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이 밝았다. 잔반통을 노리고 담비가 왔다.
오트밀 한사발 끓여먹고 다시 출발.

비가 그치니까 마음이 여유로워져서 식물 구경하고 사진 찍으며 천천히 이동
이건 멸가치

투구꽃
아름답지만 독초임. 뿌리가 바로 그 사약 재료 부자. 예민한 사람은 만지기만 해도 붓는다고 함 이 또한 김전일 스러운 소재..
꽃말은 '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 '





요정같은 모습의 애이끼버섯



벽소령 대피소의 호화 화장실에서 볼일 보고 다시 발걸음을 떼니 뷰 비슷한게 보이기 시작

십계를 든 모세가 오를 것 같은 형제봉. 자연이 빚은 조각들은 정말 장엄하지 않은가


곰버벨~ 곰버벨~ 세석대피소 다가오네~

형제봉 지나서부터 날이 확 개었다.




야생표고
먹음직스럽지만 채취는 불법

흰목이!
맛이 너무 궁금해서 눈꼽만큼 떼서 먹어봤다. 아무 맛 안난다.

선비샘
천대받고 멸시받던 화전민 노인이 죽어서라도 대접받고 싶어 샘터 위에 자신을 묻어달라 부탁했다는
(사람들이 물 마실 때 허리 숙이니까) 좀 불쌍한 전설







참회나무

높이 올라갈수록 고사목이 늘어나고 슬슬 가을색이 보이기 시작한다



다이빙대 같이 생긴 바위가 있길래 지나치던 부녀에게 촬영을 부탁
어제는 비 때문인지 올라가는 사람을 한 명도 못 만났는데 오늘은 사람이 꽤 있다.
인사 할 때마다 혼자 가는 거에요? 안 무서워요? 라는 말을 계속 듣는다
딱 한 분 전두환 닮은 품위있는 노인장만이 종주합니까, 멋있네요 라고 말해주었다.
영감님 세 분이 모여있길래 인사하고 지나치는데
지리산에 불여우가 사나~? 왜이리 이뻐~? 라는 개구린 멘트가 돌아오길래 속으로 탈락!! 을 외치고 속력을 냈다.
대피소에서 또 만났는데 혼자 온거냐며 말 걸길래 못들은 척 했다. 이런 건 원래 쌩까줘야 됨
복수해야지 못된년 이라고 생각할 확률보다 만만한데 선 한번 넘어봐? 라고 인지할 확률이 높음




산오이풀
잎을 비비면 오이냄새가 난다는데 안 나던데? 꽃에서는 꿀냄새가 난다.




1시쯤 세석 대피소 도착. 세석평전 아름답구나

짜파게티와 전투식량을 한번에 먹어버리는 사치를 부려봄

취사실의 산누에 나방

나뭇잎으로 위장 중인 으름큰나방
내가 이런 거 이름을 왜 다 아냐면 사실 모르고 구글렌즈가 가르쳐줌

밥 다먹을 때 쯤 연하천에서 만났던 분들을 다시 만났다. 이야기 잠시 나누고 장터목을 향해 먼저 출발. 스트레칭도 좀 하고




뫼 산 山 자 같이 보이기도, 촛대처럼 보이기도 하는 촛대봉
작년 도반들과 여기서 일출을 봤다.


촛대 맨 위에 오르면 세석대피소가 조그맣게 보임




또 보니 반갑다. 연하선경
발을 딛는 순간 갑자기 구름이 삭 걷히며 해가 반짝 나는게 환영받는 느낌


구절초

다 걷고 아쉬워 뒤를 돌아보니 다시 어두워짐



잘 생긴 구상나무와 고원의 바람이 빗질해 놓은 흔적

말불버섯. 푹 눌러서 포자 한번 뿌려주고 간다.
날씨가 좋으니 걷는게 아주 즐겁다.
지리산은 기운이 참 좋다. 왜 다들 꾸역꾸역 도닦으러 들어오는지 알 거 같음
뜬금없이 출가해도 지리산 종주를 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4시 15분 장터목 대피소 도착
대피소 직원들은 궁합을 맞춰서 배정하는 걸까?
어제 연하천 직원 분들은 둘 다 부드러운 인상이었고 이쪽은 젊고 활기차다.
한분은 모히칸에 귀걸이를 하고 있고 다른 한 분도 명랑
더울까봐 창 아래로 배정해 달라고 부탁했다.
내일 흐리다길래 일출 못 볼거 같아 혹시 지금 천왕봉에 일몰 보러 올라갈 수 있냐 하니 4시 이후로는 입산 금지라고. 넹..

2층에 짐 풀고 누워 있는데 사다리를 타고 반짝거리는 대머리가 쑥 올라온다.
레디컬한 여성인가? 싶었는데 머리가 연달아 쑥쑥
비구니 스님들이 승복 위에 등산자켓을 걸치고 올라오셨다. 아까 한 생각을 부처님이 들었나?

밀크티 제조해서 작년 도반들이랑 커피 마셨던 나무토막에 앉아 마심


연하천에서 만난 치의 부부, 죽어가는 분 / 여유있는 분 콤비와 함께 저녁 식사
갱상도 여사님들도 곧 도착. 아 연하천 사람들이네! 하는 목소리가 반갑다.
코펠 이야기 하다 티타늄이 항공소재라는 말이 나왔고 알고보니 여유있는 분은 은퇴한 공군이셨다. 탑건~
죽어가는 분은 회사 대표시라 대표/대령/박사1,2 로 호칭이 정해졌다. (박사의사 둘다 닥터니까 그냥 퉁침)
나는 안 물어보길래 대답 안 했다. 직업도 연령도 불명인 미스터리 여인으로 남겠습니다.

소시지와 주먹밥을 얻어먹었다.
장터목에서 사람들이 보통 식량을 모두 소비하고 간다고 한다. 잔반통 없에버린건 아주 좋은 아이디어
와이파이도 안 됐으면 좋겠다. 너무 편리하면 노잼이니까..
연하천에서 본 대표님은 분명 죽어가고 있었는데 밥을 드시더니 갑자기 만담가가 되어 대령님을 놀리기 시작했다.
주먹밥 안에 진미채를 넣어줘 김도 붙여줘 장갑끼고 이렇게 저렇게 빚어줘
뭐 해달라고 엄청 부탁하는데 대령님 궁시렁거리면서도 다 만들어 줌
놀다가 추워져서 자러갔고
이 분들이랑 내일 4시 50분에 만나서 천왕봉 같이 올라가기로 함. 아니 어쩌다 이렇게 된거지?
분명 좀 굶주리고 고독하려고 지리산 왔는데 폭식하고 수다까지 떨어버렸다. 쓸데없는 말을 너무 많이 했어
 진정하세요