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총을 든 스님과 빅딕 에너지

유 진 정 2025. 9. 22. 00:12

https://c-straw.com/lounge/694

 

총을 든 스님과 빅딕 에너지

총을 든 스님과 빅딕 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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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딕 에너지Big dick energy 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요. 
거시기가 크면 마음도 크다는 속어입니다.
반댓말은 스몰 딕 에너지라고 할 수 있겠죠. 
안절부절 못하고 불안한, 쪼그라든 마음

사실 거시기 크기와는 관계없죠.
사람의 마음이 여유를 상실하는 순간은 집착이 생길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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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영화제가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잘 모르실 겁니다. 홍보가 엉망이거든요 
안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습니다. 

영화 잘 보고 마카다미아도 두 봉지나 얻어먹은 은혜를 지금 불평으로 갚고 있는데요. 아쉬워서 그렇습니다.
재작년과 올해 두 번 다녀왔는데 영화가 다 아주 좋았거든요

준비 열심히 해서 만든 영화제 홍보를 왜 이따위로 하나! 
이런 좋은 영화를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해줘야지! 
하는 집착이 지금 제 안에 있습니다.

아무튼 개막작은 파오 초이닝 도르지 감독의
- 총을 든 스님 - 이었습니다. 

지구상에서 티비와 인터넷이 가장 늦게 들어온, 슬로우 컬쳐로 유명한 부탄의 영화였는데요 
영화는 노스님과 제자 타시스님의 대화로 시작합니다. 

노스님 : 총을 한 자루 구해와라. 보름날 까지. 
타시스님 : 총을요? 그런 걸 대체 어디서 구해요? 그리고 어디다 쓰시려고요?
노스님 : 상황을 바로잡을라고 그런다.

비장한 표정의 노스님
영화의 배경이 2006년입니다. 이 해는 부탄에 처음으로 민주주의가 들어온 해였죠. 

민주주의가 뭔가요, 투표는 먹는 건가요? 하는 부탄의 국민들을 위해 당국은 모의 선거를 실시합니다.

선거 공무원은 빨간당, 파란당, 노란당이라는 선택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주민들에게 알려주고 인구조사에 들어갑니다. 
생일이 언제인가요? 물으면 그런 쓸데없는 걸 어떻게 알죠? 라는 대답이 돌아오니 공무원은 골치가 아픕니다. 

그러는 동안 초모와 초펠이라는 젊은 부부가 등장합니다. 
남편 초펠은 빨간당의 후보를 열렬히 지지합니다. 그가 당선이 되면 그를 도운 자신도 도시로 진출할수 있고 그들의 딸 유펠은 고등교육을 받아 총리도 될 수 있을 거라며 야심이 대단합니다. 

선거에 열중한 초펠은 유펠의 지우개를 사오는 것을 잊고 유펠은 학교에 가서 혼이 납니다. 
혼만 나는게 아니라 괴롭힘도 당합니다. 아빠가 지지하는 후보가 마을에서 인기가 없거든요

그러는 한편 도시의 풍경이 등장합니다. 여기에도 젊은 부부가 삽니다.
남편 벤지는 문신이 많고 영어를 잘 합니다. 부인은 얼굴이 좀 부어있습니다.

오늘 무료 투석하는 날인데 나 병원 데려다 줄래? 하며 남편을 껴안지만 그는 어쩐지 긴장된 모습입니다. 
안돼. 나 어디 좀 가야돼. 며칠 뒤에 올게 

벤지는 공항에서 미국인을 픽업합니다. 고물차에 그를 태우고 음악을 크게 틀며 어딘가로 출발합니다. 

미국인 론은 총기 수집상입니다. 
그들은 곧 모의선거가 치뤄지는 시골에 도착하고 한 노인장의 집에 들어섭니다. 

이 노인의 집에 무려 미국 남북전쟁에서 쓰인 총이 있거든요. 
역사적 가치를 지닌 희귀한 총을 보자마자 론은 눈이 뒤집힙니다. 7만 5천달러 드릴게요 저한테 파세요! 

벤지가 그의 말을 통역하자 노인은 난감한 표정을 짓습니다. 
너무 많잖아요. 그렇게 큰 돈을 받을 수는 없어요.

그의 곤란해 하는 표정을 본 론은 마음이 급해집니다. 
알았어요! 8만 5천까지 드리죠!!

영감님. 빚이 있다는 걸 알고 이 미국친구가 배려해주는거에요. 제발 반 값이라도 받으세요, 

벤지의 설득 끝에 제시한 값의 절반에 딜이 이루어집니다. 
론은 총의 가치도 모른다며 무식한 노인을 비웃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은행에 돈을 찾으러 간 사이 첫 장면의 타시 스님이 동네 어귀로 들어섭니다. 관객은 웃게 됩니다. 저 총을 스님이 가져가 버릴거 아니에요 

욕심없는 노인은 빚이고 나발이고 노스님에게는 은혜를 입었다며 총을 타시스님께 선뜻 줘버립니다. 이번엔 총알도 써비스~

잠시 후 가방 가득 현찰을 들고 돌아온 론과 벤지에게 노인은 총 대신 밥을 내밉니다. 차도 한잔 마시라고 합니다. 

