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중인이던 내가 현해탄 건너에선 인기폭발?!

유 진 정 2025. 7. 5. 18:02
 
 
(전략)
 
 
 
조선통신사의 신이 믿을 신信이었다는 걸 이날 처음 알았음

<믿음을 통하는 사절>이라는 이 명칭은 일본에 파견한 사절단에만 특별히 사용했다고 하는데
초강대국 중국과는 달리 좀 더 수평적인 교류가 가능했던 사이라 저런 예쁜 말을 쓴 모양이다.

그러다 도요토미 히데요시한테 통수맞고 빡쳐서 니들한테는 믿음이란 말 못 쓴다며 

통신사-> 회답겸쇄환사

라는 보다 무미건조한 명칭을 한동안 사용하기도 했다고
 
 
 
 
 
 
동행한 S님에게 80년대 요코하마에서 연수 받던 시절 이야기를 들으면서 왔다.

나의 외할아버지 역시 12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오래 사셨고,
주변을 보면 배우자나 애인이 일본인인 경우도 꽤 흔한데
새삼 가까운 나라라는 생각을 한다.

전시장에 입갤하며

< 붙어있는 나라들은 왜 다 서로를 못 잡아죽여 안달일까요 > 중얼거리자 S님은

< 마당을 옆집이랑 같이 써봐라 안 싸우나.. >

라는 대답을 하심
 
 
 
 
 
 
전쟁은 비용이 많이 드는 행위이다.

극심한 불황이나 야욕에 찬 지도자 같은 특수요소가 존재하지 않을 때 대부분의 사람은 평화를 유지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소통이 단절되면 오해가 증식되어 갈등의 소지가 싹트게 되는 법

그래서 조선통신사는 전쟁을 평화로 전환하는, 동아시아 정세 안정에 있어 매우 중요한 직책이었다고 한다.

조선시대를 통틀어 총 31회 통신사 행렬의 일본사행이 이루어졌었다고

 
 
 
 
 
 
지금이야 두 시간이면 도쿄 도착이 쌉가능하지만 조선시대에는 사정이 달랐다.

한양에서 부산까지 2개월이 걸리는 시대였다.
비교적 안전한 육로를 이용가능했던 중국행에 비해 일본행엔 항해라는 리스크가 존재했다.

통신사들은 부산에 도착하여
영가대를 통해 해신제까지 올리며 무사항해를 기원했고
비장한 각오로 배 6척에 올라 현해탄을 건넜다고 한다.
 

4600킬로미터
6-11개월이 걸리는 험준한 여정


이런 위험 부담때문에 일본사행은 상당히 기피되었다고 하는데
여기서 매력적인 요소가 등장

 
 
 
 
귀한 집에서 자란 사대부들은 풍랑만나 뒈짖하기 싫고 오랑캐들 상대하기도 껄끄러우니 패스

심약한 인물들은 차라리 먼 지역으로의 유배형을 택해버리고 사행길 패스

그니까 호기심이 막강하거나 똘똘하고 risk taking에 거부감이 적은,
야심찬 인물들이 모이기 좋은 구조

실제로 행렬엔 사대부 문인이 아니라 중인, 서얼 그리고 하급 관리 등이 많이 참가했고

그게 또 외교스킬적으로도 적절했을 거 같은게 난 특별해 고고해 가 장착된 엘리트 사대부들보다
좀 중도적 위치에 처해 본 인물들이 타 문화에 더 유연하게 대처할 확률이 높지 않았겠는가
특히 일본처럼 실리를 중요시 하는 무사문화권에 방문하는 경우라면

또 국서 전달이라는
 
막중한 외교임무 수행 + 문화교류
 
라는 목적에 부합하기 위해
문학적 재능이나 기예에 뛰어난 인물, 통역에 뛰어난 역관들을 뽑았다는데

조선통신사 크루 개꿀잼이었을듯

쓰다 보니까 이거 완전 시대극 소재..
 
 
 

(전문 ↓ )

https://c-straw.com/posts/6037

 

중인이던 내가 현해탄 건너에선 인기폭발?! - 서울역사박물관 조선통신사 전시

전시는 저번 주에 끝났지만 여운이 길어서 후기를 작성해봄. 너무 괜찮아서 역사 박물관 메일링도 가입함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기념하여 일본에서 귀한 것들을 많이 빌려온 전시였고 구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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