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되어야 하나?
전철 안에서 노선표를 보다 고개를 드니 지적인 차림새의 흑인청년 다섯명과 난쟁이 아저씨가 나를 빙 둘러싸고 서 있었다.
잠깐 꿈인가 싶었는데 아니었고 다음 정거장에선 둘 다 나보다 십 센티 쯤 작은 태국 커플이 타더니 서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빨간 모자와 장갑을 끼고 예쁜 책을 손에 든 노년의 남성도 올라탔다. 책의 커버가 몰스킨 스타일로 특이했고 페이지 하단에 컬러로 된 명화가 프린트 되어있었다.
며칠 전 걸어가다 왜 다양성은 존중되어야 하는가 라는 문장이 갑자기 떠올랐다.
너무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어서인지 막상 누가 왜? 왜 다양성이 존중되어야 하는데? 라고 물으면 선뜻 대답이 안 튀어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장모군은 뉴욕에 갔을때 감격했다고 했다. 존재 자체가 온전히 받아들여 질 것 같다는 바이브가 도시 전체에서 느껴져서 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헤이하치 스타일로 머리를 깎은 아웃사이더 아티스트도 같은 말을 했다.
보수적인 미국 남부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뉴욕에 방문했을때 바로 여기서 살아야겠다고 결심한 뒤 이주했다고 했다.
모두 같은 표정을 짓는 북한 어린이 기예단이나 같은 구호를 외치며 걸어가는 시위대, 군인들을 보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부터 거부감이 올라온다.
오늘 전철에서는 별 이유없이 기분이 좋았다.
흑인청년들이 알수없는 언어로 서로 나직히 얘기하는데 관짝소년단 bgm이 들려오는 것 같았고 간만에 듣는 태국말도 반가웠다.
질문의 답을 어렴풋이 찾은 느낌이었다. 다양성이 존중되면 재미가 생긴다. 개인의 자유도가 상승한다.
내가 블로그에 주구장창 쓰고 있는 뭐 해라말아라 류 정신고문의 완화가 이루어진다. ( 획일적 기준을 적용하기 전에 한 단계 더 생각하게 되니까. 실제로 내가 만난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외국인에게 더 관대한 사회적 기준을 적용하는 경향이 있었음 )
결과적으로 문화적 성숙이 이루어 진다는 소리다.
이렇게 생각하면 PC주의도 일견 이해가 가는데 문제는 다양성을 존중하자는 주장을 하면서 오히려 소수의 의견을 짓밟아버리는 집단적,폭력적 경향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얼마나 무서운 단어인가 Political correctness 라니 공산국가의 교정시설에나 쓸 법한 어휘다.
PC주의자들이 대표적으로 내세우는 과체중 여성, 흑인, 성소수자 등의 이미지에서도 일종의 획일성을 느낀다.
하지만 어떤 좋은 것으로 향하고자 하는 의지도 그 안에 있을 것이라 믿고, 성숙을 위한 하나의 단계라고 생각하면 이제 화가 나지는 않는다. 다만 경계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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