수상쩍은 호의에 둘은 불안해집니다. 내 총은요??
노인은 시선을 피하며 중얼댑니다. 
화내지마세요, 약속을 못 지켜 미안해요. 스님한테 줘버렸어요.. 

자본의 논리가 먹히지 않는 부탄 노인의 고집에 둘은 미치고 팔짝 뛸 노릇입니다. 절박한 벤지는 머리를 굴립니다. 
그래 스님을 쫒아가자, 설득을 해보자 하고 풀악셀을 밟습니다. 

타시스님을 따라잡은 그들은 간곡히 애원합니다. 
스님 이 돈 드릴게요 제발 총을 저희에게 주세요!

스님은 아주 방어적입니다. 부탄 촌 동네에서 총 찾느라 고생을 엄청 했거든요. 그래도 벤지는 필사적입니다. 

돈이 이 만큼이면 그냥 총 열자루도 넘게 살 수 있어요! 우리에게 그 총을 주세요! / 아니 내가 돈이 왜그렇게 많이 필요하겠어요? 
타시스님의 대답에 벤지도 되묻습니다.

' 그럼 스님이 총은 왜 필요한데요? '

타시스님도 모르죠. 
하늘 같은 노스님이 보름날까지 총을 가져오라길래 가져가는 것 뿐 

아무튼 여기서 벤지의 목적이 분명해집니다. 
스님, 돈은 좋은 거에요 사람들이 그걸 위해 신장까지 떼다 판다구요!
그는 와이프한테 새 신장을 달아주고 싶은 겁니다. 

스님은 돈은 됐고, 차라리 새 총을 달라고 합니다. 
ak47 자동 소총을 두 자루 가져다 주면 이 총과 교환해 주겠다며 딜을 제시합니다. 총 찾으러 오는 길에 007 영화를 스님이 봤거든요.

론은 국제사회를 무대로 하는 총기상입니다. 인맥이 상당하지요
욕심쟁이 브로커에게 3만 달러와 목에 건 카메라를 넘기고 보름까지 인도를 통해 AK47을 전달받기로 합니다. 

집착이 있으니 상대가 눈탱이를 쳐도 수긍합니다. 
점점 커져가는 지출과 함께 눈덩이처럼 불어가는 론의 집착!

근데 남의 나라까지 와서 현찰 박치기로 총 사가는 사람이 양지의 인간이겠어요?
이 사람 인터폴의 수배를 받는 중입니다. 
곧 도시에 있는 벤지의 집으로 경찰이 쳐들어오죠. 아픈 부인은 어리둥절할 뿐입니다. 


그러는 동안 모의 선거일(보름)이 다가오고
노스님은 타시스님이 구해온 총을 지그시 겨냥해 봅니다. 
그 총부리는 선거 공무원들을 향하고 있죠.

그리고 으스스한 목소리로 그들을 보름날 열리는 제례에 초대합니다. 당신들을 위한 제례예요. 꼭 와주십쇼.

이쯤에서 관객의 불안이 고조됩니다. 
민주주의의 새 물결을 받아들일 수 없는 봉건주의자 스님의 광기의 유혈극이 펼쳐지게 될까봐 무섭습니다..


줄거리는 여기까지 말하도록 하겠습니다. 
로튼 토마토 신선도 94%에 빛나는 매력적인 영화이고요 
네이버에 검색하시면 ott플랫폼들에서 다시보기가 가능합니다.  


영화를 다 보고 느낀 점은 만든 사람이 상당히 여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작위적이지 않으면서도 능청맞게 웃기는 장면들이 여럿 등장하고 악당이 안 나옵니다. 

피를 빠는 모기도 단지 새끼를 위해 그러는 것처럼 
다들 행위에 이유가 있고 자신의 서사에 입각해 행동할 따름입니다.  


부탄은 흥미로운 나라입니다.

제시한 총값이 너무 많다며 오히려 싸게 팔겠다는 노인처럼 
부탄의 선왕 지그메 시계 왕축은 왕권을 스스로 축소하는데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결국 왕정을 폐지하자며 국민들에게 투표권을 주는데요 
그러나 국민들의 화답은 우리는 왕이 좋으니 왕권을 보존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선왕의 결혼 스토리도 재밌습니다.
부인이 무려 넷인데요. 이걸 왕이 나 마누라 여럿 둘 거야 고집한게 아니라요 네 자매 중 첫째한테 장가를 들려 했더니 첫째가 동생들 다 데려가지 않으면 안가요, 해서 자매 넷의 공용 남편이 되셨다고 합니다.

자본주의 민주주의 경쟁사회의 일원으로써 이런 일화들은 상당히 낯설게 느껴집니다만 사실 행복한 인간은 바라는게 적기 마련이죠. 

영화의 끝 무렵 론은 거대한 남근상을 선물받습니다. 
부탄에서 남근은 생명력과 번영을 상징합니다. 
잡귀를 제압한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죠

집착이라는 잡귀, 스몰딕 에너지를 내려놓고 BIG DICK을 들고있는 론의 표정은 세상 후련합니다. 


 

감독 잘생김 (가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