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용 : 합창을 위한 모임

유 진 정 2024. 11. 15. 19:45

저번 주 옵신페스티벌 연계 워크샵에 다녀왔다. 꽤 충격적인 경험이었기 때문에 기록해둔다. 


김보용 ‹합창을 위한 모임› 
Kim Boyong ‹Gathering for a Choir›
2024. 11. 17(일)

https://booking.naver.com/booking/12/bizes/769695?tab=details

 

혹시 이번 주 가시는 분이 있다면 일단 이건 읽지 마시고
나도 뭐 하는지 잘 모르고 가서 더 좋았던 거 같기 때문에

 

 

 

 

 

 

 

 

길을 잘못 들어서 좀 허둥대며 장소에 진입하니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는 낯선사람들이 보였다.
해가 잘 드는 연습실 구석에 팔에 깁스를 한 남자 분이 

이런 느낌으로 누워 있었다. 내 옆의 여자분은

 

이런 느낌으로 요가 동작을 하고 있었다. 

 

 

진행자가 몸을 풀라고 하길래 격렬한 동작이 있냐고 물어보니
그건 아닌데 스트레칭 하면 편해지잖아요 라는 대답이 돌아오길래 일단 함 

그 후에는 원을 그리고 앉았다. 보이지 않는 공이 있다고 상상하고 그 공을 든 사람이 현재 상태에 대한
statement를 발표하고 옆으로 투명공을 패스하는 방식이었다. 
주의점은 타인에 대해 말할 때 판단 내리지 않고, 그러니까 당신은 이런 거 같습니다, 가 아닌 나는 당신이 이렇다고 느낍니다. 이런 식으로 발표를 하라고 함. 하지만 남에 대해 이야기한 사람은 없었음

나는 다섯 번째로 발표했는데 ' 저는 지금 남이 말하는 걸 들으면서 내 차례가 오면 무슨 말을 해야지, 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지루한 말을 해서는 안된다는 걱정을 했습니다, 땀이 나서 손바닥이 반짝거릴 정도로 긴장한 상태입니다 ' 라고 함
과거나 미래시제를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실패

그러고 난 다음엔 이런저런 목소리를 내는 법을 연습했다.
이게 참 간단할 거 같은데 쉽지 않길래 1차로 충격받았다. 방학내내 말 한마디도 안 하고 살다가 개학하면 목소리 안나와서 버벅대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되게 어색함. 맨날 그렇게 말을 하고 집에서 노래도 부르는데 목소리가 잘 안나온다니?
대체로 진행자가 먼저 소리를 크게 내면 다른 사람들도 용기를 내어 크게 내는 거 같다고 느꼈음

이걸 여러차례 반복한 뒤 걸어다니기도 했고 서로 눈을 보기도 하고 줄을 서기도 했다. 
그리고 한 명이 앞에 나오고, 나머지는 그를 마주보고 서서 소리를 내거나 비명을 지르는 순서가 있었다. 

첫번째로 나간 사람이 나를 지목했고 혼자 눈을 뜨고 내 앞에서 여러사람들이 눈을 감고 소리를 내는 모습을 봤는데

이게.. 너무 기억에 남는다.
아마 올 해 본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아닐까 싶은데
일단 사람들이 정말 제 각각으로 생겨먹었고 이거는 좋다 나쁘다를 판단할 수 없는 그냥 존재 그대로의 모습이구나, 를 느꼈음 (그렇게 생각한게 아니라 느낀 것이라는 게 포인트임) 

그리고 나도 다음 사람을 지목함.
눈을 마주칠 때 가장 불편해 하는 분이었고 사회와 좀 동떨어진 느낌이 뭔가 순수한 걸 보여줄 거 같아서 그분을 가르켰음. 진행자는 그 분에게 일종의 소리없는 비명을 지르도록 했는데 그 모습 역시 너무 강력해서 사진처럼 뇌리에 박힘 

 

이쯤에서 이 워크샵은 사람의 취약성을 드러내게 만드는 무서운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다.
평소에 하고 있던 무장이 다 해제되어 버리는 느낌. 물론 취약함을 드러내는 것에 저항감이 적은 사람에게는 무섭지 않을테지만 나는...  아무튼 들어와서 느낀 긴장감의 정체는 이것이었나 싶었음

후반부에는 좀 신기한 순간이 있었는데 이건 비밀로 하는게 좋을 거 같고
마지막엔 각자의 이름을 발표하고 끝냈다. 여기서 12인의 성난 사람들 생각나서 재밌었다. 

집에 가면서 중고등학교 교과과정에 이런 프로그램이 들어가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요즘의 사회는 존재를 존재로 마주할 수 있는 순간들을 점점 삭제시켜 가고 있는 느낌이다. 
쟤는 인스타 팔로워가 몇 명이야 쟤는 몇 평짜리 집에 살아 쟤는 무슨 당 지지자야 쟤는 한남이야야 쟤는 페미야 이런 거

다들 겁에 잔뜩 질린 상태로 존재의 코어로 진입하기도 전에 뭐를 덕지덕지 씌워 버리니까 세상이 점점 노잼이 되어감

물론 나도 그 편견이란게 그냥 생긴게 아니라는 거는 살아가면 갈수록 뼈저리게 깨닫고 있긴한데 (e.g. 장문카톡)
그렇다고 그 사람이랑 목소리를 교환해 보기도 전에 소통 자체를 원천 차단해버리는 건 또 다른 문제라고 생각..

아 그리고 워크샵의 여파인지 용감해져서 끝나고 들른 카페 화장실 휴지 없길래 옆칸에 대고 휴지 달라고 말했음
보통은 그냥 찝찝해 하면서 나오는데 말이 슉 나옴. 하얀 휴지를 쥔 손이 쑥 들어오는 순간 속으로 아멘을 외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