겐지의 시각이 너무 궁금하다. 사랑으로 다 카바치는 것인가? 부부관계란 정말 미스테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