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세계

찰리커크 암살에 대한 상식적인 목소리

유 진 정 2025. 9. 16. 15:51

원문: https://samharris.substack.com/p/we-are-losing-the-information-war?r=158aau&utm_medium=ios&triedRedirect=true

 

우리는 스스로와의 정보전쟁에서 패배하고 있는 중입니다 
We Are Losing the Information War with Ourselves

by 샘 해리스
 


이번 주, 저는 시애틀과 산호세에서 " 진실과 그 결과 ” 라는 제목의 강연 투어를 시작했습니다.

무대에 오르기 전 찰리 커크의 암살 사건이 모두의 입에 오르내렸습니다.
무대 뒤에 서 있는 동안 몇몇 친구들에게서 제 보안 상황을 묻는 문자가 왔고,
어떤 가족은 아예 투어 자체를 당장 취소하라고 강하게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커크는 보수 진영에서 정치적 신동으로 불렸고, 젊은 세대 공화당원들에게 사랑받는 인물이었습니다.
저는 그를 직접 만난 적도, 그의 활동을 가까이서 지켜본 적도 없지만, 우리가 정치적으로 동맹은 아니었다는 건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의 죽음과 유족을 떠올리니 슬픔밖에는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이번 살인은 여러 이유에서 특별히 참혹한 범죄였습니다. 
대학 캠퍼스 한복판, 수천 명의 학생들 앞에서 일어났다는 점. 
그 장면이 즉시 소셜미디어에 퍼졌다는 점. 
그의 아내와 아이들이 현장에 있었다는 점. 

그리고 원인과 결과가 필연적으로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는 느낌 때문입니다. 
범인의 동기가 무엇이든, 그는 이미 불붙기 직전이던 정보적 환경에 성냥불을 집어던진 셈이었습니다.

제가 트위터 계정을 삭제한 지 거의 3년이 되었고, 그동안 대체로 소셜미디어를 무시해왔습니다. 
하지만 지난 48시간 동안 커크의 죽음에 대한 반응을 지켜보며,저는 다시 한 번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X와 틱톡 같은 플랫폼은 우리 문화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그 어떤 은유로도 이 문제의 본질을 다 담아내지 못합니다.
저는 소셜미디어를 - 위험한 심리 실험, 환각 기계, 왜곡된 거울, 디지털 하수구 - 에 비유해왔지만,
수백만 명이 온라인에서 쏟아내고 소비하는 조롱, 도덕적 상처, 망상은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매체 자체를 메시지라고 가정한다면, 그 메시지는 집단 광기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를 한 정치적 비상사태에서 또 다른 비상사태로 끊임없이 내몰 것입니다.

더 끔찍한 사실은, 이런 혼란스러운 콘텐츠 가운데 상당수가 외국의 적대 세력에 의해 제작되거나 증폭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들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세우고 돈까지 벌려주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독살하면서, 남들이 우리를 독살하도록 초대하고 있는 꼴입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 효과가 자기강화적이라는 점입니다.그 이유의 일부는 알고리즘 때문입니다.

이런 류의 플랫폼은 사용자들의 ‘ 부족적 증오심 ’을 극대화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래야 참여도가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간 뇌의 알고리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누군가(혹은 누군가처럼 보이는 사람)가 기뻐하며 살해된 이의 무덤 위에서 춤추는 것을 볼 때,
우리는 그것이 미국 사회의 중요한 일부를 대변한다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그에 걸맞은 분노를 느끼게 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가 낳은 존재입니다. 

그가 대통령이 된 것도 소셜미디어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커크의 암살에 대한 그의 대국민 연설은 정치인의 침착한 발언이라기보다 분노어린 트윗처럼 들렸습니다.
그는 미국 내 정치 폭력이 전적으로 좌파에게서만 비롯된다고 말하며, 자신의 이름을 내건 극우 테러조차 외면했습니다.

평정과 단합을 호소하기는커녕, 그는 자신의 정치적 반대파를 ‘살인 방조자’ 로 몰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불길한 것은, 연방 정부의 총부리를 머지않아 그들에게 돌리겠다는 암시였습니다.

그것은 소방관을 가장한 방화범과도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누군가는 이런 비판조차 불에 기름을 붓는 행위라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트럼프와 트럼피즘에 대한 진지한 비판은 미국의 극심한 양극화의 원인이 아닙니다.
극단적인 좌파들에 대한 진지한 비판이 양극화의 원인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일론 머스크가 X에서 2억 2천5백만 명의 팔로워들에게 “좌파는 살인의 정당”이라고 썼을 때, 
그는 정치적 현실을 묘사한 게 아니라, 현실을 심각하게 훼손한 것이었습니다. 

이어서  “ 그들이 우리를 가만두지 않는다면, 우리의 선택은 싸우거나 죽는 것뿐이다 ” 라고 적었을 때, 
그는 이미 커크의 죽음을 내전의 서막으로 여기는 극우 유명인들의 광란에 동참한 셈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그들’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정상적인 도덕 감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좌든 우든 정치적 암살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누구든 그것을 보고 공포와 슬픔을 느낍니다.
범인은 현재 구속되었고, 지금까지 공개된 정보를 보면 그는 우파가 상정한‘극좌의 괴물’과는 거리가 멉니다.
유타에서 태어나 공화당 부모 밑에서 사냥을 배우며 자란 사람입니다.
우리가 아직 그의 동기를 알지는 못하지만, 그의 행위는 어떤 대의명분보다는 자신의 정신적 컨디션을 반영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는 미국 내 정치 폭력의 빈도와 성격에 대해 스스를 속여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흔한 살인 유형이 아니며, 좌파에 의해 더 많이 벌어지는 것 또한 아닙니다.
이 나라에 ‘ 살인의 정당 ’ 따위는 없습니다. 그런 주장은 또 하나의 도덕적 공황에 불과합니다.

소셜미디어는 극단적 관점을 마치 다수의 목소리인 양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타인이 실제로 어떤 사람들인지에 대한 감각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온라인에서 보고 듣는 것 때문에 현실 감각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게다가 이런 플랫폼의 비즈니스 모델과 수많은 ‘ 인플루언서 ’들의 생계는 
우리가 그 디지털 심연을 계속 들여다보고, 그걸 보며 울부짖는 데 달려 있습니다.

소셜미디어를 끊으십시오.

좋은 책과 진짜 저널리즘을 읽으십시오.

친구들을 찾으십시오.

그리고 삶을 즐기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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